사생활 팝니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요즘 TV, 라디오, 잡지, 책, 하다못해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서 뜨려면 사생활을 파는 게 대세다. 내 얘기처럼 더 가깝게 와닿기 때문. 하지만 익명의 사생활도 파장을 일으키는데 공공연히 자기 이름 걸고 속사정을 내보여야 하는 이들은 어떨까? 어차피 절반쯤은 설정이었다 해도 인간관계에 후폭풍이 몰아치지는 않을는지. 사생활을 팔아 글을 쓰는 1인에게 물었다. :: 개인적인,칼럼,일상,연애,사랑,엘르,엣진,elle.co.kr :: | :: 개인적인,칼럼,일상,연애,사랑

연애 칼럼니스트라는 해괴한 직업을 가진 이후, 한밤중에 난데없는 전화를 받곤 한다. 대부분 전화의 주인공들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언젠가의 그녀들’이다. “왜 나와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거죠?”전형적인 상황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자면 약간의 취기가 느껴지는 호흡에 불쾌감을 애써 감추고 있는 나지막한 음성, 그리고 한동안 연락 없던 사람에게 용기를 내 전화를 건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수화기 너머에 포도주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게 느껴진다. 이때 당황하면 끝장이다. 옛 여자의 이야기를 팔아 지폐를 세는, 세상에서 가장 치졸한 사내라는 딱지를 얻고 싶지 않다면 형사의 취조를 능숙하게 받아 넘기는 능글맞은 연쇄살인범처럼 일단은 시치미를 뚝 떼야 한다. 나 역시 조금 늦은 시간에 예고 없는 전화로 약간 불쾌하단 말투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거 네 얘기 아냐.”당황한 상대의 목소리에서 주도권이 넘어왔다는 확신이 들면 대화를 빨리 끝내기 위한 잔인한, 그러나 확실한 한방을 날린다. “도대체 왜 그게 네 얘기라고 생각하지? 내 인생에 여자가 너뿐이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다수가 여성들임을. 그래서 밤길 조심해야 할 정도로 그대들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키고 있음을. 그러나 약속된 원고료엔 일정 정도의 생명보험료도 포함돼 있다는 것을 믿으며 가능하면 솔직해지려고 한다. 이것이 글쟁이의 기본 자세 아니겠는가. 남의 이야기를 팔아 먹고사는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은 전문 용어로 ‘불쉿!’이다. 아버지의 장례식 날 카바레에서 썰렁한 농담을 지껄여야 하는 밤무대 개그맨 같은 직업이다. 몇 달 혹은 몇 년 정도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다 보면, 남의 이야기로 방패막이를 삼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때쯤이면 공개하기 꺼려하던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끄집어내, 나름의 윤색을 가한 후 상품으로 판매해야 하는 지랄 같은 상황과 만나게 된다. 재가공엔 그래도 몇 가지 공식이 있다. 일단 시간의 애매모호함으로 은폐를 시도하는 것이다. 대학 시절이나 서른 중반이라는 표현도 위험하다. 그저 몇 년 전 쯤이 좋다. 물론 최선의 수식어는 ‘언젠가’이긴 하지만. 두 번째로는 한 명의 모델,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려면 몇몇 중요하지 않은 조건들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말하자면 스튜어디스는 나레이터 모델로, 여기자는 방송작가쯤이 적절하다. 크리스마스의 사건은 밸런타인데이쯤이면 완벽하다. 빠져나갈 구멍이 많을수록 써먹을 수 있는 이야기도 늘어난다. 아울러 한밤중에 난데없는 전화가 오는 곤혹스러움도 피해갈 수 있다. 그런데 딱 한 번, 이런 위기상황 대처 요령 혹은 글쓰기의 매뉴얼을 어긴 적 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니 아마도 그때까지 그녀를 사랑했던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보따리를 풀어놓아야 한다면, 적어도 왜곡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고 어울리지 않는 변명을 해 본다.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하늘의 태양이 민망해 개기 월식을 감행할 만한 대사를 사용했던 적 있었다. “너와 헤어진다고 해도 언젠가 나이 들어 다시 너를 떠올려보면 내 인생이 그리 나쁘진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당신이 글 읽기를 중단하고 잠시 토악질을 한다고 해도 이해하겠다. 그러나 그순간만은 진심이었다는 것만은 아무쪼록 공감해 주시라. 문제는 이 대사를 방송용으로 써야 하는 장면이 그리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라디오의 한 코너에 출연해 경망스런(!) DJ가 경망스런 패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자, 그렇다면 김태훈 씨가 여성들을 유혹할 때 가장 효과가 확실했던 한마디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별로 잘생기지도 않은 주제에 연애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으로 소개된 인간이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그리곤 며칠이 지난 후 그녀에게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속 그녀는 울먹이고 있었다. 비록 헤어진 시간이 꽤 됐지만 잠시나마 진실이었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믿음에 내가 제대로 흠집을 내버린 것이다. 말로 밥을 벌어 먹고사는 주제에 단 한마디도 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때때로 어울리지 않는 순정에 굴복하는 날도 있는 것이다. 그저 미안하다는 사과밖에 할 수 있는 게 뭐가 더 있겠는가. 며칠을 아팠다. 사랑까지 팔아먹는 인간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나?’ 할 정도로 40대 중년 가장들이나 할 법한 고민이 엉뚱한 상황에서 나를 찾아왔다. 글과 말에 대한 슬럼프가 시작된 것이 아마도 그쯤이지 싶다. 자기검열이 강화된 이후, 글과 말이 생동감을 잃어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그 ‘짓거리’를 그만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역시 비슷한 전화들을 받곤 한다. 하지만 여자들만 전화를 해오는 게 아니다. 가끔은 주변 친구 혹은 선배들의 전화가 간간히 날아든다.“너 지난번 글 보니까 내 얘기를 써먹는 것 같더라.”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각색과 내 경험의 일정 정도를 첨부해 만든 이야기인 경우가 더 많다. 어차피 세상 사람들이 겪는 사랑 얘기야 다 거기서 거기니, 나를 안다는 이유만으로 내 이야기가 자신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다. 문제는 대화 이후 그들이 붙여오는 단서들이다. “내가 너한테 거리를 제공했으니 술 한잔 사라.”복잡한 이야기를 하기 싫어 그러마 했지만 언젠가부터 그 술 한 잔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졸지에 글 한 편에 술 한 잔을 지불해야 하는 악성 채무자로 전락해 버렸다. 이래저래 글쟁이는 괴롭다. 진실하자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야 하고, 약간의 가감을 통해 상황을 바꾸어자니, 술 한 잔의 빚만 늘어간다. 그래서 여전히 습관처럼 이런 이야기로 오늘도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그거 네 이야기 아니거든.”*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