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를 부활시킨 장본인 리카르도 티시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그는 어딘지 음산하면서도 로맨틱하고 결연하며 또한 강인해 보인다. 강력한 별자리인 사자자리의 운명을 쥐고 태어난 리카르도 티시(Riccardo Tisci). 지방시(Givenchy)를 부활시킨 장본인인 리카르도 티시와 1:1로 만났다. 자신과 패션, 그리고 해골과 유니콘 등에 담긴 의미 그리고 내면의 욕망에 관한 솔직한 대화. :: 디자이너,패션,리카르도 티시,리오,지방시,엘르,엣진,elle.co.kr :: | :: 디자이너,패션,리카르도 티시,리오,지방시

리카르도 티시. 34세.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출신 디자이너. 2005년부터 메종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임.‘노부(Nobu)에서 아침을’. 리카르도 티시는 너무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나머지 거의 발작에 가까울 정도로 수줍음을 탄다.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지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모든 불안정한 상황들은 이겨낸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선보인 패션 세계는 무수히 다양한 기대치에 부응하면서 어느덧 그는 컨템퍼러리 패션의 대부가 됐다. 톱 모델인 라라 스톤(Lara Stone)과 함께 프랑스에서 그로테스크한 메이크업을 하고 화보 촬영을 하는가 하면, 각종 인터뷰를 도배하고, 카린 로이펠드(Carine Roitfeld)와 그녀의 두 딸들 그리고 마리아카를라 보스코노(Mariacarla Boscono), 크리에이티브한 뮤지션들과 DJ들, 수많은 톱 모델, 아티스트, 포토그래퍼 등과 함께 티시는 기가 막힌 작업을 해냈다. 우리는 밀란에 있는 레스토랑 노부(Nobu)에서 이 천재적인 디자이너와 어렵사리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보머 재킷에 슬리브리스 오리털 재킷을 걸치고, 그 안에는 체크무늬 셔츠와 클러버 스타일의 체인 장식 포켓이 달린 진을 입고 약속시간에 정확하게 맞춰 도착했다. 훤칠한 키에 어딘지 '친근한' 룩으로 입고 나온 그는 이웃집 친구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염연히 프랑스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의 수장이다. 메종 지방시는 패션 히스토리 속에서 굵은 획을 그으며,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영화 ’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그녀를 위해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가 디자인해 빅 히트를 날린 LBD(리틀 블랙 드레스), 그리고 칵테일 드레스와 매니시 재킷, 파리지앵 스타일 스커트 등은 지방시의 성공적인 스타일로 손꼽히고 있고, 지금도 그 명성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가 지방시에서 보여준 스타일은 ‘고딕’ 스타일로 정의된다. 조금은 지루하지만 그런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도록 기품 있는 우아함, 어두운 느낌이지만 그늘 지지 않는 어둠 등 이 모든 것들의 관능적인 결합이 바로 지방시 스타일인 것이다. 이런 독특한 매력으로 그는 어느덧 요르단의 라니아(Rania)에서 크리스티나 리치(Christina Ricci)까지,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에서 나탈리 포트먼(Natalie Portman)까지,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에서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 그리고 마돈나(Madonna)에 이르는 기나 긴 단골 셀러브리티 리스트를 갖게 됐다. 그는 이들 초호화 셀럽들을 위해 최상의 옷들을 최고 수준으로 디자인했다. 뭔가 꼬인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그는 ‘빛나는 과거’를 지나치게 포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이켜본다. 때로는 불가피하게 너무 새로워지고 있는 건 아닌지 ‘또 다른’ 고민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들을 들킨 것조차 인정하고 수긍하는 듯한 눈치다. 1 대담한 버전의 강렬하고 관능적인 지방시 의상을 입은 셀러브리티들.2 울 재킷과 벨트, 팬츠를 풀 착장으로 입은 나탈리아 보디아노바.3 ‘Sticky & Sweet’ 콘서트에서 지방시 오트 쿠튀르를 입은 마돈나.4 뮤지션 안토니 허거티(Antony Hegarty)의 무대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5 2009년 리오에서 열린 ‘O Fashion Rocks’에서 미국 팝 가수 시에라와 함께 한 티시.당신은 보다 활기찬 것들을 시도하는 데 반해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는 깔끔하고 엄격한 스타일을 추구했던 것 같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사실 지방시에 대해 알려진, 그 같은 내용은 다소 진부한 표현이다. 내가 작업실에서 처음 작업했던 때는 스물아홉 살 무렵인데 그때만 해도 영화 의 헵번 이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지방시 하우스에서 지내면서 블랙을 기본 팔레트로 펼쳐지는 그의 시그너처 코드와 엄격한 DNA, 귀족적이면서도 평범한 원, 정사각형, 직사각형 등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대담한 라인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속적인 레퍼런스를 통해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이끌어내 그것들을 모두 내 것으로 흡수했다. 그 과정을 치열하게 끝까지 해냈고,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컨셉트’로 만들 수 있었다. 나는 이지 투 웨어(Easy to Wear)라는 정신 위에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입혔을 뿐이다. 어제의 지방시가 남겨준 엄격함은 오늘날 내게 고딕 양식이라는 하나의 틀이 돼준 셈이다.지방시가 추구해 온 여성상이 변하고 있다. 가령 예전에는 오드리(Audrey)였다면 지금은 코트리 러브(Courtney Love)인가?코트니 러브는 마리아카를라를 포함해 내게 영감을 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나는 예쁜 여자보단 뭔가 강렬한 여성들에게 끌린다. 메종에서 내가 선보인 초창기 작품들은 다른 관점을 가진 두 개의 유전자인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와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의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지방시 옷을 입는 셀렙은 굉장히 다양한 스타일들을 소화해야 했다. 나는 일단 내게 영향을 준 모든 스타일에서 일단 벗어나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스타일이 만들어졌고, 지방시 여성들은 무엇보다 자기 스타일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메종 지방시에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내 아이디어들이 아카이브를 이어오면서 계속 쌓여가고 있다. 내가 회사에 들어온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을 때 위베르 드 지방시가 만나고 싶어했던 유일한 사람이 나였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1 2007 F/W 리카르도 티지의 초기 지방시.2 2009 S/S 로맨틱 디테일이 가민된 고딕 룩.3 2008 F/W 십자가, 블랙등의 모티프로 시그너처를 강조.지방시의 당신과 이브 생 로랑의 필라티, 겐조의 마라스에서 현재 로샤스의 마르코 자니니와 비교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들과 나 그리고 그들 서로가 모두 다르다. 많은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은 모두 저마다 자부심을 갖고 ‘꿈꾸는 것’과 ‘파는 것’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각각의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능력을 펼치고 있다. 나는 무엇보다 남성과 여성을 위한 기성복과 액세서리 등 패션 모든 분야에 전념하고 있다. 패션의 모든 것을 말하려면 그만큼 영역을 넓혀야 한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천부적인 재능과 아이디어의 정수를 오트 쿠튀르(Huate Couture)라고 표현하는 데 반해 나는 럭셔리하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기성복으로 폭 넓게 표현한다. 어머니와 8명의 여자 형제와 함께 살았기 때문에 나는 여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려서부터 이해해왔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쉬운지도 모른다. 두개골과 해골 컨셉트의 컬렉션을 만든 이유는?순수함이 깃든, 약간 퇴폐적인 데카당스적 시도라고 할까? 내 탄생 별자리는 사자자리다. 이 별자리는 무언가에 대한 궁극의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난 종교색이 짙은 집안에서 자라났고 지금까지도 종교적인 행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나는 매일 저녁 기도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는 롬바르디아 지방의 유복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그리 녹록하고 평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어떤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히거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때 집안에 깃들었던 종교적인 분위기와 가정사는 내게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나에게 두개골과 해골은 궁극적으로 매우 중요한 상징이고, 많은 국가에서도 성스러운 아이콘으로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집에도 그런 것들이 좀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놀라는 게 바로 내 방이다. 까만 래커를 씌운 침대, 바닥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세르비아 출신 행위예술가 마리아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의 작품,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진주로 만든 유니콘과 함께 방부 처리된 말 머리가 놓여 있다. 그건 왜?나는 유니콘에 대한 환상이 있다. 탈출구, 자유 같은 의미를 갖기도 하고 나를 어디로든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신화적 이미지 말이다. 난 동물 중에서도 유난히 유니콘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다. 어릴 때도 학교에서 교과서 구석에 동물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리학이나 예술 빼고는 별로 좋아하는 과목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지루함을 달래곤 했다. 동물이라는 게 남자 형제나 동성 친구의 의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다. 난 남자 형제나 동성 친구를 가져본 적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동물 자체는 내게 불안감을 주지도 않는다. 아마 새로운 지방시 맨은 두 마리의 유니콘과 동물을 담고 있을 것이다. 4 2008 F/W 티시 특유의 고스(Goth)적 로맨틱시즘.5 2010 S/S 북아프리카 아랍전의 에스닉 프린트를 활용.6 2010 S/S 기학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재킷.7 2010 S/S 드레이프로 페미니즘을 더했다.패션 학교로는 만족을 하지 못한 걸까? 파인 아트 공부를 시작한 걸로 알고 있다. 그게 그렇게 중요했었나?중요했다. 한때 큐비즘, 바우하우스 등의 예술 유파에 미쳐 있었다. 지방시 덕분에 이탈리아의 비디오 아티스트 파올로 카네바리(Paolo Canevari), 세르비아 출신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영국의 포토그래퍼 카트리나 옙(Katerina Jebb) 등. 내가 정말 존경하는 아티스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었다.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이 또 내게 남기도 했다. 요즘은 제레드 버키에스터(Jared Buckhiester)와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 드로잉, 사진, 영상과 조각 등 다양한 영역에서 천재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실력 있는 친구다.이탈리아 사람인 당신은 유명세를 타기 위해 해외로 가야 했다. 해외로 가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아니다. 하지만 늘 영국, 프랑스, 인도에 대한 고마운 마음은 가지고 있다. 런던에서는 불규칙적으로 일을 하다가 안토니오 베라르디 쇼를 통해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고, 그리고는 장학금 덕분에 런던 세인트 마틴에서 공부도 하고 펠리니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으로 학위도 받았다. 파리에서는 지방시를 만났고, 델리에서는 새로운 기운을 얻는 계기가 됐다. 그때 뭔가 잘 안 풀리고 있었는데, 델리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47벌의 의상 컬렉션을 디자인하게 됐고, 이것이 히트를 쳤다. 그때부터 인도는 내게 행운을 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으며, 자주 가는 편이다. 당신의 삶에서 사랑은 어떤 의미인가? 아직 결혼 상대를 찾지 못했지만‘사랑’은 나에게 가장 근본적인 키워드다. 조금 다른 의미로는 가족, 친구, 나와 함께하고 있는 우리 팀과 어시스턴트들이 있다. 하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늘 조심하는 편이다. 한없이 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틀어지면 용서를 모른다. 내 성격과 사랑에 관한 한 단점이라면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