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게 등장한 뉴페이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자라, 갭, 포에21에 이어 드디어! 패스트 패션 대표 SPA 브랜드 H&M가 2010년 봄, 명동에 진출한다. 심상치 않은 패션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H&M의 한국 진출. 본사가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수석 디자이너 앤 소피 요한손:: 페퍼톤스,앤 소피 요한손,이소진,임동혁,H&M,샤넬,문화,예술,음악,패션,엘르,엣진,elle.co.kr :: | :: 페퍼톤스,앤 소피 요한손,이소진,임동혁,H&M

EVERYDAY NEW HAPPENING IN H&M H&M 수석 디자이너 앤 소피 요한손자라, 갭, 포에21에 이어 드디어! 패스트 패션 대표 SPA 브랜드 H&M가 2010년 봄, 명동에 진출한다. 심상치 않은 패션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H&M의 한국 진출. 본사가 있는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날아가 수석 디자이너 앤 소피 요한손(Ann-Sofie Johansson)을 만났다.(최순영)우선 H&M 수석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던데? 1987년 패션 디자인 학교 학생 신분으로 H&M 매장에 처음 입사, 매장 말단 직원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열망을 현 H&M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마가레타 반 덴 보시(Margareta van den Bosch)에게 강하게 보여주었고, 그녀의 밑에서 디자인 보조를 하면서 본격적으로 디자인에 입문. 지금은 당시 나를 발굴해준 마가레따의 뒤를 이어받아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대체 이 많은 물량을 그토록 빨리 만들어내는 비결은? 우리 디자인 팀에는 1백 명 이상의 디자이너들이 남성/여성/언더웨어/코스메틱/액세서리/데님 등 각 분야로 나뉘어 저마다 팀에서 찾은 핫 트렌드를 가장 발빠르게 반영한 아이템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이들이 있기에 전 세계 H&M 매장에는 매일매일 신상이 들어오고 디스플레이도 매일 바뀔 수 있다. 패션에 대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특히 도쿄, 뉴욕, 파리 등 대도시의 사람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거리의 룩을 캐치하고, 빈티지 상점과 벼룩시장 등에서 발견한 독특한 아이템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예술, 음악, 영화 등을 통해서도 물론. 2010년 봄, 당신이 발견한 키 트렌드는? 플라워 프린트가 온통 만개할 것이다. 플라워 가든에서 정원 일을 하는 소녀 정원사의 모습이 바로 이번 시즌에 제안하고 싶은 키 룩이다. 플라워 프린트 블라우스나 스커트뿐 아니라 정원사를 위한 유틸리티 아이템, 즉 데님 오버올 등도 키 아이템이 될 것이다. 지금 당신의 옷장 속을 말로 보여달라. 일단 남편 옷들보다 내 옷들이 몇 배는 더 많다! 물론 H&M 옷들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워낙 빈티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세계 여러 나라 도시의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보물 같은 빈티지 의상과 액세서리들도 많다. 패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늘 새로운 것을 갖추길 원할 것이다. 나는 그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디자인한다. 단, 나는 소비자들에게 옷을 빨리 처분하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내 옷장에는 수 년 전에 입었던 이브닝 재킷이 있는데 지금도 즐겨 입고 있다. STYLISH SOJIN LEE 1972년 한국 태생의 이소진. 샤넬과 보테가 베네타의 리테일 애널리스트와 커머셜 디렉터로 경험을 쌓은 그녀는 2000년 네타포르테(Net-A-Porter) 리테일과 바잉을 책임지며 커리어와 스타일 두 개의 토끼를 잡았다. 현재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거물인 사이먼 풀러(Simon Fuller)와 함께 패셔내어닷 컴(Fashionair.com)을 운영 중인 그녀를 만났다. 어린 시절을 다양한 곳에서 보냈다고 들었는데. 내가 자란 곳은 어쩌면 비행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아버지의 일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항상 세계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영국 서머싯(Somerset), 케냐 등 수많은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한 곳에 6개월 이상 머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14세가 되던 해엔 LA로 이사를 갔다. 당시 우리 옆집에는 마이클 잭슨이 살고 있었다. ‘패션’ 하면 떠오르는 당신의 생애 첫 기억은 무엇인가.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 달려 있던 노리개. 다섯 살 때 한국을 떠나기는 했지만 옥구슬과 진주로 장식된 할머니의 노리개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신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 당신의 패션을 한 문장으로 묘사해달라. 어글리 베티가 브리짓 바르도를 만나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나의 캘리포니아 킹 파이프 스프링(California King VI Spring) 침대 위다. 14시간은 거뜬히 잘 수 있는 침대 위에서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에 골똘히 잠기기도 하고 일도 한다. 누군가 내 침실에 냉장고 한 대만 들여놔 준다면 난 그 방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패션 피플로서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난 인스턴트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신 못할 것 같은 패션은? 1980년대 유행했던 눈두덩을 가득 채운 오렌지 컬러의 아이섀도. 그리고 맨 위 단추까지 꼭꼭 채워 입었던 페이즐리 패턴의 셔츠.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패션 아이템은? 내 옷장은 제이 크루(J Crew)의 캐시미어 스웨터와 카디건으로 가득 차 있다. 닮고 싶은 패션 히어로가 있는지. 1958년 개봉한 영화 의 주인공. 유별난 성격이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앤티는 나의 영원한 우상이다. 넓은 마음을 가진 카멜레온 같은 멋진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 하루 동안 바꿔 생활할 수 있다면 누가 돼 보고 싶은가? ‘투어 공연 중’인 비욘세. O2에서 그녀의 공연을 본 적 있는데 정말 놀라웠다. 내가 그녀만큼 에너지를 내뿜으며 공연하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면 어떨지 상상해본다. 당신이 운영 중인 패셔내어닷컴의 가장 큰 특징은? 패셔내어 속 패션은 변화무쌍하고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당신의 인생을 다섯 단어로 설명해본다면. 테크니컬러(Technicolor),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익사이팅(Exciting), 퍼니 텍스처(Funny texture). (백지연) THE PIANO MAN조막만한 손으로 전 세계 클래식계를 연주하고, 수려한 외모로 여심을 흔들고 자못 거침없는 발언으로 반항아가 됐던 임동혁이 국내 독주회를 갖는다. 뉴욕에서 수양 중인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여봤다. (김영재)뉴욕이란 도시가 아티스트에게 주는 장점은? 외로운 도시다. 외로움을 잘 다스리고 즐길 줄 알면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다. MP3엔 어떤 노래들이 있나? 양파, 김동률의 가슴 절절한 발라드를 좋아한다. 요즘엔 이문세의 ‘옛사랑’에 흠뻑 빠져 있다. 피아니스트의 손을 두고 황금 손가락이라 말한다. 본인의 손을 묘사한다면. 도에서 한 옥타브 미까지 겨우 닿을 만큼 손가락이 가늘고 작다. 그래도 내 몸 가운데 가장 예쁘다. 올해로 쇼팽 탄생 200주년이 된다. 쇼팽 스페셜리스트라 불릴 정도로 잘 통하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을 녹일 만큼 쇼팽의 음악은 달콤하다. 난 낭만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앞으로도 쭉 쇼팽을 파고 들 거다. 어린 나이에 빠른 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실력과 노력, 행운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큰 힘이 됐나? 운이 따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려는 길은 굉장히 힘들다. 몇 년 전까지 지독한 슬럼프에 시달렸다. 어린 나이에 큰 성공이 벅찼던 건가? 더 이상 나갈 콩쿠르가 없어 새 목표를 세울 수 없었다. 피아니스트로만 살아와서 할 수 있는 다른 것도 없었다. 그 점이 크게 아쉬웠다. 그래서 내 자신을 풀어버렸다. 무엇을 하든 언론에서 관심을 쏟는다. 부담되지 않는가? 글쎄, 크게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피아노 천재’,‘클래식계의 반항아’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본인 스스로 붙이고 싶은 수식어는? 한결같은 연주자. 솔직하고 튀는 언행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고 까다로운 캐릭터란 얘기도 있다. 생각하는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뿐이다. 실제로는 낯가림과 무대 울렁증이 심하다. 특히 한국 공연은 먹은 걸 다 토해낼 정도로 유난히 더 긴장된다. 본인이 느끼는 클래식계의 달라진 흐름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어리고 외모도 출중한 연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돌 스타처럼 말이다. 클래식계에선 미소년으로 꼽힌다. 거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스스로 미소년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장동건, 오지호처럼 생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해봤다. 후배들 가운데 본인의 뒤를 이을 미소년 피아니스트를 꼽는다면? 내 뒤를 이을 재목을, 더구나 미소년 피아니스트를 꼽을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대신 미래가 기대되는 후배를 얘기하라면 단연코 김선욱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다. 함께 피아노를 쳤던 형 임동민은 대학 교수가 됐다. 피아니스트로서 ‘이렇게 살고 싶다’는 미래상이 있다면 연주자로 살고 싶다. 피아니스트의 수도 굉장히 많고, 언젠가는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하므로 쉽진 않겠지만 오랫동안 연주를 하고 싶다. 인생의 가장 큰 명분은 피아노인가? 지금은 한창 놀고 싶어 할 나이가 아닐까? 맞는 얘기다. 하지만 이 시기에 그냥 놀고만 있다간 성공과 멀어지게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사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연애 모드의 임동혁은 어떤 모습일까? 겉으론 표현을 못하지만 내심 어떤 식으로 감동을 줄지 고민하는 남자친구. SOUNDS GOOD, MAN! 페퍼톤스의 이장원(왼쪽)과 신재평(오른쪽)2004년 EP , 20005년 2집 에 이어 얼마 전 3집 으로 대중에게 한 뼘 더 가까이 다가온 ‘페퍼톤스’. 자칭 타칭 ‘우울증을 위한 뉴 테라피 밴드’라 말하는 이들의 음악은 밝고 청량하다. 10년지기 친구이자 2인조 밴드를 이끄는 신재평과 이장원 두 남자를 만났다. (김보미)제일 많이 듣는 질문. (이장원, 이하 ‘이’) 공부 잘했는데 왜 이러냐고. 하하. 둘 다 과학고, 카이스트 나와서 그런가 보다. 음악을 업으로 삼은 것에 대해 친구들 반응은? (이) 그럴 줄 알았어! 언젠가는 할 줄 알았어! (신재평, 이하 ‘신’) 우린 애매모호한 밴드다. 노래 만드는 게 좋아서 하는 것뿐. 짜여진 계획 가지고 가고 있진 않다.그럼 장래 희망은? (이) 좋은 아빠? 하하하.(신) 최대한 아쉬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어쨌든 지금은 ‘인디 아이돌’이지 않나. (신) 주변에서 놀림 반 장난 반 하던 얘기가 일파만파가 됐다.(이) 우리가 지은 건 아니다. 뭐, 발끈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인디하다’기엔 많이 메이저에 가까워졌다. (신) 안테나뮤직(유희열 등이 소속된 레이블) 계약하면서 ‘인디 신 떠난다’ 얘기 많이 들었다. 하지만 핵심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우리가 하고 싶은 걸 지원받을 수 있는 여건이 좀 더 좋아진 것뿐이지.작업 방식. (이) 작업실은 따로 없고 각자 집에서 한다. 주로 메신저, 이메일로 얘기한다. 최근엔 한 집에 모여서 뒹굴거리면서 같이하기도 하고. 평소엔 뭐하고 노는지? (이) 재평이가 요즘 미식의 길에 입문했다.남자가 미식가가 되면…. (이) 초식남이 되는 거지. 하하. 우린 밥 친구다. 김밥 먹고 햇빛 쬐고 건전하게 논다.(신) 대학교 들어가서 전자오락하면서 친해졌다. 전자오락으로 맺어진 사이지.가장 큰 다툼. (이) 요즘.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의견 차이 많았다. (신) 두 번째 앨범까지는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대로 만들었다. 지금은 조언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유희열, 김동률, 이적 등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직접 방향 제시를 해주니 나는 ‘뿅’ 간 거지. 장원인 자기 중심이 있어서 안 그러고. 그런데 좋은 앨범은 멤버들의 의견이 합을 이루지 않은 그 중간 상태, 싸움이 고스란히 드러난 때 나온다고들 하더라.3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트랙은? (이) ‘지금 나의 노래가 들린다면’. 빠르고 복잡한 게 일종의 우리 브랜드인데 그 정점에 있는 곡이다. (신) 난 하나를 고를 순 없다. 깨물면 아프지 않는 손가락 없는 그런 느낌.여자한테는 누가 더 인기? (함께) 우리 둘 다 별로….좋아하는 여자상. (이) 어머니. (신) 어머니라 함은 나를 챙겨주는 여자? 하하. (이) 대화가 되는 사람. (신) 밝은 사람. 외적으로는 안경 낀 사람이 좋더라. 너도 그렇지? (이) 어, 나도. 하하.*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2월호를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