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와 접속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세상에는 여러 영화가 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는 영화가 있다. 흔치 않은 경우다. 이야말로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에디터에게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가 그런 영화였다. 그들의 영화와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을 정리해보았다.::민환기 감독, 김민홍, 송은지, 요조,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필름포럼, 최창락, 이모션픽쳐스, elle.co.kr, 엘르, 엣진:: | ::민환기 감독,김민홍,송은지,요조,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이야기

1장“요조가 정말 싫어할 게 분명해요!” 작년 3월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일하는 담당자와 술자리에서 만났다가, 우연히 어떤 음악 영화가 출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놀랍게도 주인공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이하 소규모)였다. 호란이 꿈 속에서 보고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그 밴드였다. 이미 영화 의 음악을 담당했던 이 밴드는 홍대 피플이라면 누구나 아는 뮤지션이다. 더욱이 패션 잡지 여성 에디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밴드다. 이들의 다큐멘터리지만 당시 밴드의 일원이었던 요조가 상영 금지(?)를 시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왜? 그 예쁜 홍대 요정 요조가 뭘 어쨌다는 건데? 사는 게 도통 재미없는 인생들의 술자리이다 보니, 결국 뻥뛰기처럼 부풀어서 ‘안티 요조 영화’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대책 없는 설왕설래였다. 술이 깬 다음 날 연락해서 “영화 좀 보여주세요!”라고 외쳤다. 결론만 말하면 안티 요조 영화는 아니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요조와 보컬 송은지와의 갈등과 화해가 담겨있다. 언제나 해묵은 갈등과 오해는 있기 마련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음악인들이라면 음악에 대한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조가 개구쟁이처럼 안경 쓰고 담배 피는 모습에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자칫 요조를 이슬만 먹고 사는 신비한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아서라, 그리 놀랄 필요 없다. 올챙이 시절 없는 개구리는 없으니 말이다. 3년 전 요조의 이런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에서 최강희가 담배 물고 선빵 날리는 모습이라고 할까나? 그녀는 뭘 해도 깜찍하니까. 2장“정말, 단지 예뻐서인가?”이 다큐멘터리를 찍은 민환기 감독의 의도가 궁금하던 차에, 상상마당을 통해 인터뷰를 했다(격주마다 상상스케치에서 인디영화 감독들을 만난다). 누구나 민 감독에게 날리는 질문을 나도 제일 먼저 던졌다. “아니, 왜 소규모인가요? 요조인가요?” 사실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인터뷰에서는 민 감독은 “예쁜 여자가 두 명이나 나와서”라고 대답을 했다. 이번엔 어떤 말을 할지 듣고 싶었다. 그러나 민 감독은 진중한 사람이었다. 더 이상의 농담은 없었다. 그는 2007년 소규모와 가을에 처음 만났다. 당시 리더 민홍, 은지, 요조와 밥을 먹었다. 긴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세 사람이 너무 달라서 재미있었다고 한다. “내 지인 중에 음악하는 사람들은 친구 관계로 음악을 시작했거나 어렸을 때부터 같이 지내면서 데뷔를 해서 서로 비슷한 점들이 많다. 그런데 소규모는 완전히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었다.” 민 감독은 이들의 색깔에서 개성과 갈등을 동시에 보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무릎팍 도사처럼 적중했다. 소규모에게 영화를 찍겠다고 제안을 했고, 민홍에게 한 달 동안 고민할 짬을 주었다. 특별한 거부감이 없던 민홍은 승락을 했고, 그 때부터는 카메라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결국 1년을 넘게 촬영한 민 감독은 요조와 은지가 화해를 하는 장면을 찍고 나서야, 이 영화를 끝내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다. 예쁜 것은 그녀들의 외모가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모습이었고, ‘음악하는 즐거움’을 잡아내야겠다고 마음먹은 한 감독의 소박함이었다. 3장“그래, 개봉하면 어떨까?”평소에 친분이 있던 이모션픽쳐스의 임재철 대표님으로부터 급히 연락이 왔다. 제천국제영화제가 시작할 무렵 를 개봉하면 좋을지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그야 요조 팬 클럽까지 몰려오면 최고죠!” 결정은 간단했다(사실 반대했어도 개봉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이 영화의 배급을 이모션픽쳐스가 맡으면서 극장 개봉이 현실화되었다. 영화제 출품작이지만 제대로 된 포스터도 스틸도 없었다. 저예산 독립영화라 충무로 개봉작이 누리는 화려한 마케팅이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침 영화지 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고 지낸 최창락 실장이 영화에 반해, 재료비만 받는 조건 하에, 이 영화의 포스터를 담당하면서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에 초가을 개봉을 준비했기 때문에 잔디밭이 있는 한강 고수부지에서 포스터를 촬영했다. 32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음악여행을 떠난 밴드의 즐거움을 담아낸 촬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영화가 극장을 확보하지 못하는 바람에 개봉이 올해 초로 밀리고 말았다. 영화가 한 겨울에 상영하게 되자, 멋지게 찍은 야외 컷은 한 장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촬영을 위해 한강에서 직접 노래를 부르던 이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라 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당시의 모습을 이곳에 남겨보았다(소규모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다). 민홍과 은지는 포스터 촬영을 위해 모인 친구들에게 작은 콘서트를 선사했다. 4장 “아니, 그것도 능력이죠!” 술자리에서 민홍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소규모는 예쁘게 나오질 않는다. 솔직히 감독님께 당한 거 아니냐?”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제는 끝났으니 솔직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그러자 그룹의 리더 민홍은 “애들 살살 술 먹여가면서 괜찮다고 꼬시는 것도 다 능력이죠!”라고 반문한다(민 감독은 민홍에게 밥 딜런에 관한 다큐멘터리 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은지 역시 “영화 찍던 중에 한 번 봤는데, 예쁘게 나오기는 틀렸다”고 단념했단다. 이들도 자신의 모습이 창피할 수 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그 당시 우리의 모습이니까”라고 인정하는 민홍의 자세는 여유가 있었다. “영화가 철저하게 민 감독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고 나니까 이 영화를 왜 찍었는지 잘 알겠어요. 만약 몰랐으면 화가 났을 겁니다. 그래서 벌써 차기작이 궁금하네요.” 그렇다면 민 감독의 차기작에서 음악을 담당하면 어떤가 질문하자, 바로 “싫은데요!”(웃음)라고 받아 친다. 민홍은 음악과 싸우고 고민하는 걸 행복해 했다. 그는 더 늦어지더라도 자신의 궤도를 달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영화가 개봉을 하면서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들을 다시 만났다. 극장에서 모더레이터를 하던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여름에 준비하던 작업은 어찌 되었나요. 새앨범은 나오나요?” 민홍은 웃으며, 뜻밖의 정보를 전해주었다. “바로 엎어졌어요! 지금은 동요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의미있게 들을 수 있는 작업이란다. 특히 이 노래를 만들어서 소규모 홈페이지에 올릴 예정이다. 누구나 무료로 다운받아서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민 감독은 이미 술자리에서 들어봤는데, 정말 좋다고 귀띔을 해주었다. 영화 속 민홍만큼이나 세상 속의 민홍도 변화와 성장에 가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5장“이성이 편하다보니 은지를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가게 되었어요”영화가 소규모 모든 멤버를 똑같이 다루고 있지는 않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잡음이 있었다. 특히 본격적으로 시사회를 하자 “요조하고 사이가 나쁘세요?”라는 식의 질문이 민 감독에게 쏟아졌다. 너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 지겨울 만도 했다. 이에 대해, “각각의 인물에 대한 거리가 같지 않아요. 물리적으로 함께한 시간도 다르고. 분명 서운함도 있었을 겁니다. 어떤 인물은 내면으로 들어가려 하고, 어떤 인물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 때문에 느끼는 서운함 같은 것 말입니다. 100% 본인의 모습은 아니죠. 왜곡이나 과장 부분이 있어요. 이야기가 가지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요조와 사이가 나쁜 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차기작은 여전히 다큐멘터리이다. 386세대가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꼰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대학생들의 삶이 어려운 것은 그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지금은 88만원 세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요. 386세대가 그들에게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처해있는 신세대에게 설득력이 있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리서치를 하고 있어요. 소규모를 찍은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신 세대의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보는 민 감독은 “요조가 선택한 삶 역시 긍정적으로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관객과의 대화가 끝 난 후, 뒷풀이에서 이 영화를 응원하러 온 영화 관계자들이 배급사 쪽에 질문했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개봉한다는 게 어렵지 않으세요?” “포기하고 마음을 비우면 쉬워요!”라고 말하는 대표님. 이 역설적인 말이 이 영화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난 만 명을 돌파하는 날에 소규모 친구들을 극장에 다시 불러 공연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 기념행사를 하자는 덕담을 했으나, 현실이란 늘 무겁고 버겁다. 나 역시 극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 영화를 많이 응원해주세요”라고 말하는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가 천만 관객을 논하는 세상이지만, 이 영화는 생존을 위해 외롭게 3천 명의 지지를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