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킷. 인스탄롤로지 by 지일근. 팬츠. HORACE. 이너와 신발.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음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음악 선생님이었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KBS 어린이 합창단에 다녔어요. 합창단 여자애들 대부분이 선화예중이나 예원학교에 입학할 때, 어머니께서 나는 일반 중학교에 가게 하셨죠. 스스로 진로에 대한 확신이 들면, 그때 말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내 안에 어쩔 수 없는 '피'가 흘렀는지 음악이 하고 싶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악을 시작했어요.
서울예고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대 학사와 석사를 마친 이력은 전형적인 모범생처럼 보여요. '모범생'이란 말이 틀리지 않아요. 크게 어긋난 적 없이, 정해진 룰을 따라가려했던 생각은 분명했어요. 그리고 다소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때는 그것이 곧 학업에 정진하는 일이라고 여겼어요.
그런 엘리트 음악 학도가 어떻게 이런 일탈을 감행했나요. 기존에 선생님들이 해오신 '정석'대로만 노래를 부르다보니, 내 안의 것을 자유로이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클래식을 기초로 나만의 새로운 것을 재창조해보고 싶었어요. 물론 주변의 반대가 심했죠.
그런데로 결심을 고집한 이유는? 한마디로 그들이 내 인생을 책임지지 않으니까요. 남들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본명이 정기열이죠. 카이란 새 이름은 이제 익숙해졌나요. 99명이 반대했는데, 한 명이 찬성해서 정한 이름이에요. 그 한 명이 바로 나예요. 매니저가 만화 <피아노의 숲>에 등장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카이'에서 착인했대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여러 좋은 의미를 끌어올 수 있더라고요. 중국어로 '열다'라는 뜻으로 '음악의 새 장을 열다'는 의미도 되고, 헬리어로는 '그리고'라는 접속사라니 '클래식과 대중을 연결시킨다'는 말도 되잖아요.
12월에 첫 싱글 앨범이 나왔죠. '벌'이란 곡을 처음 받았을때, 마음에 들던가요. 솔직히 처음엔 조금 심심한 게 아닐까 걱정도 됐어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샘플링한 곡이었고, 멜로디 라인도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발라드가 대부분 4분의 4박자, '벌'은 4분의 6박자예요. 일반 대중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흔히 듣던 발라드와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나만의 새로운 감성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곡이라고 생각했어요.
프로듀서 김형석과의 만남이 이색적이네요. 미국의 팝페라 가수 조시 그로반이 데이비드 포스터라는 희대의 작곡가를 만나 빛을 발했잖아요. 클래식한 기반을 가지면서 한국사람만의 따스한 감성을 지닌 한국형 제작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형석이 형 본인도 가볍고 자극적인 대중가요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때였죠. 그렇게 서로 시기와 형태가 잘 맞은 것 같아요.
카이로 변신하면서 롤모델로 싶은 뮤지션이 있다면? 롤모델로 삼을 만한 뮤지션이 없었기에, 스스로 많이 공부하고 생각해내야 했어요. 로비 윌리엄스, 셀린 디온, 스위트 박스를 비롯해 클래시컬한 요소를 가진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접하면서 내가 추구하는 음악과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노력했죠.
앞으로 어떤 활동을 펼칠 예정인가요. 클래식계의 미카 혹은 노래하는 막심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클래식'에 모티브를 하고 있지만 열정을 표출하는데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가수'가 되고 싶어요. 크로스오버라는 게 아무런 한계가 없잖아요. 성시경 형처럼 좋은 목소리를 가진 발라드 가수와 함께하거나, 아예 시나위처럼 전혀 다른 형태의 음악과 만날 수도 있겠죠. 스스로가 기대가 많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