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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7. THU

LITTLE DROP OF POISON #3

후렴구가 있는 향수

후렴구가 강한 노래처럼 강렬하고 매력적인 화이트 패출리(White Pachouli) by 톰 포드


톰포드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영국적이다. 나는 그가 영국인이면서 상업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미국인이면서 노블한 느낌이다. 내게 그는 존경할 만 하지만 사랑할 정도는 아니다. 패션, 선글라스, 코스메틱 그리고 향수까지… 그의 모든 컬렉션은 고급스럽지만 그만큼 비싸다. 아무나 매장에 들어와서 자신의 제품을 만지는 게 싫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붙여 놨다고 당당히 말했을 정도니까. 나는 톰 포드의 향수를 다섯 병이나 샀다. 솔직히 고백하면 한 병당 삼십만원이 넘지 않았다면 결코 다섯 병까지 사들이고 싶진 않았을 것 같다.

언젠가 톰 포드가 자신의 향수 라인 중 타바코 바닐라를 가장 즐겨 사용한다는 잡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에디터는 디자이너 톰 포드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타바코 바닐라 향이 먼저 방안으로 들어왔고 그 다음에 톰 포드의 흰 셔츠가 보였다 라고 했는데, 나는 그 표현이 참으로 멋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케팅의 노예인 나는 즉각 타바코 바닐라를 구입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 그 향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역시 남의 취향을 무조건적으로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연 그 에디터는 지금 그 바닐라 타바코 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게 좀 더 인상적인 톰 포드의 향수는 화이트 패출리다. 한번은 게이 동생과 같이 외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만나자마자 난 그 애의 향수를 맞췄다. ‘너 오늘 탐포드 화이트 패출리 뿌렸구나?’ 그는 내가 자신의 향수를 맞춘 첫 번째 사람이라면서, 까무러치게 좋아했다. 향수를 사용하다 보면 어떤 향수는 인상적인 그림처럼 뚜렷하게 기억되고 어떤 향수는 여러 번 맡아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화이트 패출리는 타바코 바닐라와 달리 내게 기억이 잘 되는 향수였다. 물론 기억이 잘되는 향수가 좋은 향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독적인 후렴구가 있는 노래만이 좋은 곡이 아닌 것과 같다. 다만 기억이 잘 되는 향수는 쉽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이 또한 노래와 비슷한 맥락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나는 톰 포드의 음악 취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디렉팅한 영화 <싱글맨>과 <녹터럴 애니멀스>를 보면서, 눈은 호강했지만 귀는 우울했다. 이렇게 세련된 사람이 이토록 음악을 못 고를 수 있을까 싶었다. 그의 형편없는 음악 취향은 그 동안 사 모은 그의 향수들까지도 모두 치워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미스터 포드에게도 부족한 거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후렴구가 뛰어난 화이트 패출리를 좋아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별로 어울리지 않아 아버지께 선물했다. 아버지는 몹시 마음에 들어 하셨다. 우리 가족은 매 주말마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다. 가족 모임이라 우리 모두 편한 옷을 입는데, 오직 아버지만이 늘 수트에 넥타이까지 매고 집안 한가운데에 나타나신다. 아버지의 집안 드레스업은 다소 웃기지만 존경스러운 부분도 있다. 그 드레스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향수이다. 부모님 집에 도착해 아버지를 부르면 방문이 열리고 아버지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화이트 패출리 향이 거실 안에 진동한다. 톰 포드에게 정말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다. 영화와 같이 멋있는 장면이지만, 밥 먹기 전에는 되도록 아무 향도 맡고 싶지 않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다시 말해 저녁 식사 테이블에 오른 맛있는 음식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이 후렴구 강한 향수는 옳지 않다. 아버지가 가족 식사 때 향수 퍼포먼스를 계속 고집하신다면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향수를 바꿔드릴지도 모른다. 아무리 맡아도 뒤돌아 서면 희미한 후렴구가 없는 타바코 바닐라 향으로.

CREDIT

글 김수향
일러스트 수와
에디터 박해미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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