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 에디터스 > 디 에디터스

2017.12.21. THU

EPI. 36 LIFE GOES ON

이웃집 부부 이야기

인생이란 게 꼭 자신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는 것을, 나른하게 누워 수영하듯 유유히 흘러 어딘가에 닿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한 동네 살던 또래 부부가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



동네에, 걸어서 십 분 뛰면 오 분 거리에 또래의 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존재에 안도하는 사이였다. 집에서 슬리퍼 신고 줄레줄레 걸어갈 수 있는 곳에 대화가 통하는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되는 것이다. 대하, 석화, 과메기 등 근처 바닷가 도시에서 공수한 것들을 함께 즐기는 친구들이었다. 제철음식의 즐거움을 그들과 함께 배웠다. 우리는 빈손으로 서로의 집을 찾는 일이 없었다. 텃밭에서 딴 채소, 부모님이 보내주신 된장이나 홈메이드 딸기쨈 등이 두 집을 오갔다. 마트에서 ‘원플러스원’ 마케팅에 혹해 너무 많이 사버린 식재료를 나누기 위해 찾아가기도 했고, 급히 필요한 식재료를 조금 빌리기 위해 찾아가기도 했다.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것을 덜어내기 위해 홀로 찾은 것도 그들 부부의 집이었다. 그들은 그때마다 커피를 내려주곤 했다. 직접 볶은 원두를 갈아 만든 정말 맛있는 커피였다.


그리하여 그들 두 부부는 행복하고 사이좋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 평화로운 마을에도 삶의 그늘은 있다. 어디에나 비슷한 중량의 고민과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비밀을 밝힌다면 누군가는, 도시를 떠나 유유자적 사는 것이 로망이었던 누군가는 슬퍼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랴, 인생이란 그런 것인데.

지난 가을, 이웃 부부는 이 동네를 떠나 이전에 살던 대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전해왔다. 2년 동안의 이곳 생활을 접고 도시로 돌아가기로 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그들의 마음은 다른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넷은 아쉬워하며 얼마 동안 이별을 준비했다. 그런데 그때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우리도 몇 번 갔었던 구례의 작은 커피집 사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어찌어찌 인연이 닿아 그 집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부부는 구례로 이사했고, 구례읍에 있는 작은 가게의 사장님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모든 일들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그 모두가 필연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어디에나 비슷한 중량의 고민과 고통이 존재하듯 또 어디에나 비슷한 중량의 좋은 인연과 행운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부부는 오늘도 작은 가게에서 커피를 내린다. 작고 느린 커피집이다. 앉아있노라면 지금이 몇 시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얼마쯤 잊어버리게 되는 묘한 공간이 부부를 닮았다. 요즘 유행하는 것들로 도배해 놓은 영혼 없는 카페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정함이 있는 곳. 아늑하고 포근한 커피집의 이름은 티읕이다. 토요일 할 때 티읕, 토마토 할 때 그 티읕.


to be continued...

CREDIT

글 김자혜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디지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