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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6. WED

EPI. 32 MY FIRST VEGGIE PATCH

봄 텃밭의 최후

내 멋대로 심어두고는 게으르게 관리했던 나의 첫 텃밭. 봄과 여름을 지나 어느새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이것은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나의 한조각 땅에 관해 이야기다


처서다. 아침저녁으로 풀벌레들이 열창한다. 한낮은 여전히 무덥지만 새벽엔 오소소 소름이 돋을 정도로 서늘하다. 가을이 대문앞까지 찾아 온 것이다. 볕도 다르고 하늘도 다르다. 무엇보다 구름이 달라졌다. 지리산과 뭉게구름이 뒤엉켜 넘실거리는 날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땅에서도 계절의 변화가 느껴진다. 봄여름 텃밭은 어느덧 끝물이다. 작물들 잎사귀가 뻣뻣해지고 씨앗 채종을 기다린다. 이만 정리하고 가을 작물을 심을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사실 텃밭을 일구었다고 하기도 민망한 마음이다. 그저 몇 가지 씨앗과 모종을 사다가 내 맘대로 심고는 방치해 두었다가 아주 가끔씩 꼭 필요한 부분만 손을 봐주고, 그 와중에 염치없이 열매를 따먹는 날들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용감한데다가 게으르고 뻔뻔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첫 경험을 기념하고 반성하고자 한번쯤 결산해보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참아가며 이 글을 쓴다.


텃밭은 쪼그려 앉아 후비적거리기는 일로부터 시작한다. 다른 말로 김매기. 땅에 살던 잡초와 잘려진 뿌리, 돌멩이 등을 골라내고 단단했던 땅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이다. 이틀 정도 김을 매고, 장에서 사온 퇴비 한 포대를 뿌려 흙과 섞고, 다섯 개의 이랑을 만든 뒤 지지대를 세웠다. 지지대 곁에는 방울토마토와 가시오이, 매운 고추 모종이 각각 자리를 잡았다. 대파 모종은 텃밭 가장자리에 따로 열맞춰 심고, 로메인 상추와 고수 씨앗은 포트에 따로 심어두었다. 책에서 본대로 오이의 지지대에는 가로세로로 지그재그 끈을 묶어 오이 줄기가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나의 작은 텃밭의 시작. 2인 식구에 맞게 다양한 모종을 조금씩 심었다. 


작고 앙상했던 모종들은 놀라운 속도로 자라났다. 오이와 토마토는 첫 열매를 맺기도 전, 그들을 위해 세워 둔 지지대를 넘어섰다. 더 기다란 지지대를 세웠어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때였다(지지대를 뽑고 새로운 기둥을 세우면 뿌리가 다칠 수 있다). 각자 영역을 만들어주었건만 그거야 초보 네 사정이라는 듯 오이와 토마토는 서로 뒤엉켜 자라났다. 갈 곳 잃은 가지들은 땅으로 뻗어 나와 좀비처럼 기어다니기도 했다. 조금 더 지나고 보니, 지지대의 크기보다 더 큰 문제는 모종 사이의 간격이었다. 너무 좁게 심었던 것이다. 간격이 좁으니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얼마쯤 포기하게 되고, 가지치기를 제때 해주지 않으니 통풍이 잘 안 되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상상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작고 앙상한 모종들을 보며 그들이 얼마나 성장할지 가늠하지 못했던 것이다.


뜨거운 볕에 땀이 줄줄 흐르고 모기들이 사방에서 공격하는 고된 텃밭일.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벌레, 아아 벌레들이었다. 꽈리허리노린재라는 이름도 요상한 벌레가 내 앞길을 막았다. 녀석들은 고추 모종에서 발견됐다. 처음엔 몇 마리 눈에 띄기에 손으로 잡아 저 멀리 비어있는 땅으로 패대기쳤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개체수가 늘어났고, 잎사귀 뒷면에 열을 맞춰 알을 낳지 뭔가. 떼어도 떼어도 어디선가 나타나 나의 고추나무에 달라붙는 놈들! 알을 까고 나온 아주 작고 하얀 새끼들이 바글바글 달라붙어있는 장면은 또 어찌나 징그럽던지, 그걸 본 날 밤에는 꿈도 꾸었다. 새끼 노린재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내 팔과 다리를 한가득 메우고 쨍쨍거리는 꿈(물론 실제로 소리를 내진 않는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난 뒤 며칠 동안 텃밭에는 나가보지도 못했다. 창문 너머로 텃밭을 내다보며 어쩌나 어쩌면 좋은가 발만 동동 굴렀다. 텃밭이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줄이야.



(위)오이꽃이 피었던 자리에 나타난 작은 오이. (아래) 방울토마토의 첫 열매.


돌이켜보면 즐거운 일도 많았다. 오이꽃 처음 본 날 와아 이쁘다 하고 지나쳤는데 며칠 뒤 그 자리에 작은 오이가 등장했을 땐 소리를 질렀다. ‘꽃이 진다=열매가 열린다‘ 공식이 사실이었다니! 방울토마토는 가지치기에 서투른 밭주인 탓에 매우 조금씩 열렸는데, 둘이서 먹기에는 충분했다. 한주먹 따다가 깨끗하게 씻고 반 갈라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뿌려 조물거리면 그야말로 여름의 맛. 입속에서 시원함이, 행복이 팡팡 터지곤 했다. 굵어진 오이 따다가 손가락 크기로 잘라 쌈장 찍어 아삭아삭 베어 먹고 불린 미역과 함께 냉국도 만들어 마셨다. 조금씩 심어 둔 루꼴라와 바질은 피자, 스파게티, 샌드위치에 올려 먹고 끼워먹었다. 게으르고 염치없는 주인에게도 얼만큼의 먹을 것을 나눠주니 자연이란 얼마나 너그러운 존재인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반면, 어느 순간 냉정해진다는 것도 실감한다. 자연이란 한없이 너그러울 것 같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인간에게 그들의 시간과 관심을 당당히 요구하는 존재. 그리고 시간과 마음을 쓰면 그 이상의 것을 내어주는 존재인 것이다. 올해 첫 재미를 맛보았으니 다음엔 좀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세월 따라 실력과 요령도 조금은 늘어날 테니까.




to be continued..

CREDIT

글 김자혜
에디터 김영재
디자이너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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