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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1. TUE

EPI. 30 SOBOROO GARDEN

소보루 식물도감③

작은 집에 이토록 다양한 식물이 살 수 있다니! 일년동안 관찰하고 내 맘대로 써내려간 식물도감, 그 두 번째 이야기

 

고백하자면 지금 우리 집 주변은 엉망진창이다. 특히 뒷뜰과 텃밭은 정글숲이나 다름없다. 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으로 잡초 뽑기를 하지 않은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실과는 상관없이 자연은 제 할 일을 한다. 토마토와 오이, 고추는 매일 둘이 먹을 만큼의 열매를 내어주고, 혹시나 하고 씨를 심어보았던 아보카도와 레몬은 싹을 틔워 쑥쑥 자라나고 있다(할렐루야!). 큰 나무들, 작은 허브들 모두 그 어느 때보다 푸르고 씩씩하게 이 계절을 만끽하는 중이다.
이 작은 집에 수십종의 식물들이 산다. 전 주인과 전전 주인과 그 이전 주인이 심은 것, 내가 심은 것,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 그 온갖 것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 작은 집에 모여 사는 다양한 식물들, 그 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몇 가지 꽃과 나무를 골라보았다.

 

이베리스(Iberis Sempervirens)
봄이 오고, 오일장에 마침내 꽃모종 좌판이 열린 날, 쌈짓돈 모자라면 영혼이라도 팔 기세로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처음 겪어보는 설레고 들뜬 마음이었다. 드디어 봄이 왔다고, 시골에서 맞는 봄이란 게 이토록 감격스러운 일이었냐고, 그걸 당신들끼리 만끽하고 있었냐고 소리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분홍 철쭉 모종을 신중하게 고르고 있는 어느 할머니 곁에 쪼그려 앉아 구경하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화려하게 알록달록 뽐내는 꽃들 사이에서 눈만 껌뻑이던 아주 작은 꽃 모종이었다. 꽃 파는 아주머니는 눈꽃이라 했고, 집에 와 찾아본 이름은 이베리스였다.


양귀비목 겨자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꽃인 이베리스는 피어나는 모습이 특히 귀엽다. 엄지손톱만한 둥근 꽃망울을 맺은 후 작은 꽃잎을 순서대로 하나씩 피우는데, 어린 아이의 희고 작은 손의 다섯손가락을 엄지부터 새끼까지 천천히 하나씩 펼치는 모양새다. 어제는 따봉, 오늘은 가위, 내일은 세 살. 그런 식으로 한 손가락씩 펼쳐 마침내 손보자기가 완성되면, 모든 꽃잎이 피어나 마침내 한송이 꽃이 된다. 꽃잎 하나하나의 모양도 좀 특이한데, 네 장의 꽃잎 중 윗잎 두장은 길고, 아랫잎 두장은 짧은 형태의 꽃이 마치 흰 나비처럼 보인다. 키가 15~20cm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야생초인 이베리스는 줄기를 옆으로 뻗으며 땅에 가깝게 자라 넓게 퍼진다. 화단에 심어두면 마치 하얗게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이니, 눈꽃이라는 이름이 녀석에게는 더 마침맞다 싶다.


지난 봄 어느 날 놀러온 지인이 마당에 주차를 하다가 실수로 입구 쪽에 심어둔 눈꽃을 밟아버렸다. 타이어 자국대로 밟혀 짓눌린 꽃. 웃으며 괜찮다 했지만 속으로는 눈물이 다 났다. 노래 가사처럼 ‘미운 건 오히려 나’였다. 차에 밟힐 수도 있는 곳에 심어둔 내 탓이니까. 지인이 돌아가고 나서 고민에 빠졌다. 녀석이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운다 해도 그 자리에 두면 언젠가 또 밟힐 것이 뻔한데 어쩌나, 눈꽃은 옮겨 심는 것을 싫어한다던데 어쩌나. 고민 끝에 모종삽으로 조심스레 달래가며 뿌리째 파내 집 앞 화단 구석에 옮겨 심었다. 그리고 며칠. 완전히 죽어버린 모양으로 웅크리고 있던 녀석이 살살 고개를 든다. 그리곤 다시 따봉, 가위, 세 살 순서로 꽃을 피운다. 아아, 이런 것 때문일까, 이런 장면을 보는 희열 때문에 사람들은 꽃을 심는 것일까.

 

 

개밀(Tsukushi Wheatgrass)
기가 찼다. 개밀이라니? 사람 사는 집 마당에 개밀이라니?? 좀 신기하게 생긴 잡초가 자라났기에 찾아보니 개밀이란다. 개밀은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짐작하면 쓸모없고 흔해빠진 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벼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농촌 경작지 주변에서 관찰되는 야생보리다. 개밀은 가을에 발아해 생육을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겨울을 난다. 그리고 이른 봄 본격적으로 성장해 여름이면 다발 형태로 자란다. 특성으로 미루어볼 때 이 녀석은 지난 가을에 우리 집 마당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리고 아주 작은 식물의 형태로 그 자리에서 겨울을 견뎌냈을 것이다. 남편과의 토론이 시작됐다. 이것을 뽑을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자리에 자라났으니 우선 두고 보기로 했다. 시원시원하게 줄기를 뻗는 모양새가 멋져 보이기도 했고, 장마가 지나면 꽃 이삭이 길게 자라 꽃을 피운다 하니, 겨울을 이겨낸 녀석 그래도 꽃은 한번 피워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싶기도 했다. 여름이면 뽑기 힘들 정도로 억세게 자랄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곧 개밀을 뽑아야 한다. 그래서 더더욱 여기에 기록한다. 한때 우리집에 개밀이 있었습니다, 느낌이랄까.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 잡초라 뭉뚱그려 칭하는 것들도 그 이름을 알게 되면 그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고, 더 알게 되면 차마 뽑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니, 하아..그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샤스타 데이지(Leucanthemum x Superbum)
어느 날 오후, 초대한적 없는 손님들이 불쑥 찾아 왔다. 시골에선 흔한 일, 느닷없이 소리치는 ‘계세요?’ 소리에 이젠 그리 놀라지도 않는다. 잘 알지도 못하는 세 사람과 함께 우리집 거실에 둘러 앉아 차 한잔씩 마셨다. 대체 무엇이 궁금한걸까, 내게 원하는 것이 있는 것인가 생각하며 어색해하던 중, 다행히 일찌감치 자리를 털고 일어나 준다. 배웅하는 길, 불청객 중 한명이 대뜸 차 트렁크 열어 꽃 한 줌, 풀 한 줌 쥐어 주었다. 한 줌 풀은 루꼴라였다. 뿌리채 건네 받은 루꼴라를 텃밭 한쪽에 심어두고는 봄철 내내 맛나게 즐겼다. 피자 구워 얹어 먹고 파니니 샌드위치에 끼워도 먹었다. 여름볕이 뜨거워질 무렵, 파종해 다시 키울 요량으로 줄기째 볕에 말려 씨를 털었다.


루꼴라와 함께 얻은 한 줌 꽃은 샤스타 데이지였다. 샤스타 데이지는 여름국화다. 가을에 피는 국화가 아련하다면 5월부터 7월까지 피는 샤스타 데이지는 명랑하다. 저녁 무렵 꽃을 오므렸다가 다음날 아침해가 밝아오면 어김없이 다시 피어나 하루 종일 화창하게 희다. 샤스타 데이지는 프랑스 들국화와 동양의 섬국화를 교배해 만든 개량종으로, 마가렛이나 구절초와 비슷해 보이지만 마가렛보다는 키가 훨씬 크고 구절초와는 잎 모양이 전혀 다르다.


뿌리가 잘린 채 나에게 온 꽃을 어쩔까 고민하다가, 아래채 손님들이 사용하는 마루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초대한 적 없는 손님들에게 더 살갑지 못했던 나의 얕은 마음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한송이 한송이 꽂았다.

 

 

부레옥잠(Eichhornia Crassipes)
아래채에는 높은 마루가 있는데, 그 밑으로 외양간이 있었다. 70년간 가축의 공간이었던 곳을 작업실로 꾸미기 위해 정리하고 보니 돌덩이들이 나왔다. 가축의 여물통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돌구유 두 개. 하나는 자재상에 연락해 앞마당에 흩뿌릴 파쇄석 한 트럭과 맞교환하고, 하나는 집 현관 쪽 감나무 곁에 두었다. 수십 년 동안 이 집에 살던 황소의 밥그릇 노릇을 하던 돌덩이가 이제는 부레옥잠, 물상추 등 수생식물의 안식처로 살게 되었다.

 
부레옥잠은 물고기의 부레와 같은 공기주머니를 가졌다. 둥근 잎자루에 공기를 품고 있어 물 표면에 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물에 둥둥 떠다니며 봄,여름 사이 세력을 넓힌 부레옥잠은 장마와 무더위가 지난 뒤 비로소 꽃을 피운다. 봉황의 눈을 닮았다고 하여 봉황련이라고도 불리는 연보라색 꽃. 이 꽃은 단 하루 피우고 지는 일일화다.

 

 

불두화(Snowball Tree)
수국인 줄 알았다. 다른 이름을 가진 꽃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 글과 함께 실을 그림을 위해 일러스트레이터에게 꽃사진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런 줄 알았다(그래서 일러스트레이션에는 수국의 영문명이 붙어있습니다. 독자여러분 부디 이해와 용서를...)


이 꽃나무는 뽀글뽀글한 부처의 머리처럼 생긴 꽃이라 하여 불두화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월 초파일 무렵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니, 과연 그 이름 잘 지었다 싶다. 제게 꼭 맞는 이름을 가졌음에도 세상의 많은 불두화가 수국이라 불린다. 얼핏 보면 비슷하게 생기기도 했고, 그것을 구분해 이름을 불러주기에는 다들 너무 바쁘고, 제 이름을 잘못 불렀다고 화내는 불두화도 없으니 그럴 만 한 일이다.


불두화의 꽃은 수국과 비슷하지만 잎 모양을 보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수국의 잎은 깻잎처럼 생겼지만 불두화는 세 갈레로 갈라지는 잎을 가졌다. 따지고 보면 수국과 불두화는 먼 친척 뻘도 안된다. 불두화는 백당나무를 개량한 것이다. 백당나무 꽃은 중심의 자잘한 꽃들을 중심으로 바깥쪽에 좀 더 큰 꽃으로 둘러싸인, 산수국과 비슷한 형태다. 바깥쪽의 큰 꽃들은 벌과 나비를 불러모으기 위한 자구책, 일종의 화려한 덫이다. 꽃술이 있는 작은 꽃을 참꽃, 바깥쪽의 화려한 무성화를 헛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쉽게 말해 불두화는 백당나무 꽃 중 무성화만 피도록 개량한 것이다. 암술, 수술이 없이 퇴화된, 향기도 없고 열매도 맺지 못하는 꽃, 불두화. 겨울이면 처량하기 그지없는 앙상한 몰골로 겨우 생을 유지하는, 봄이 되어도 벌과 나비가 꼬이지 않는 이 짠한 나무의 이름을 이제 나라도 제대로 불러주련다.

CREDIT

글 김자혜
에디터 김영재
일러스트 김참새
디자이너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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