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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4. FRI

EPI. 29 SOBOROO GARDEN

소보루 식물도감②

작은 집에 이토록 다양한 식물이 살 수 있다니! 일년동안 관찰하고 내 맘대로 써내려간 식물도감, 그 첫 번째 이야기


마당의 어느 한 구석, 웬 작고 예쁜 꽃이 무성하게 피어나기에 알아보니 고들빼기 꽃이었다(고들빼기의 김치의 그 고들빼기 맞다!). 동네 국밥집에서 맡았던 익숙한 냄새를 따라가 보니 제피나무(초피나무라고도 한다. 경상도에서 짱아치나 향신료로 많이 사용한다)가 있고, 담장 곁에 익숙한 식물이 자라나기에 꺾어 냄새를 맡아보니 깻잎이 아닌가! 지난 여름에 한줌 사다가 심었던 애플민트가 허리까지 자라 작은 숲을 이루었고, 감나무에는 어느덧 감이 영글어간다. 전 주인과 전전 주인과 그 이전 주인이 심은 것, 내가 심은 것, 바람을 타고 날아온 것. 그 온갖 것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었다. 이 작은 집에 모여 사는 다양한 식물들, 그 중에서도 내게 특별한 몇 가지 꽃과 나무를 골라보았다.




향나무(Juniperus Chinensis)
집 입구에는 서너평쯤 되는 잔디밭이 있는데, 이 곳은 우리가 공사하고 잔디를 깔기 전까지 거의 버려진 땅이나 다름없었다. 입구를 위쪽으로 새로 내면서 담 일부를 허물고 땅을 정리하고 보니 그 가운데에 무화과나무 한그루와 정체모를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나는 내 마당에서 무화과를 따다가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장면을 꿈꾸며 소장에게 무화과나무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공사하는 동안 무화과나무 주변에는 각종 무거운 자재들-시멘트 포대, 블록 등-이 쌓였다. 공사가 끝나고, 무화과나무는 입구에서 집 문까지의 동선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뽑아버리고 오히려 작은 나무가 살아남았다. 무거운 자재 밑에 깔려 있던 그 작은 나무, 향나무였다. 나는 어쩐지 미안해졌는데, 알고 보니 인부들과 함께 현장에서 일했던 남편이 오가며 자재를 치우며 돌봐주었다 한다. 그 뒤로 나는 이 나무가 애틋해졌다.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향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매우 느리다. 내 무릎 높이의 작은 나무지만 어쩌면 꽤 오래 이 집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언젠가 이 집을 떠나게 된다면, 그리하여 먼 미래에 추억에 젖어 이 집을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이 나무를 가장 먼저 찾게 될 것 같다.



아메리칸 블루(American Blue)
집 안팎에 있는 모든 나무와 화분을 통틀어 가장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 아메리칸 블루. 이 녀석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시각각 그 모습이 변하기 때문이다. 향나무가 의연하게 늘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메리칸 블루는 변덕이 심한 여고생같은 느낌이다. 아침이면 새파란 꽃을 활짝 피우지만 해가 지면 꽃송이를 다물고 몇몇은 끝내 떨구고 만다. 수분이 부족하면 잎사귀를 잔뜩 오므리고,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썩어버린다. 하지만 이 변덕쟁이 아가씨는 꽤 씩씩한 면도 있다. 한동안 비가 안와 잎이 바싹 말라버린 날에, 혹시나 죽은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물을 듬뿍 주면 한 시간도 안 되어 어느새 기지개를 쭈욱 편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새파란 꽃을 피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십대나 현실에 찌들어버린 삼십대가 아니다. 넘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나는 십대같은 꽃이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물론이다. 날이 추워져 집안으로 들이면 어느새 풀이 죽어 꽃을 피우지 않는다. 잎도 최소한만 남기고 떨군다. 하지만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역시 살아있길 잘했어!’라고 소리를 내지르며 어느새 파릇파릇해진다. 변덕스럽고 엄살도 심하지만,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품은, 씩씩하고 예쁜 아가씨다!



아이리스, 미니 붓꽃(Iris Reticulata)
아이리스는 잎과 꽃봉우리가 붓글씨 쓰는 붓을 닮았다고 하여 우리말로 붓꽃이라고 부른다. 아이리스는 무지개라는 뜻, 붓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이다. 우리집에 핀 키작은 아이리스는 과연 그 뜻과 꽃말을 따라 반가운 무지개처럼 우리집에 왔다. 아이리스는 나의 마당에 찾아 온 첫 손님이었다. 3월 12일, 아직 날이 쌀쌀한데 땅을 뚫고 나온 아이리스의 싹에서 꽃이 피었다. 초보였던 나는 잎사귀 사이에 나타난 꽃봉우리를 알아채지도 못했던 터라 갑자기 피어난 꽃에 그만 어안이 벙벙해졌다. 화단 맨 앞줄에 심어 둔 아이리스는 날마다 하나씩 혹은 둘씩 꽃을 피웠고, 피어난 순서대로 시들어 사라졌다. 고백하자면 아이리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고흐 때문이다. 고흐의 꽃이라면 대부분 해바라기를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그의 아이리스를 훨씬 더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실내가 아닌 외부 정원에서 그린 것들을, 그 중에서도 아를에서 그린 것이 아닌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머물던 시절에 그린 것들을 좋아한다. 비틀비틀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푸른 꽃과 잎사귀들은 노랗고 붉은 꽃들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아이리스는 매일 조금씩 꽃봉우리를 벌리며 천천히 피어나는데, 푸른 꽃 가운데 노란 부분이 점점 더 보이면서 극명한 보색이 절정에 달했을 때 허무하게 져버린다. 고흐가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 이미 져버린 꽃송이까지 그리며 아이리스를 관찰했던 마음을 이제 알겠다. 그건 땅에 심은 아이리스를 매일 관찰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죽단화(Kerria Japonica)
어느 날 남편이 다가와 비밀쪽지 건네듯 슬며시 말해준다. “뒷마당에 한번 나가 봐.” 달려가 보니 담장에 샛노란 꽃이 주렁주렁이다. 우리 동네는 언덕에 자리해 있어 뒷집의 지대가 우리집의 지붕 높이에 위치한다. 우리 집 뒷마당의 경계에 쌓인 돌들이 우리집과 뒷집의 경계를 나누는 돌담인 동시에 뒷집의 지반이 된다. 주렁주렁 피어난 꽃의 정체는 뒷집에서 심은 죽단화였다. 죽단화는 정원수로 이용되는 황매화의 변종으로 녹색의 줄기가 잘 뻗기 때문에 담장을 잘 넘어가는 특징이 있는데, 그 덕에 우리가 이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둥근 공모양의 겹꽃도 아름답지만 끝이 점차 뾰족해지는 톱니 모양 잎사귀가 일품이다. 고마워, 반가워, 중얼거리며 가지 몇 개 꺾어다가 거실 화병에 하나, 아래채 민박 손님 방 화병에 하나, 마당에도 하나 꽂았다. 아무리 음지 양지 안가리고 잘 자라는 나무라지만 뒷마당 구석에 피었다가 져버리는 건 너무 안쓰럽잖아? 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작약(Paeonia Lactiflora)
작약의 봄은 정말이지 이상한 모습으로 시작된다. 도깨비뿔처럼 생긴 것이 땅에서 빼죽거리며 올라오기에 며칠 두고 보았더니, 어느새 줄기를 올려 잎을 내고, 꽃봉우리를 맺었다. 작약이었다. 보통의 아름다운 꽃들은 그 시작부터 아름답지만, 작약은 그렇지 않다. 요상한 모양으로 땅을 비집고 올라와서는 오래 뜸을 들인다. 그 ‘뜸’이란게 꽤나 지지부진한데, 줄기 끝에 딱 하나씩 잎사귀로 감싼 꽃봉우리를 맺은 후에 한참동안 그 상태로 머문다. 조금식 서서히 피어나는 다른 꽃과 다른 점이다. 며칠동안 아침마다 꽃봉우리를 들여다봐도 그대로다. 참고 참다가 “에라이! 피긴 피는거냐!!” 라고 성질을 낼 때 쯤 되니 비로소 꽃이 피었다. 피었다기보다는 터뜨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엄지손가락 한마디만한 꽃봉우리에서 글쎄 내 두 주먹을 모아쥔 크기의 꽃을 터뜨렸으니, 피어나는 순간 그 곁을 지켰다면 펑펑 소리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오래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만개하고 금새 사라져버리는 꽃. 작약의 꽃말은 수줍음이다.


to be continued...

CREDIT

글 김자혜
에디터 김영재
일러스트 김참새
디자이너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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