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 에디터스 > 디 에디터스

2017.05.26. FRI

EPI. 26 THE NATURAL RAWS

그것이 문제로다

늘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시골에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기로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시골생활자의 인생극장, 그 중 몇 가지를 재미 삼아 소개해볼까 한다


1 텃밭에 비닐 멀칭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작은 텃밭을 시작해보려 한다는 말에 이웃 주민 부부가 대뜸 던진 문장. “멀칭 비닐 필요하면 가져다 써요. 우리 집에 많이 있거든요. 워낙 대량으로 판매해서 지난번에 샀던 게 아주 많이 남았어요.” 베풀어준 친절에 일단 감사를 표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비닐? 멀칭? 멀칭 비닐?


급히 검색해보니 논밭을 오가며 많이 보던 것, 검은 비닐로 땅을 꽁꽁 싸 놓은 그것이었다. 멀칭은 농사의 혁명! 농부들에게 자유를 선사한, 그야말로 혁명이다. 작물의 싹이 올라온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영역을 검정 비닐로 덮는데, 그 효과는 매우 다양하다. 쌀쌀한 초봄에 땅의 온도를 올려주고, 땅의 수분이 증발하는 것을 막고, 빗물에 땅이 젖었다가 마르면서 딱딱해지는 것을 방지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잡초의 성장을 막는다는 것. 작물이 있는 곳 외의 모든 남은 땅이 몽땅 검은 비닐로 덮여있으니 잡초가 생기려야 생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텃밭은 말 그대로 손바닥만한 작은 땅인데 그걸 꼭 해야 할지 의문이었다. 만약 올해 텃밭농사를 실패하더라도 내년에 잘하면 되는 것이고. 헐렁헐렁한 내 태도에 어떤 이는 강력한 스파이크 같은 충고를 날렸다. “지금은 뽀얀 흙만 보이니 평화롭지?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너? 하룻밤 만에 잡초가 무릎 높이만큼 자라는 때가 올 거야. 잡초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거지. 한 가지 분명한 건 그 전쟁의 승자는 언제나 잡초라는 거야.”




2 튤립 구근을 파내서 보관할까? 땅속에 그대로 둘까?
이 칼럼을 꾸준히 읽었던 독자라면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11월, 앞마당 화단에 튤립과 아이리스 구근을 심어 올 봄에 아름다운 꽃을 만났다는 것을(아아 그것은 말로 표현 못할 성취, 내 인생 최대의 신비체험이었다!) 그런데 꽃이 지고난 뒤를 미처 생각 못했다. 꽃이 지고 잎사귀도 마르면 구근은 땅 속에서 여름과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 봄에 다시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후의 특성(여름 장마) 때문에 구근이 쉽게 썩어버린다는 것이 함정. 꽃이 지면 바로 꽃대를 잘라 영양분이 꽃대에 가는 것을 막고, 잎사귀까지 마르고 나면 구근을 수확해 그늘진 곳에 보관하라는 것이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땅과 구근에게 맡겨 두는 쪽을 택한다. 배수가 잘 되는 땅이라면, 몇몇 구근은 썩더라도 또 몇몇 구근은 살아남아 다시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방법이라는 것이다.


3 옆집에서 담넘어 온 머위를 그냥 둘 것인가, 없앨 것인가?
초봄 어느 날, 뒷마당에 낯선 식물이 떼거지로 나타났다. 크고 넓적한 얼굴을 가진 놈이었다. 알아보니 표준어로는 머위, 지역에 따라 머구 또는 머우라고도 부르는 것. 날이 따뜻해지니 ‘이웃집 토토로’가 비오는 날 사용해도 될 만큼 커다란 잎사귀가 되었다(그가 쓰던 우산이 정말 머위였던 걸까? 궁금해서 검색해봤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시원스레 펼쳐진 잎사귀가 보기엔 좋지만 문제는 번식력. 머위는 땅속으로 굵고 튼튼한 줄기를 뻗어 끝없이 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어린잎을 나물로 무쳐먹거나 튀겨먹을 수 있고, 그 줄기도 먹을 수 있으니 좀 아깝긴 하다. 꽤 좋은 식재료인데... 머위 얘기를 들은 동네 이모는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집 지은 뒤에 주변 에 퍼진 머위 뽑아버리는 데 일년 정도 걸렸지 아마?”




4 마당의 대나무를 자를 것인가 말 것인가?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앞마당 한 구석에서 대나무를 보았다. 이사를 도와주던 아저씨가 “가지를 자주 쳐주어야 할 거예요. 키도 너무 자라지 않게 하고요.”라고 말씀하셨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대나무는 기왓장도 뚫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번식력이 강하다는 것. 무심코 보아 넘겼던 대나무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동백나무 때문이다. 동백나무 바로 옆까지 대나 무가 번져 그 가지와 잎이 동백을 둘러쌌다. 동백이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나는 동백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말았다. 아마도 빨갛고 고운 꽃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나무를 모조리 뽑아버리고 싶다는 말에 남편이 반문했다. “동백이 꽃을 피운다는 이유로 대나무보다 중요하게 여겨질 순 없어.” 말문이 막혔다. 반박하지 못한 채로 남편의 눈을 피해 몰래 몰래 가지를 자르고 있지만, 봄이 되고 더더욱 활발하게 땅따먹기 중인 대나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혹시 궁금하실까 봐 결론을 공개하자면, 텃밭 멀칭은 하지 않았고 튤립과 아이리스 구근은 수확해 양파망에 담아 건조한 곳에 걸어두었다. 머위는 보이는 대로 뽑아버리고 있지만 녀석이 나보다 끈질겨 자꾸만 다시 나타나는 중이고, 대나무는 다른 나무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계속 잘라내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모든 선택이 도시에 살 때엔 단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는 것들이라는 것. 누군가는 “그런 문제를 그렇게 며칠 내내 고민한단 말이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기선 이상하게도 그런 것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진다. 대체로 ‘자연’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든 저러든 크게 상관없다는 점도 흥미롭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크게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문제라는 것. 나뿐 아니라 자연도 함께 일하고 있으므로, 그저 추구하는 방향을 선택해 조금만 몸을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설마 이토록 작고 사소한 나의 간섭이 불쾌해 자연이 내게 앙갚음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to be continued...

CREDIT

글 김자혜
에디터 김영재
일러스트 김참새
디자이너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디지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