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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1. THU

EPI. 25 THE MOST IMPORTANT THING

솎아내는 용기

하나의 가지에 여러 개의 열매가 달렸을 때 농부들은 작은 것들을 솎아낸다. 솎아내기란 선택과 집중. 때론 삶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지난 해 이맘때였다. 읍에서 볼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로 진입하는 좁은 길. 우리 차 곁으로 어느 중년부부가 두 손 꼭 잡고 지나가는데, 그들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지나간 그들의 미소가 얼마나 해사하고 아름답던지, 충격을 받아 멍해질 지경이었다. 그토록 즐거운 표정을 짓는 중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즐거운 부부를 다시 만난 건 그 해 어느 여름날. 이글이글 뜨거운 날이었다. 소담하게 새로 지은 하얀 집의 돌담을 보고 그것을 쌓은 전문가를 소개받고 싶어 기웃거렸는데, 글쎄 그때 그 부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 일을 하다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부부에게 소개받은 돌담전문가에게 일을 맡기지는 않았고 우리 집 돌담은 아직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지만, 우리는 그날 이후 그 두 분을 알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부산 출신의 귀촌 6년 차인 두 분은 좀 특이한 데가 있었다. 이곳에 내려온 이후 새롭게 만난 사람들 모두가 약속한 듯 똑같이 묻는 두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 첫 번째는 ‘도시에서 뭐 하던 사람들이냐?’이다. 상대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물음이다. 두 번째는 ‘여기서 뭐 먹고 살 생각이냐?’ 라는 질문. 이 질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농촌에서의 자신의 경험치를 뽐내고 이런저런 충고를 하기 위한 일종의 준비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즐거운 부부는 함부로 무엇을 묻거나 가볍게 충고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말은 했다. 반백수로 느릿느릿 사는 일은 보통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즐거운 부부 중 아내를 나는 이모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이모는 근처에 사는 이들 중 유일하게 내가 신뢰하고 따르는 어른이 되었다. 얼마 전 이모를 따라 배밭으로 나섰다. 배 농사를 짓는 어느 사장의 농장에 가서 단기적으로 일을 돕고 매일의 일당을 받는 일, 나의 첫 현지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알바생들의 임무는 적과, 속칭 ‘솎아내기’라고 부르는 일이었다. 배나무 가지에 달린 여러 열매 중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잘라버리는 것. 여러 개의 배가 한 가지에 달리면 영양분을 나누어 가지니 시고 퍼석하고 자잘한 배가 되고, 서로 부딪혀 상처를 입고 병충해 피해도 커지기 때문에 이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가위로 슥슥 잘라내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는 묘하게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배나무와 감나무도 구별하지 못하는 초보에게 자신의 배나무를 맡길 만큼 농촌의 일손부족문제는 심각한 것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적어도 밥값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무거웠다. 더구나 ‘가장 예쁜 것을 남겨라!’라는 작업지시는 어렵게만 느껴졌다. 엄지 손톱만한 작은 배 대여섯 중에 대체 어떤 것을 골라 남긴단 말인가! 내가 자른 것이 가장 예쁜 것이었다면 나중에 다시 붙일 수도 없잖아!!

어찌어찌 서너 개를 탈락시켜도 결국 공동1위를 차지한 꼬마 배 둘이 남곤 했다. 둘을 두고 길게 고민하다 보면 남들보다 작업 속도는 느려지고,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둘 다 남기고 지나간다면 누군가 다시 작업해야 한다. 남의 열매를 함부로 자르는 것이 미안하고 조심스러워 망설였던 것이 결과적으로 농장에 피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엌 선반에, 책장에, 옷장 속에, 인간관계 속에 작은 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내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망설임과 미련을 잘라내 버리고 가장 좋은 것만 남겨 집중하는 일, 어쩌면 이모가 말했던 용기란 이런 데 필요한 것이 아닐까.

to be continued...





CREDIT

CREDIT WRITER 김자혜
EDITOR 김영재
ILLUSTRATOR 김참새
ART DESIGNER 조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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