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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0. MON

EPI.1 귀신 같은 집을 샀다

우리 괜찮은 걸까?

덜컥 집을 샀다. 세 명의 건축가가 다녀갔고 그들은 하나같이 집을 보고 기겁했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귀신 같은 집이 있느냐고.


오늘 드디어 장고 끝에 설계사무소와 계약을 맺었다. 얼마 전에 구입한, 1979년에 지어진 낡은 연립을 말끔히 고쳐 들어가 살기로 한 것. 공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컸다. 설계소장님은 이번 공사를 더러 ‘집 안에 집을 짓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렇듯 무모한 결정을 한 이유는 서촌에 오래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혼한 이래 지난 4년간 둥지를 튼 서촌에 아예 뿌리를 박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서촌에 살 만한 집이 없다는 점. 일단 그 흔한 아파트 한 채 없으며, 한옥이 간혹 매물로 나오지만 한옥이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나마 자산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게 바로 우리가 구입한 옥인연립이었다.

종로 09번 마을버스 종점에 위치한 옥인연립은 6가구가 사는 3층짜리 건물이 총 14동 있는 나름 대단위 연립이다. 단지가 연립치고 크다 보니 2010년 사라진 옥인아파트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인왕산 자락의 경사면을 따라 줄지어선 옥인연립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만큼 낡고 구식이어서 영화나 드라마에 가난한 동네로 왕왕 등장한다. 최근에는 이영애 주연의 SBS 드라마 <신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주인공이 집이 부도난 후 숨어든 집으로 등장했다. 극 중 아들은 이영애에게 “엄마 우리 언제까지 이 집에서 살아야 해?”라며 싫은 티를 냈고, 시어머니는 자신이 이런 집에 살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입만 열면 신세 한탄을 하며 현실을 부정했다. 또 며칠 전에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김새론 주연의 영화 <눈길>을 보다가 몹시도 누추한 집이 나오길래, ‘저기가 어디야’라며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스크린 속 그 추루한 집이 바로 우리가 곧 입주할 옥인연립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올해 39살이 된 옥인연립.


하지만 정작 우리 동네에서 옥인연립은 전혀 다른 존재다. 우리는 지금 옥인연립 맞은편 골목 안에 위치한 한 빌라에서 산다. 스튜디오 형태의 뻥 뚫린 구조가 마음에 들어 입주했는데, 문제는 인왕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너무 밭아서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햇볕이 잘 들지 않으니 집이 항상 설렁하고 꿉꿉하다. 주말 낮이면 집을 탈출하는데, 골목을 빠져나올 때마다 나는 햇볕을 정면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받는 옥인연립이 아득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다가가고 싶으나 그럴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라고 할까. 옥인연립을 향한 막연한 동경은 ‘영국이네’를 알게 되며 한층 더 증폭했다.

우리가 결혼할 시점 옥인연립을 구입하여 수리한 ‘영국이네(막내 고양이의 이름이 영국에서 왔다고 하여 ‘영국이’다)’를 잡지에서 보고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물론 그전에도 옥인연립을 수리한 집이 있겠지만, 그분들의 높은 취향을 반영한 집이야말로 이 고옥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옥인연립의 모습은 나날이 변해갔다.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이사 와서 집을 고치며 집집마다 창문 크기며 모양, 외벽 색 등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옥인연립 일대를 산책하며 어느 집이 가장 예쁜지 둘러봤는데, 그때마다 대화는 하나의 거대한 파사드 같다는 얘기로 귀결됐다.

지난 4년 동안 (남편이) 월급을 알뜰히 모으고 (내가) 주변에서 돈을 끌어온 결과 우리도 옥인연립을 살 여유가 생겼다. 사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2년 전 깨끗이 수리한 집을 웃돈 주고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옥인연립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사서 수리를 할 것인가. 계산기를 두들겨 본 결과 수리한 집에 들어가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라는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세트장 같은 집을 택한 이유는 집에 우리의 취향을 입히고 싶어서였다. 주인을 닮은 집 말이다. 물론 예상을 빗나간, 높은 공사비에 슬슬 후회의 기운이 밀려오지만 그만큼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다. 애간장을 있는 대로 태우는 우리 집, 과연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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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WRITER 이주연
EDITOR 김영재
ART DESIGNER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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