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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THU

비긴어게인

99nights in Paris_EP5. 아트 레터링, 그리고 꽃

미련은 없다. 14년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파리로 떠났다. 패션 디렉터 출신의 퇴사 후 스토리,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일상 속 아름다움을 탐하다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30대 후반에서야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니. 그간의 삶이 허무하지만 이제라도 숨겨진 재능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래서 이번엔 평소 아기자기한 것과 담쌓고 살아온 과거와 반대되는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아트 레터링 배우기와 플라워 마켓 투어다.
우선 아트 레터링에 대해 설명하면 장식적인 요소를 더한 글쓰기로 패션 기자 시절 디자이너 패션하우스의 행사 초대장에서 주로 본 꼬부랑 글씨체다. 이를테면 캘리그라피와 같은. 이곳에서는 수공예 가치가 존중되는 덕분에 특별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을 때 여전히 손글씨를 쓴다. 정성이 다르다. 국내에서 핸드 크림으로 유명한 뷰티 브랜드 불리 1803의 파리 본점에 레터링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이가 상주해 고객이 구입한 제품에 손글씨로 이름을 적어주는 것 역시 이런 의미. 


파리의 일상에서 흔히 보게 되는 아트 레터링. 



한편 플라워 마켓은 최근 들어 부쩍 꽃이 좋아지는 탓이다. 어릴 적에는 꽃 다발을 선물하는 이유를 몰랐지만 이젠 알 것 같다. 예쁜 것은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더불어 파리 곳곳엔 꽃집이 즐비한데, 길거리 밖으로 꺼내 놓은 알록달록한 꽃들은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자태를 뽐낸다. 그래서 꽃꽂이를 배워 볼까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 오를리 공항 근처의 헝지스(Rungis) 마켓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으로 농수산물과 더불어 꽃 시장도 있다. 두 번도 생각할 필요도 없이 가야만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파리의 꽃집.



아트 레터링

컴퓨터 세대인 탓이다. 손 글씨를 쓸 일이 도통 없는 나의 필체는 개성 넘친다고 해두자. 하지만 걱정 없다. 아트레터링은 창의력이 우선시되니 악필이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페라 근처에 작업실을 둔 에티엔느 부아예(Etienne Boyer, www.etienneboyer.com)는 과거 패션 하우스 생로랑과 티파니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아트레터링에 관심을 갖게 되어 프리랜서를 선언. 에르메스, 프라고나르 같은 브랜드와 협업하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그의 도움을 받아 원하는 문구를 종이에 그리는데, 실수하지 않겠다는 일념과 잘하겠다는 투지가 합쳐져 은근히 스릴 넘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펜 한 자루 쥐었을 뿐인데!


좋은 취향과 고급 문화에 관심 많은 레터리스트 에티엔느 부아예. 아트 레터링 역시 고급 문화의 일종으로 고급 문화를 이해하려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래서 그는 물 잔 하나도 무라노에서 공수한 유리잔을 고집한다. 남자가 차린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완벽했던 아침 테이블. 


정말 잘해보고 싶어 집중하던 나.
   

에티엔느의 아트레터링 북의 한 부분. 동물의 이름에 쓰이는 알파벳을 사용해 동물 모양을 형상화했다.



헝기스 마켓의 꽃 시장

이곳에 가는 건 여간 쉽지 않다. 새벽 4시부터 열고 정오쯤 문을 닫으니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고 상인을 상대로 하는 곳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일주일이 한 번 정해진 요일 혹은 상인과 동반해야 한다. 하지만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은 이라면 적극 추천한다. 72만 7천 평방미터의 대지에 47만 평방미터의 건물이 들어서있는 이곳은 국내 일반 여행 가이드 북에는 나오지 않는 정말 특별한 곳이다. 더불어 이곳에서는 아름답고 로맨틱한 프랑스가 아닌 진정한 체험 삶의 현장과 마주할 수 있다. 단, 파리 외곽에 위치하고 큰 규모 때문에 차가 없다면 여간해서 가기 어려우니 시장 사이트와 연계된 여행사 프로그램을 예약할 것을 권한다.(www.rungisinternational.com)


우리나라로 치면 농수산물 시장인 가락 시장과 꽃 시장인 양재 꽃 시장을 합쳤다고 할까? 하지만 그 규모는 몇 배 더 되는 것 같다. 세시간을 꼬박 돌았는데도 반도 채 못 봤다. 일반인들도 제품을 구매할 수 있지만 상인들에게 판매하는 가격보다 좀 더 비싸다. 


현지 플로리스트의 말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지금은 겨울이라 꽃들이 많이 다양하지 않다고 했다. 과연 봄에는 어떨까? 정말 꽃 천국일 거다. 유럽에서 제일 큰 시장답게 이곳의 꽃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네델란드 등 그 출처가 다양하다. 



노블레스 패션 디렉터로 일하다 14년 회사생활을 접고 얼마 전 훌쩍 파리로 떠났다. 파리에서 머무는 99일 간의 이야기를 전할 예정.

CREDIT

에디터 김강숙
글&사진 서재희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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