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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0. THU

WHAT WE SAID IN 2018

<엘르>의 연말 보고서

방탄소년단부터 이영자의 맛집 리스트까지. <엘르>의 관점으로 본 2018년도의 이슈를 정리했다


미스 션샤인

주연 남녀 캐스팅 문제로 잡음이 많았던 <미스터 션샤인>에서 이병헌은 언제나 그랬듯 연기로 자신을 구했다. 그러나 시청자가 드라마 속 사랑을 믿게 만든 데는 양반집 ‘애기씨’이자 의병 고애신을 연기한 파트너 김태리의 공이 크다. 대선배 앞에서 기죽지 않는 카리스마, 목소리에 꿀을 발랐다는 이병헌에 전혀 밀리지 않는 기품 있는 목소리와 안정된 발성으로 드라마를 주체적으로 끌고 갔다. 박찬욱 감독이 김태리를 <아가씨>에 발탁하며 했던 말. “위엄 있고, 주눅들지 않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뜻을 뒤늦게 떠올리며 무릎을 친 이유. 김태리는 <리틀 포레스트>를 통해 규모에 괘념치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을 고르는 총명함까지 증명했으니, 러브(Love)의 순서가 통성명→악수→ 허그라면 그녀는 이미 통성명과 악수를 끝내고 대중과 격한 포옹 중이다. 김다미를 처음 본 건 <나를 기억해>에서였다. 영화는 기억에 남지 않는데, 김다미는 남았다. 딱히 개성적으로 생긴 얼굴도 아니고, 비중이 큰 것도 아니었는데, 몸에서 흘러내리는 묘한 기운이 좋았다. 그리고 두 달 후 찾아온 <마녀>에서 김다미는 그 기운을 적극 활용하며 관객의 시선을 낚아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데도 느껴지는 강단. 극중 자윤이 내뱉는 대사 “나는 레벨이 다르다니까?”는 신인 김다미의 선전포고 같기도 하다. 한지민은 예쁘다. 울 때도 웃을 때도 예쁘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예쁘다. 미안한데, 배우에게 예쁘다는 말 외에는 할 게 없다면 그녀는 서운할까. 그런 한지민에게 <미쓰백>은 예쁜 것 이상을 보여준 작품이다. 왜 더 빨리 이런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신인이 발굴돼 스타가 되는 것도 힘들지만, 이미 스타가 된 배우가 자신에게 굳어져 있던 이미지를 전복시키고 인정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소공녀>에서 제3의 매력을 보여준 이솜, <나의 아저씨>에서 배우 이지은으로 우뚝 선 아이유, <밤치기>에서 이성에게 섹스를 갈구하고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게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진리를 당차게 선보인 정가영도 올해의 ‘미스 션샤인’으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름이다.




플라스틱

2015년, 코에 꽂힌 플라스틱 빨대 때문에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을 발견한 해양학자 크리스틴 피그너는 이 비극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닐봉지와 플라스틱을 줄여야 한다는 경각심은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영상의 울림은 컸다. 세상이 플라스틱과 전쟁을 선포한 지금의 흐름에 한국도 동참했다. 8월, 대형 커피숍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 규제가 시작됐고 이제 마트와 슈퍼마켓에서도 1회용 비닐봉지를 만날 수 없다. 미세 먼지와 유례없는 폭염,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자연재해 소식까지. 전 지구적인 재앙이 감지되는 지금 플라스틱 빨대 하나는 아주 작은 문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쓰지 않는 것.




BTS

2018년, BTS의 이름은 어디에서나 들렸다. 해외에서의 성과는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지경이고, 심지어 한국에서 K팝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BTS를 적극적으로 알고 싶어 했다. 더 이룰 게 있을까? 어디까지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새로운 성취가 들려왔다. BTS의 음악이 길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BTS는 누구인가, BTS는 어떻게 큰 인기를 얻게 됐냐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심지어 현 대통령이 SNS 공식 계정을 통해 “노래를 사랑하는 일곱 소년과 소년들의 날개 ‘아미'에게 축하를 전한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믿기 어려운 일까지 벌어졌다. K팝을 이해하는 전 세계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스타였던 BTS지만, 해외에서 인정받은 후에 비로소 ‘국내 어른’들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마침 BTS의 행보와 인기에는 어떤 의미에서든 자기계발 서적인 구석이 있다. 소형 기획사에서 시작했고, 꿈을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했으며, 때로는 불안하고(아이돌이라는 특성상) 편견 어린 시선을 받기도 했으나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로 엄청난 성공을 일궈낸 청춘들. 그들의 앨범 제목이자 UN 연설의 키워드이기도 했던 ‘Love Yourself’는 그 어떤 책보다 강력한 자기계발의 주문이다. 지금껏 어떤 어른이 청춘에게 실수해도 괜찮다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도 괜찮다고 말해줬던가? 이것은 일련의 흐름을 K팝의 성취가 아니라 BTS 현상이라고 말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빨간 맛

남북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북 간 화해의 기운이 피어나던 지난 2월. 남북 평화와 협력을 기원하는 평양 공연에 레드벨벳이 참석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 사람들은 그룹의 2017년 히트곡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주를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직이게 되는 바로 그 노래. ‘빠 빨간 맛 궁금해 허니’의 가사는 여러 가지로 변주돼 인터넷에 떠돌았다. 우리 안의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했다고 떠들썩했던 게 벌써 2002년의 일이지만 그 뒤 오랫동안 경직됐던 남북 관계와 갈수록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북한의 행보에 남과 북의 간극은 벌어질 대로 벌어졌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레드벨벳이 ‘빨간 맛’을 부른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4월 27일. 11년 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그 뒤로도 두 정상은 두 번 더 만났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해 가는 지금 반공과 전쟁, 북핵, 숙청이라는 단어들의 자리에는 냉면과 평화 그리고 ‘빨간 맛’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게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다.




이영자 맛집 리스트

시작은 휴게소였다. 이영자 덕에 전 국민은 ‘소떡소떡’이라는 휴게소 메뉴를 알게 됐고, 호두과자를 담은 봉지를 닫으면 과자가 눅눅해지기 때문에 열어둬야 한다는 생활의 지혜도 배웠다. 데뷔하자마자 톱스타가 됐지만 여성 유명인으로서 많은 부침을 겪어야 했던 이영자가 맛집, 그것도 휴게소 맛집으로 우뚝 일어서리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영자의 맛집 리스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휴게소 맛집 투어를 시작하며 주목받는 프로그램이 된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지역 맛집, 서울 곳곳의 숨은 맛집까지 소개했고, 이 리스트는 최화정, 송은이, 김숙과 함께 먹으며 고민을 상담하는 <밥블레스유>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PPL을 위해 드라마 스토리를 바꿔야 할 만큼 모든 것이 광고와 통하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 기어코 딱히 자랑할 만한 푸드 코트 메뉴가 없는 휴게소를 진심을 다해 안타까워할 줄 아는 사람의 진심을 발견하고 그것에 열광한다. 가성비가 맛집을 소개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되고 가난한 젊은 세대는 그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식사하지만, 여전히 맛있게 먹는 일이 가치 있고 일상의 행복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영자의 맛집 리스트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TMI

정보가 너무 많다. 알고 싶지 않았던 혹은 알게 되리라고 상상하지도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될 때도 많다. 자신을 팔면 팔수록 주목받을 수 있고 그게 셀프 브랜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안다. 누구나 SNS 계정을 운영하고, 누구나 유튜브를 하는 이유다. 방송은 ‘리얼리티’를 외치면서 누군가의 사생활을 끊임없이 노출한다. ‘TMI(Too Much Information)’는 이 시대를 정확히 요약하는 단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TMI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면서도 알 수 있다면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다. 인플루언서의 계정에는 매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고,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은 그들에 관한 TMI라며 사소한 정보들을 공유한다. 그러니까 TMI라는 표현은 단순히 정보가 너무 많은 것 자체에 지친 현대인의 불평이 아니다. 이 많은 정보 속에서 관심 없는 이야기를 듣는 데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으며, 나에게는 재미있고 중요한 이야기가 너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종의 선 긋기다. 그런데 대체 어디까지가 진짜 정보고 어디서부터 TMI인 걸까?

CREDIT

에디터 김영재, 이마루
글 영화 저널리스트 정시우(미스 션샤인), 이마루(플라스틱, 빨간 맛), <아무튼, 잡지> 저자 황효진(BTS, TMI), 칼럼니스트 윤이나(이영자 맛집 리스트)
사진 KIM YEONG JUN(김태리), COVERTESY OF BIG HIT ENTERTAINMENT(BTS), SM(레드벨벳)
디자인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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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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