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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SUN

WHY I BECAME A PUBLISHER

르 코르뷔지에, 책 그리고 나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의 한국 번역본이 출간됐다. <엘르> 전 피처 디렉터에서 발행인으로 이 책을 만나고 펴낸 과정을 소개한다

바다에 우뚝 솟은 한 척의 미스터리한 선박 같은 빌라 사보아의 옛 모습.




일러스트레이터 장-필립 델롬이 재현한 사보아 가족의 일상적인 모습들.


지금 내 눈 앞에는 리본 매듭된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얼마 후면 하드 커버지에 단단히 쌓여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이라는 제목을 입을 오부와(O VOIS) 출판사의 첫 책. 하지만 커버도 면지도 없는 지금 이 허술한 더미는 어떤 면에서 내 삶과 맞닿아 있다. 그러니까, 왜 난 작가도 아닌 발행인으로서 책을 내느라 이 고생일까. “채퍼블은 출판을 하려는 이유가 뭐죠?” 지난 달 파리에서 만난 내 첫 책의 저자이자 출판사 ‘레 카트르 슈망(Les Quatre Chemins)’ 발행인이기도 한 장-마크 사보아(Jean-Marc Savoye)가 물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어떻게 빌라 사보아에 대한 책을 내는 한국 출판사에게 영상 촬영 퍼밋비를 받을 수 있지?’ ‘저작권료가 너무 많이 책정된 것 같아서 르 코르뷔지에 재단에 얘기해 뒀으니 연락이 갈 거다’는 식의 따뜻하고도 배려 넘치는 말을 이어가던 그가 어느새 눈빛을 바꿔 내게 정식으로 질문하고 있었다. “글쎄요, 이 책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답이었으나, 말하고 보니 그랬다. 나에겐 1인 출판사에 대한 꿈과 포부는 없었다. 단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았을 뿐이었다.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을 어떻게 만났는지 이야기하려면, 우선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오래 몸담은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에서 약 1년간 안식년을 가진 나는 마지막 일정을 ‘롱샹 성당’으로 잡았다. 2016년 당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르 코르뷔지에 건축물 17개 중 으뜸이라 꼽히는 성당의 모습도 궁금했거니와 안식년 동안 평안을 찾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축복하며 휴식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하얀 건물 외벽에 손을 얹고(그땐 그냥 그러고 싶었다) 내 안에 있던 사랑하는 이들의 이름을 다 비워냈을 때 나를 찾아온 것이 바로 성당 아트숍에서 만난 소박한 책 한 권이었다.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르 코르뷔지에의 또 다른 건축물인 ‘빌라 사보아’를 방문했을 때 구입하지 못했던 프랑스 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Les Heures Claire De La Villa Savoye>을 배송받았던 날, 나는 롱샹에서 만난 책과 이 책이 하나의 이미지로 겹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리즈로 소개하면 재미있겠는데!’ 아마 그때가 오부와의 첫 프로젝트인 ‘르 코르뷔지에 3부작’을 기획한 순간인 것 같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일인 줄도 모르고.




지난가을에 포착한 빌라 사보아의 ‘건축적 산책로’와 복도.


먼저 오부와의 뜻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프랑스어로 ‘오! 보다’는 뜻으로 ‘함께 보고 싶은’ 책을 골라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오, 이것 봐!’ 감탄하며 본 것을 나눈다는 뜻도 있다. 오부와가 선택한 첫 번째 책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1920년대에 일관성 있게 선보인 ‘하얀 빌라들(Villas Blanches)’ 중 최고의 주택 건축으로 손꼽히는 빌라 사보아의 이야기를 건축주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에세이집이다. 빌라 사보아는 르 코르뷔지에가 1928년에 건축 의뢰를 받아 피에르 잔느레와 함께 1930~1931년에 걸쳐 지은 주택이다. 저자 장-마크 사보아는 빌라 사보아 건축을 의뢰한 건축주 피에르&유제니 사보아(Pierre & Euge′nie Savoye)의 손자로 그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빌라 사보아를 지었던 이유와 건축 과정, 끊임없이 사보아 가족을 괴롭힌 문제처럼 사적인 이야기를 역사적 사료와 함께 담았다. 그가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스페인 건축 서적 <찬란한 시간들: 빌라 사보아 건축 프로젝트 Les Heures Claires: Proyecto y Arquitectura en La Villa Savoye>의 저자인 요셉 케글라스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오로지 빌라 사보아라는 주제로 617쪽 분량의 책을 완성한 요셉 케글라스가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보냈어요. 책을 완성했으니 실제로 그 집에 살았던 주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였죠. 대신 내가 작가를 만났는데, 책이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연구서였어요.” 책의 추천사를 쓰기로 하고 내용을 더듬는 과정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살았던 빌라 사보아의 가치를 재발견한 그는 이후 다양한 참고 문헌과 가족에게 전해 들은 내용을 엮어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을 완성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이 아름다운 집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1940~1945년까지는 독일군, 그 후에는 미국군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후 사보아 가족이 집을 되찾았을 때는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폐허가 돼 있었고 이후에도 빌라 사보아의 시련은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도. 이런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이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장-필립 델롬(Jean-Philippe Delhomme)의 아름다운 삽화도 한몫했다. 장-마크 사보아가 어떻게 이 바쁘고 유명한 사람을 섭외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들들의 학부모로 만난 사이였다. 장-마크 사보아가 요셉 케글라스를 위한 추천사를  쓸 2007년 즈음, 장-필립 델롬은 자신의 전시 카탈로그에 쓰일 드로잉 구상을 위해 처음으로 빌라 사보아를 방문했고 그때 그곳에 살았던 사보아 가족이 무척 궁금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몇 년 후, 건축주의 후손인 장-마크 사보아를 만나 사보아 가족의 일상을 그리게 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한 것 같다. 마치 내가 이 두 사람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될지 몰랐던 것처럼.



건축주 가족의 시선에서 건축물이 걸작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조명한 신간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솔직히 이 글을 쓰기 전까지 한숨을 약 1000번은 쉰 것 같다. 모든 과정을 혼자 판단해야 하는 1인 출판과 심적인 부담에서 벗어나 온전히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기에 쉽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출간하는 과정이 외로운 싸움만은 아니었다. 레 카트르 슈망 출판사와 체결한 계약서가 극적으로 도착해 하루 남은 프랑스문화원의 선인세 지원 프로젝트(PAP-IF)에 지원한 것이 성공했고, 한솔제지에 제안서를 넣어 평소 눈독 들였던 최고급 아트지 ‘인스퍼M’을 후원받을 수 있었으며, 능력 있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번역도 깊이 있게 완성했다. 후배들의 책 & 굿즈 디자인 참여와 더불어 텀블벅에 올린 북 펀딩도 꽤 좋은 성과를 냈다. 또 이 책의 내용을 확장시켜 전시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장-필립 델롬의 오리지널 드로잉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들로 구성되고 있는 지금, 수많은 동역자들이 나와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 전시 굿즈 중 몇몇 패션 아이템을 기획하던 중 렉토(그 ‘핫’한 브랜드가 맞다)에서 디자인 후원을 받는 행운도 얻었다. 조금 전 메일을 열어보니 주한 프랑스문화원에 출간 전시 소식을 알리며 행사 지원 요청을 한 지 하루 만에 11월 30일부터 12월 16일까지, 효자동 더 레퍼런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전시에 ‘주한 프랑스대사관-주한 프랑스문화원’ 명칭 후원과 더불어 홍보 지원을 하겠다는 반가운 소식도 도착했다. 얼마 전엔 거의 1년 동안 답을 기다린 롱샹 성당의 일러스트레이션 히스토리 북의 출판 허락도 떨어져 ‘르 코르뷔지에 3부작’ 2탄이 확정됐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3탄의 소재를 찾아보겠다는 오지랖도, 마음도 넓은 작가 장-마크 사보아를 만나 출간 과정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도움을 받고 있고, 그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는 오부와의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의 재능 지원까지, 어쩌면 첫 출판에 너무 많은 행운이 깃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은 이곳에서 행복했을까?’ 장-마크 사보아는 이 책의 말미에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살았던 빌라 사보아에서의 삶에 물음을 던진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를 뒷받침할 어떤 서류나 사진, 영상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고단한 출판 & 전시 과정을 거치며 ‘행복한가?’ 자문해 보면, 글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지금을 돌아봤을 때 흐뭇한 생각이 들 정도의 행복이라면, 머지않아 나도 행복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다들 열심히 준비한 책을 봐주고, 전시에 놀러오면 그만한 행복이 또 없겠다. 이 참에 17일간 진행되는 무료 전시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전시가 열리는 효자동 더 레퍼런스 갤러리는 3호선 경복궁역 인근에 있다.

CREDIT

글 채은미
에디터 김아름
사진 COURTESY OF O VOIS/ⒸJEAN-PHILIPPE DELH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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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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