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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MON

HAPPY MEAL

잘 먹는 여자들

과시와 경쟁, 평가가 따라오던 남성적 시선의 '먹방'을 지나 막 도래한 여자들의 행복한 먹방!


친구들과 곱창집에 갔다. 오후 6시도 안 된 시간이었는데 가게를 둘러쌀 정도로 대기 줄이 길었다. 겨우 자리에 앉았지만 곱창 4인분을 원한다면 2인분에 다른 메뉴를 섞는 식으로 총 주문량의 절반만 곱창으로 주문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안정된 거래처가 있는 유명한 가게라 이 정도지 다른 곱창집들은 주문량을 소화할 수 없어 일찍 문을 닫는다며 주문받는 직원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과연 곱창대란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 모든 상황은, 믿기지 않지만 한 걸 그룹 멤버의 ‘먹방’에서 시작됐다. <나 혼자 산다>에서 홀로 곱창 2인분을 먹은, 마마무의 화사가 주인공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과거 걸 그룹 멤버들을 모아놓고 음식을 먹는 모습을 관전하고 점수를 매기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파일럿 방송 후 엄청난 비판을 받았고, 포맷을 바꾸었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걸 그룹의 멤버가 먹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똑같다. 그렇다면 이것과 화사의 곱창 먹방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바로 외부 요소와 상관없이 오직 먹는 행위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카메라의 존재나 음식을 만든 사람, 같이 먹는 사람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여성을 본 적 있는가. 음식을 먹는 걸 그룹을 바라보는 관음적인 시선이나 젊은 여성에게 어울리는 혹은 어울리지 않는 음식에 대한 편견을 조금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곱창을 맛있게 먹는 화사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 신선했다. 그리고 음식을 즐기며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입 안에 침이 고이는 당연한 본능의 결과로, 화사와 곱창이 연관 검색어를 넘어 전국의 곱창 가게를 붐비게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음식과 요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가 소비되는 방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잘 먹지만 여전히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 젊은 여성으로 품평과 부러움의 대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잘 먹지만 사회적 기준에서 과체중이기 때문에 언제든 무례한 말을 들을 수 있는 폄하의 대상이다. 방송이라는 세계 속에서 어머니의 집밥이 아니고서는 전문 영역으로서의 요리를 담당하는 셰프 역시 남자만 존재했다. 지금까지의 먹방이 남성 방송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이유다.



이영자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런 방송 흐름에 균열을 냈다. 이영자의 ‘휴게소 먹방’의 핵심은 순수하게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전달받는 행복감이다.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홀로 순수하게 곱창 맛을 즐긴 화사와 비슷한 태도다. 이영자는 모든 지역과 장소마다 자신만의 맛집을 가지고 있는 미식가로서 자신을 드러냈지만, 그걸 과시하는 대신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음식마저 지적 과시와 경쟁의 일부가 돼버린 풍토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음식을 좋아하는, 특히 대식가인 여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체형의 평가와 폄하로 연결 짓는 데 거리낌 없었던 방송 풍토에서 가장 기억되는 스캔들의 주인공이 이영자다. 그가 다른 무엇도 아닌, 제대로 음식을 만끽하고 음식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것은 2018년 방송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런 이영자와 기획자로서 송은이가 탄생시킨 <밥블레스유>는 여성들이 제대로, 잘 먹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에서 음식을 통한 위로와 나눔으로 영역을 확장한다.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을 좋아하는 최화정과 “브래지어 풀고 같이 먹어요”를 외치는 김숙까지, <밥블레스유>의 네 여자가 강조하는 것은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의 기쁨과 거기서 오는 치유와 위로의 힘이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더 유명한 맛집, 더 다양하고 새로운 레서피, 맛에 대한 평가보다 어쩌면 음식의 본질에 더 가깝다. 음식을 먹고, 거기서 얻은 에너지로 힘을 얻어 일상을 살아간다. 맛있는 음식이라면 더욱 좋고, 그걸 함께 먹기까지 한다면 더더욱 좋다. “이번에 (이영자가) 힘들 때도 불러다 함께 밥을 먹었다”는 최화정의 말은 이 프로그램과 있는 그대로 ‘잘 먹는 여자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꿰뚫고 있다. 삶에는 예상치 않은 어려움이 닥칠 수 있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잘 만든 음식과 좋은 친구가 있다면, 완전히 괜찮아지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더 견뎌볼 만한 힘이 생긴다. 배우 김수미가 반찬을 만드는 <수미네 반찬>은 남성 셰프나 방송인에게 한 수 가르쳐주고 그들을 먹이는 형식이라는 점에서 남성의 집밥 판타지와 맞닿은 기획이지만, 여기도 음식을 기꺼이 나눠 먹는 여성의 태도가 드러난다. 요리를 못하고 관련 지식도 부족하지만 음식을 즐기고 그런 자신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노사연의 캐릭터가 이전처럼 비판받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때의 즐거움이 더 중요한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이 원초적으로 먹는 모습만 강조하던 인터넷 방송형 먹방과 과시와 경쟁, 평가가 따라오던 남성적 시선의 먹방 시대를 지나 도착한 ‘잘 먹는 여자들’을 볼 때의 즐거움이다. 덕분에 우리는 실연당하면 양푼에 비빔밥을 비벼먹는 수준의 뻔한 상상력을 벗어나게 됐다. 줄을 서며 기다려서 먹든, 혼자 2인분을 먹든, 하루에 다섯 끼를 먹든, 맛있는 음식은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잘 먹은 힘으로 일상을 버텨내는 잘 먹는 여자들이 알려준 인생의 진리다. 오늘도 밥이 당신의 하루를 축복하기를.


윤이나 작가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

CREDIT

글쓴이 윤이나
에디터 김아름
사진 COURTESY OF MBC, OLIVE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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