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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6. SAT

SUPER WOMEN

여성 히어로가 필요해

우리는 압도적 능력으로 우주를 지켜내는 여성 슈퍼히어로를 더 보고 싶다


슈퍼히어로.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일반인들은 따라갈 수 없는 ‘슈퍼’ 능력을 가진 존재. 그리고 한국 관객들은 슈퍼히어로를 어마무시하게 사랑한다. 특히 <아이언맨>부터 시작해 <어벤져스>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들의 흥행 순위는 그야말로 ‘월드급’이다. 최근 또 한 편의 마블영화가 개봉했다. 예매율 1위에서 내려올 조짐이 보이지 않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는 분명 여성 히어로들이 등장한다. 단, 순대 속 허파나 염통처럼 끼어 있다. 물론 순대의 메인은 허파가 아니라 순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DC에 비해 훨씬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다. 하지만 마블에는 DC의 대표 여성 히어로인 원더우먼처럼 극을 혼자 끌고 나갈 여성 히어로가 많지 않다. 스칼렛 위치는 비전의 사이드킥(보조)처럼 기능한다. 블랙 위도는 어벤저스의 다른 존재들 없이는 등장하기 어렵고, 끊임없이 남성 히어로들과 ‘엮인다’. 가장 인기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사인 마블의 영화에서 여성 히어로의 역할이 이처럼 한정적인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90년대에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한국 여성들은 <달의 요정 세일러문>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며 성장했다. 이 슈퍼히어로 서사에서 적을 물리치는 존재는 온전히 여성들이며, 남성인 턱시도 가면은 건방지게 여성들을 뛰어넘어 보호하려는 대신 사이드킥의 역할에 충실하다. 세일러 전사들에겐 지구의 왕자인 그를 ‘지켜야 할’ 임무가 있다. 그는 세일러 전사보다 명백하게 더 약한 존재로, 이렇게 능력 없는 자신이 세일러 전사들을 도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슈퍼히어로인 여성들이 빌런인 여성들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 여성 영웅들이 세상과 우주를 구하는 이야기는 90년대 초등학생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러나 마블영화 속에서 이런 여성들을 찾아보기는 쉽지가 않다.



불평을 잔뜩 늘어놓았지만, 마블이 언제나 여성을 ‘사이드킥’으로만 활용한다고 말하면 불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는 2015년부터 비교적 ‘신입’ 히어로인 제시카 존스를 주인공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제시카 존스>를 제작했다. 제시카 존스의 캐릭터는 무척 흥미롭다. 깊은 상처를 가지고 영웅의 자리에서 은퇴해 도시 뒷골목에서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가는 외톨이 캐릭터는 흔히 클린트 이스트우드 정도의 남성 배우가 맡아온 역할이었다. 혹은 사이버펑크물의 남성 주인공이거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가장 주먹을 꽉 쥐게 한 장면은 와칸다의 벌판 위에서 벌어진 세 여성 캐릭터의 전투 신이었다. 블랙 위도와 스칼렛 위치는 서로를 보호하며 프록시마 미드나이트에게 맞선다. 스칼렛 위치는 전형적인 ‘정신계’ 히어로이고, 블랙 위도는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기술계’ 히어로이며, 프록시마 미드나이트는 타노스의 부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다. 서로 다른 여성들이 최대의 능력치를 발휘하면서 싸우는 장면은 등골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4DX 의자에 계속 등을 얻어맞은 탓일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은 블랙 위도와 스칼렛 위치가 아니다. 끝까지 빌런 타노스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히어로는 아이언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다. 여전히 어벤저스 세계관에서 여성은 사이드킥의 한계를 짊어지고 ‘아이 캔디’로 소비되는 경향 안에 있다. 그러나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쿠키 영상에는 캡틴 마블(브리 라슨이 연기할)의 로고가 뜬다. 드디어 마블도 체력과 속도로 승부하는 단독 여성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블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직전에 개봉했던 <블랙 팬서>는 남성 슈퍼히어로를 내세웠지만 뛰어난 여성들 사이에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와칸다는 왕을 둘러싼 스파이도, 과학자도, 장군도 모두 여성인 나라다. 6월 개봉 예정인 <앤트맨과 와스프>에서는 명실공히 ‘곤충 듀오’로 활약할 와스프(에반젤린 릴리)도 있다. 이제 캡틴 마블 이후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작년 JTBC에서는 <힘쎈여자 도봉순>이란 드라마를 방영했다. 주인공 도봉순은 길에서 흔히 만날 법한 평범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어퍼컷으로 사람을 공중으로 띄웠다가 모래사장에 처박고, 손으로 승용차를 막아 멈추는 파워는 제시카 존스와 비교해도 손색없다. 명랑하고 쾌활하게 사람을 여기저기로 던져대는 한국형 여성 슈퍼히어로를 보면서 이후에 상상될 슈퍼히어로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다. 우주를 지켜내는 압도적인 여성의 존재는 앞으로 어떻게 그려질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나타나리라는 점이다. 지금도 수많은 여성이 변함없이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까.

이서영 작가 <악어의 맛> <이웃집 슈퍼히어로> 등을 썼다

CREDIT

작가 이서영
에디터 김아름
사진 COURTESY OF MARVEL STUDIO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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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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