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컬쳐

2018.04.28. SAT

DARAW YOUR OWN LINE

안느의 춤

현대무용의 거점을 뉴욕에서 유럽으로 옮긴 그녀가 서울을 찾았다


현대무용계에서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Anne Teresa de Keersmaeker)를 칭하는 단어란 대개 이런 것이다. ‘혁명가’ ‘창시자’ ‘현대무용의 교과서….’ 벨기에를 대표하는 로사스무용단을 창단하고, 예술학교 ‘p.a.r.t.S’를 설립해 뉴욕이 주도하던 포스트모던 댄스의 주도권을 유럽으로 옮기는 데 기여한 그에게 적합한 칭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미니멀한 그의 무대를 상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거창한 수식어이므로. 로사스무용단을 대표하는 레퍼토리 <로사스 댄스 로사스>는 네 명의 여성 무용수가 같은 동작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만으로 이뤄져 있다. 몇 년 전 서울을 찾은 무용단의 춤을 보면서 이것은 노동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아주 오랫동안 다져온 육체를 도구 삼아, 균열이 선사하는 감흥을 위해 절제된 동작을 차곡차곡 반복하며 쌓아가는 것이 근면한 노동행위와 닮았다고 말이다.

4월의 첫 번째 월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1층 로비의 난간에 서서 춤추는 안느 테레사를 보았다. 그녀에게 명성을 안긴 데뷔작 <파제 Fase> 4부작 중 유일한 솔로인 ‘바이올린 페이즈’의 선율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되풀이되는 일련의 동작들은 바닥에 드넓게 뿌려진 흰 모래 위에 원을 남기고, 다시 그 원을 4등분, 8등분으로 나누며 흔적을 이어갔다. 폭발적인 점프도, 극적인 연기도 없이 동작들이 반복되는 동안 관객은 작은 움직임이라도 놓칠세라 숨죽이며 노년의 무용수를 지켜봤다. 15분에 걸친 무대가 끝나고 다소 피곤한 기색의 안느가 박수와 함께 퇴장한 뒤에는 그녀의 움직임을 기억하는 모래 위의 흔적만이 남았다. 수십 년간의 몸짓이 쌓아 올린 성실한 궤적이었다.






<파제>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됐나 벨기에의 무용학교를 졸업하고 나만의 안무 언어를 만들고 싶어 뉴욕으로 갔던 20대 초반, 챙겨간 음반 중에 미니멀리스트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앨범이 있었다. 정확히 확립된 구조 안에서 박자감이 매우 강한 몇 가지 패턴이 끝없이 반복되는 그의 음악에는 나를 무용으로 초대하는 요소가 있었다. 80년대 초반은 포스트모던 댄스가 새로운 걸 필요로 하던 시기였다. 어쩌면 음악이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미술관에서 공연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파제> 4부작을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영상으로 촬영한 적 있는데, 그런 경험이 긍정적으로 남았다. 무대 전면에서 공연을 바라본다는 기존 개념이 사라지고 사방에서 혹은 위에서 아래로 무용수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면 관객 역시 훨씬 자유로워진다. 지난해 모마(MoMA)에서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바닥의 모래를 통해 안무의 기하학적 구조를 드러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더해졌다. 이런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는 건 한국이 세 번째다.

초기 여성 무용수로만 구성된 무대가 기억에 남는다. 안무가이자 무용가로서 당신에게 여성의 몸이란 젊은 여성이었던 내 신체와 닮았기에 내밀하게 작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니멀한 음악에 맞춰 같은 것에서 다름을, 다른 것에서 동일함을 찾으며 변주하는 것이 초기 작업의 목적이었기에 성별이 같은 무용수를 택한 까닭도 있다. 안무 언어의 대위법이라고 할까, 다양한 재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서 이후로는 남성 무용수의 신체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안무가의 일상이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무용단에 출근해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한다. 무용수들과 소통해야 하는 굉장히 사회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 과정을 ‘움직임을 써 내려간다’고 표현한다.

CREDIT

에디터 이마루
사진 김태종, COURTESY OF MMCA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5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