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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FRI

DEAR FRIDA KAHLO

푸른 집의 기억

아티스트 로사 마리아 운다 수키는 프리다 칼로의 삶과 예술에 담긴 진실을 그녀가 살았던 푸른 집 '라 카사 아줄'에 투영해 그려냈다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 지적이며 초월적인 아티스트, 프리다 칼로를 돌아보기 위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에 부딪쳐 남은 인생 동안 수십 차례의 생사를 오가는 수술을 했음에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삶과 예술을 향한 열의,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 아티스트로서의 행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추구와 실천,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한 맹렬한 열정, 멕시코의 전통예술과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헌신. 로사 마리아 운다 수키(Rosa Maria Unda Souki)는 1929년부터 1954년까지 프리다가 생을 다할 때까지 살았던 멕시코 코요아칸의 라 카사 아줄(La Casa Azul)을 그림으로써 이 전설적인 아티스트를 기억 속에서 부활시켰다. 로사 마리아 운다 수키는 수 년간 계속된 세심한 조사를 바탕으로 공간에 겹겹이 축적된 프리다에 대한 기억과 기억 너머의 이야기를 110점(54점의 드로잉과 56점의 페인팅)의 연작으로 완성했다. 프리다와 디에고 부부가 넬슨 록펠러, 조지 거신 등을 초대해 만찬을 열었던 부엌과 식당, 프리다가 휠체어에 앉아 그림을 그린 2층 작업실, 모스크바에서 망명한 레온 트로츠키 부부의 거처로 마련해 준 안방, 공작새와 원숭이, 사슴, 독수리가 서식했던 넓은 정원,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기 이전 시대에 제작된 장인들의 소품이 자리한 집안 곳곳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부감 쇼트로 묘사됐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의 일부에 해당하는 35점의 회화 작품과 사전 조사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을 선보이는 로사 마리아 운다 수키의 첫 한국 개인전 <롱드르가와 아옌데가의 모퉁이에서>가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삶을 따라가면서 내 삶 역시 자연스럽게 투영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모두 습관처럼 타인의 삶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한다. 이 작품에는 내 두려움과 걱정이 투영돼 있고, 그런 감정들은 프리다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작가의 말처럼 2월 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에는 다른 시대를 산 두 여성 아티스트의 시간이 오롯이 중첩되고 되살아난다.





프리다 칼로의 삶과 죽음, 사랑과 예술을 라 카사 아줄의 공간을 매개로 묘사했다. 왜 집을 소재로 했나 이번 작품뿐 아니라 내 작업의 대부분이 집을 묘사했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타인의 사적인 공간을 그리는 작업을 시작했고, 프리다 전에 스페인의 국민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집을 그렸다. 건축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집이라는 공간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 우리에게 집은 성장을 위한 장소일 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맞이하고 돌보는 곳이고 사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이뤄지는 모든 행위가 집에서 벌어진다. 그런 면에서 집이라는 소재는 삶과 예술에 관한 다채로운 진실을 말하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프리다 칼로를 선택한 이유는 프리다는 여자로서, 여성 아티스트로서, 또 라틴아메리카인으로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아티스트다. 특별한 계기 없이 자연스럽게 프리다에 이끌려 이번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영상 작품 <경의의 기록>은 프리다 칼로에 관한 이미지 자료들을 일일이 오려붙이고 깨알같은 글씨로 내용을 옮겨 적고 공간 스케치를 남긴 두꺼운 리서치 북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거의 수행에 가까웠을 리서치 과정이 궁금하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그녀 삶의 진실을 그림에 투영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방대하고 정확한 사전 리서치 작업은 필수적이었다. 멕시코 프리다 칼로 뮤지엄,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스페인에 있는 프랑스문화원 등 신뢰할 만한 기관을 찾아다니며 직접 그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녀를 인터뷰한 사람들의 자료를 모았다. 프리다가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자료는 배제했다. 디에고 리베라의 딸이자 라 카사 아줄에서 디에고 프리다 부부와 1년 반 정도 함께 살았던 과달루페가 쓴 책 <Las Fiestas de Frida y Diego>, 프리다의 조카인 이솔다 칼로의 <Intimate Frida> 등 생생한 증언이 담긴 책들을 비롯해 프리다가 남긴 작품과 사진, 드로잉, 메모 등을 일일이 받아적고 붙이고 드로잉하면서 리서치를 이어나갔다. 그 자체로 무척 즐거운 작업이었다.
직접 라 카사 아줄에 가봤나 물론이다. 2012년 9월에 그곳을 방문했는데 내가 조사한 모든 디테일을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감격 그 자체였다. 프리다 칼로라는 아티스트이자 여성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을 뿐 아니라 내가 회화 작품으로 구현하려는 공간에 대한 인식과 감각에 큰 도움을 받았다. 라 카사 아줄은 디에고 리베라 사후, 유언에 따라 수년이 지나서야 프리다 칼로 뮤지엄이 돼 대중에 공개됐다. 미술관의 디렉터의 도움으로 프리다가 직접 그린 라 카사 아줄의 도면을 봤는데 그녀가 자신의 집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방문한 당시, 마침 미술관에서는 ‘프리다 칼로의 옷장’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녀가 평소 입었던 옷을 복원하는 전시 준비가 한창이었다. 용을 수놓은 붉은색 부츠가 달린 의족, 극도로 불편했을 의료용 코르셋, 다양한 멕시코 전통 유물 형태를 모티프로 한 액세서리, 프릴이 달린 긴 치마 등을 볼 수 있었다. 바로 프리다 칼로 작품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화상에서 그녀가 입고 있는 멕시코 전통 의상 말이다. 프리다는 항상 그런 차림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녀의 옷장에서 나온 현란한 자수 장식의 옷에는 색색의 물감 자국이 묻어 있어 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전통 문화 수호를 위해 큰 노력을 했다 두 사람은 멕시코의 진정한 가치, 고대 아즈텍 문명의 예술과 사상을 새롭게 해석하고 창조하던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 선 스페인 시대에 제작된 도자기, 인형, 의복, 식기 등을 모았고 멕시코 전역의 장인들을 후원하는 메세나 역할을 자처했다. 프리다가 입었던 옷 역시 각지의 장인에게 부탁해 지어 입은 것들이다. 그들의 이런 노력은 라 카사 아줄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아나우아카이 박물관에 전시해 놓은 수만 점의 유물로 남아 있다.






모든 작품에서 부감 쇼트로 공간을 묘사하고 액자처럼 가장자리에 틀을 그려넣었다. 의도가 궁금하다 공간 위로 떠오르는 건 내가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관객에게도 공간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액자 틀은 장식의 목적이 아니라 내레이션 같은 거다. 그 공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보충하고 설명하고픈 목적이 있다.
그 틀에는 간혹 텍스트가 적혀 있기도 한데, 전신 해골이 침대에 누워 있는 그림에 적힌 글은 ‘이젠 내 손만 남아 있네(Ahora solo me quedan las manos)’라는 뜻이었다. 그 그림에 담긴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그 작품은 상실과 극복에 대해 그린 것이다. 1930년대 중반의 프리다는 이사무 노구치를 비롯해 많은 남자와 염문을 뿌렸다. 그중에서도 헝가리 출신의 미국 사진작가인 니콜라스 머레이와 깊은 관계였다. 1938년, 그녀는 뉴욕에서 자신의 첫 개인전을 열었고 머레이와 재회했다. 1년 후 앙드레 브르통과 마르셀 뒤샹이 주최한 전시를 위해 파리를 방문할 때까지 두 사람은 뉴욕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이때 머레이가 촬영한 붉은색 숄을 두르고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나른하고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프리다의 초상 사진은 당시 두 사람이 얼마나 안정적이고 아름다운 관계였는지 말해준다. 얼마 후 멕시코로 돌아온 그녀에게는 두 가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디에고가 이혼을 요구했고(몇 년 후 재결합하지만), 머레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와도 헤어졌다. 그녀는 ‘가시 목걸이를 한 자화상’을 그려 그에게 보냈다. 그림에서 프리다는 죽어버린 듯 딱딱하게 굳은 벌새가 달린 가시 목걸이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도 차분하게 고통을 견디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강인하고 엄숙한 표정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극복해 내고야 마는 예술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 거의 동시에 이뤄진 두 남자와의 이별을 계기로 프리다는 푸른 집에서 평생 살기로 마음먹고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니 말이다.
이번 전시는 설치 방법이 특히 독특하다. 안락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두운 조도에 파란 창살에 그림들을 겹치게 걸어 놓았다 비전형적인 창작 과정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이기에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김윤경 큐레이터가 그에 걸맞게 대담하게 시노그래피를 한 것 같다. 통상적으로는 작품 한 점 한 점을 일렬로 같은 높이에 거는데 이번 전시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연출했고 일정한 간격을 두지 않았다. 관객들과 내 그림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온전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데 동의한다. 내가 원하는 바는 내 그림을 통해 관람객들이 심리적이고 감정적으로 푸른 집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화 속의 프리다 칼로를 다시 만나고 자신의 삶과 그녀의 삶을 겹쳐볼 수 있게 하고 싶다.
6년 동안 진행해 온 프로젝트가 끝났다. 내밀한 공간을 통해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직은 모르겠다. 일단 이번 프로젝트의 110점을 한자리에서 공개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한 사람의 인생을, 온전한 리듬을 끊김 없이 보여주고 싶다.



CREDIT

사진 KIM S. GON
글 안동선
에디터 김영재
사진 HERMES KOREA(ART WORKS)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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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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