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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MON

THE DEATH OF THE MILLENIALS

너희들은 끝났어

햇살이 기울어지듯 밀레니얼 세대도 생동과 소란의 탄력을 잃었다. 화려한 가장행렬의 피날레를 맞이한 그들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



혹시 당신은 밀레니얼인가? 그러니까 정확히 합의된 것은 아니지만, 1980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났으며 아보카도 토스트와 밀레니얼 핑크에 환장하는지. 아니면 무알코올 맥주와 무지개 케이크를 끼고 사나? 만약 그렇다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 당신 세대를 일컫는 밀레니얼의 종언이 도래했으니까. 이 말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짐작이 간다. 밀레니얼은 과민하기로 악명이 높지 않나.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의 작가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밀레니얼들은 냉정한 현실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며 혀를 내두른 만큼. 하지만 안심하시라. 우리는 당신 손을 잡고 위로해 주려는 참이니까. 우울한 표정의 사춘기 소녀를 보듬는 엄마의 마음으로 말이다. 엄밀히 따져 <엘르>에도 밀레니얼 세대가 수두룩하다. 그들도 인스타그램에 아보카도 토스트 사진을 공유하고, 무의미한 슬로건이 박힌 티셔츠를 사며, 전세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시 말해 급하강하는 밀레니얼이란 열차에 당신과 함께 탑승했단 얘기다. 매스컴은 온통 ‘밀레니얼이 잘못했네’라며 나무라기 바쁘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밀레니얼이 냅킨 산업을 죽이고 있다’는 헤드라인을 뽑았고, <뉴욕 포스트>는 ‘밀레니얼이 공식적으로 브런치 문화를 망쳐버렸다’고 아우성 쳤다. <메트로>는 ‘이제 밀레니얼이 마멀레이드를 죽이고 있다’며 이에 화답했다. 사회문제는 물론이고 온갖 우스꽝스런 이슈들을 밀레니얼 탓으로 돌리기로 모두가 합의한 듯싶다. 더 의아한 건 이들 헤드라인에서 ‘밀레니얼’을 1965년부터 1980년대 사이에 태어난 ‘X세대’로 바꿔도 말이 된다는 점이다. ‘건방진 애송이’란 말을 끼워 넣어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거다. 위 세대가 인생 후배들에게 성을 내고 불만을 토로하는 건 그다지 새로운 일이 아니다. 10년 전, 런던 쇼어디치에서 “나 좀 봐요! 내가 힙스터예요”라고 말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마찬가지로 자칭 밀레니얼이라고 하는 사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거의 없다시피 하다.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무리는 있어도 어느 누구도 이 이름을 자청한 적은 없다. 밀레니얼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연령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한 집단으로 묶으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른들은 수영장에 띄워 놓은 유니콘 튜브에 누워 셀카를 찍거나 ‘해리포터’ 밈(Meme)으로 정치 논평을 하는, 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아이들을 통칭해 부르는 상투적인 단어가 필요했던 거다. X세대와 비교해 두드러지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더 있다.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성장한 그들은 알코올, 마약, 미성년 섹스와 같은 전통적인 반항의 표식들을 떨쳐냈다. 일부는 셀피에 미친 신경증 환자나 세련된 소셜미디어 사업가가 됐다. @LaPetiteAnglaise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 엘라 캐틀리프는 “그 의견을 부인할 수가 없네요”라고 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중년의 부모님에게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50장만 찍어달라고 부탁하거든요. SNS 인플루언서들이 참석한 행사에서는 모두가 접시에 음식을 예쁘게 차려놓은 뒤 의자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어요.” 시트콤 같은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안타깝게도 밀레니얼 세대는 경제적으로 버거운 상황에 처했다. 임금은 줄고 주거 비용은 치솟고 있으며, 학생 시절부터 짊어진 부채에 짓눌려 분투하고 있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세계관을 근거로 이들에게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문신처럼 박혔다는 거다. 디지털 시대와 기후 변화, 경기 침체 등 소위 결정적인 사건의 하중을 감당하며 자란 탓에 밀레니얼 세대는 당당하고 예민하며 불안한 성정의 집합체로 치부된다. 그렇다면 대체 아보카도를 얹은 토스트에 월급을 다 쏟아붓는다는 억측은 무엇에 근거했을까. 미국에서 밀레니얼의 6% 정도만 아보카도 토스트를 먹어본 경험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모르나. 30대 중반이 돼도 집을 떠나지 않은 채 가족의 과잉보호를 받는 철부지라는 핀잔도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22세의 영국 뮤지션 듀아 리파는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 세대는 빌어먹을 미래라고요! 그리고 그 어느 세대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어요.” 런던에서 태어난 듀아 리파는 13세 때 코소보로 이사했지만, 2년 후 가수의 꿈을 좇아 영국으로 혼자 돌아온 경험이 있다. 밀레니얼의 정체성을 둘러싼 혼란과 의문이 이처럼 팽배하기 때문에 브랜드와 광고 회사들은 이 암호 같은 단어에 등을 돌리는 추세다. “밀레니얼이란 말은 너무 다양한 것을 포괄하고 있어요.” 럭셔리 브랜드를 상대로 트렌디 컨설팅을 하는 ‘LS:N Global’ 측의 설명이다. “광고 회사들은 전통적으로 여러 집단을 젠더와 국적, 나이로 묶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런 전략은 잘 통하지 않아요. 우리가 파악한 점진적인 변화의 방향은 전 세대가 동조하는, 일명 플랫 에이지(Flat Age) 사회를 향하고 있어요. 60대들도 창업, 경험, 소비 선택에 있어 20대와 비슷한 태도와 접근 방식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알고리즘을 세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하고 쓸모 있는 범주를 동원해야 한다. ‘LS:N Global’은 밀레니얼 대신 금욕적 사치주의자, 효율적인 영양 섭취를 위해 미래식을 찾는 패스트로노믹 푸디(Fastronomic Foodies), 무알코올 소셜라이징을 향유하는 파티-토털러(Party-totallers) 등 주술적 언어에 가까운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우유, 달걀, 버터 등 유제품까지 먹지 않고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은 연대하기가 더 쉬워요. 비거니즘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 운동하는 성인 남성, 트렌드에 연연하는 10대 사이에 다 인기가 있거든요.” 이쯤 되면 밀레니얼이란 말을 세상에 처음 내놓은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할 법도 하다. 팝 역사가이자 세대 이론가인 윌리엄 스트로스와 닐 하우가 1991년에 쓴 <세대: 미국 미래의 역사, 1586년에서 2069년까지>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미국 역사에서 80년마다 한 번씩 영웅적 세대가 출현한다고 주장하면서, 밀레니얼을 나치에 대적한 세대 다음의 영웅적 세대라고 덧붙였다. 당시 이 의견은 점성술이나 유사 과학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실크 잠옷을 입고 만사에 무심한 얼굴로 시리얼을 먹으며, 드라마 <길모어 걸스>나 볼 법한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낡은 견해와 달리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이 됐다. 브렉시트에 가장 열렬히 반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전선을 형성한 것도 그들이다. 그런 밀레니얼 세대가 피날레를 맞이했다. ‘젊은 세대’라는 태생적 의미와는 달리 그들은 더 이상 젊지 않다. 노력 없이 얻은 젊음이 영원할 리 없다. 심리학자들은 이제 1995년에서 2012년 사이에 출생한 ‘포스트 밀레니얼’로 관심을 돌린다. 1995년 이후 태어난 Z세대, 사춘기를 모바일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함께 보낸 i세대(iGen)가 다음 연구 대상이다. 전문가들은 아이폰이 세상에 출현한 2007년을 세대교체가 완벽히 이뤄진 시기로 본다. ‘젊은 세대’의 주체가 바뀌면서 밀레니얼은 영원히 쇠하지 않을 것 같은 탄력에 마침표를 찍었다. 더 이상 그들은 자본주의 시장의 1순위 타깃으로 대접받지 않는다. 매스컴의 생동과 소란을 독점하는 주인공도 아니다. 새삼스럽지 않다. 대중의 관심은 오렌지 에이드에 일었다 지는 거품과도 같으니까. 밀레니얼의 여왕,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Look what you made me do’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렇게 노래한다. “미안해요. 예전의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금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왜냐고요? 그녀는 죽었거든요.” 하지만 먼저 말했듯이 슬픔에 젖을 이유는 없다. 이것만 기억하자. 밀레니얼이란 이름값이 삶의 땔감인 적은 없었다. 그건 무모했고 순진했으며 조금은 헐거운 시절을 봉인한 사회적 징표일 뿐이다. 밀레니얼 시대의 쇠락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당신이 무분별과 미성숙, 시행착오로 점철된 한때에서 벗어났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길. 밀레니얼의 전성기를 이뤘던 개개인의 시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카오스가 코스모스로 진화하듯.

CREDIT

글 RICHARD GODWIN
에디터 김영재
아트디자인 이상윤
번역 김선형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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