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컬쳐

2017.08.13. SUN

My Word, My World

예술가의 모험담

예술에 대한 고뇌와 집념으로 고유의 결과물을 펼쳐놓은 우정수, 이원우, 빈우혁. 하나의 물음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정은 예술과 따로 이야기하기 불가능하다

 

여정의 기록, 빈우혁

버석하고 부스러질 것 같은 풍경에 날 선 색과 선이 울창하다. 독특한 색감과 표현이 인상적인 이 숲 그림은 빈우혁 작가의 작품이다. 2013년 베를린에 첫발을 디딘 후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베를린 숙소 근처의 삼림 ‘그루네발트(Grunewald)’의 풍경에 몰두하며 어떤 의미나 요소를 배제한 채 이 거대한 숲을 화폭에 그려왔다. 숲 연작으로 국내에서 두 차례 개인전을 선보인 바 있는 빈우혁이 갤러리 바톤에서 7월 29일까지 전시를 연다. 전시명이기도 한 ‘루프트발트(Luftwald)’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풍경이다. 독일 항공사인 루프트한자와 그루네발트의 합성어로, 번역하자면 ‘하늘 숲’ ‘공기 숲’ 정도가 될까. 빈우혁은 베를린이 아닌 서울에서 그루네발트 숲을 그리면서 친밀한 세계에 직접 가 닿지 못하는 그리움과 공허함을 화폭에  옮겨 담았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선 공항 활주로와 비행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그린 회화 작품도 선보인다. 끊임없이 숲을 찾아 나서고, 그 안에서 사색했던 작가가 그 숲에 닿기까지의 여정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체성이나 다름없는 숲이란 공간에는 어떤 개인적인 사연이 담겨 있나 숲은 유년 시절부터 친숙한 공간이었다. 아주 어릴 때 비 오면 물이 줄줄 새는 판잣집에 살았다. 어른들이 일터로 나가면 집에 혼자 있기 싫어 매일 숲에 가서 놀곤 했다. 요즘도 숲에 가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정신이 맑아진다.

베를린에 간 후 숲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는 그 전까지는 당시 유행하던 표현적인 작품을 주로 그렸다. 그러나 개인적인 일이 꼬이면서 정치적 견해를 촌철살인의 그림으로 그려 뭣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그림에 회의를 느낄 때쯤 베를린으로 떠났다. 당장이라도 한 다발의 목탄을 다 쓰면 그림을 그만둘 기세였고, 이런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찾은 곳이 그루네발트 숲이었다. 어떤 비판이나 의미를 담지 않은 풍경을 다루고 싶었고, 숲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작품에게서 황량함이 느껴지는데 쓸쓸한 느낌을 낼 의도는 없었다. 오히려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그림에서 배어 나오는 심상은 제어할 수 없는 것 같다. 목탄을 사용해서 그런 느낌이 더 들지도 모르고. 베를린에 도착한 게 2013년 1월이었다. 그 무렵 숲을 촬영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작업해 온 탓도 있을 거다.

이번 전시는 숲에서 벗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전시를 앞두고 서울에 왔는데 막상 그릴 대상이 없었다. 주위에서 몇몇 장소들을 추천해 줬지만 내 영혼은 베를린에 있다시피 해, 다른 풍경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베를린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으로 공항을 그렸다. 작업하는 동안 마음만이라도 베를린에 가 닿지 않을까 해서. 대리석을 그린 신작도 있다. 한국에서 그릴 소재가 마땅치 않아, 차라리 명확한 이미지가 없는 뭔가를 패턴처럼 그리면 어떨까 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를 두고 작업 소재가 크게 바뀌었다고 하는데 실은 모두 베를린과 연관돼 있다.

전시 제목 ‘루프트발트’에 대해 설명해 달라 독일어로 ‘루프트(Luft)’는 공기, 대기란 뜻을 지녔다. ‘발트(Wald)’는 그루네발트 숲을 의미한다. 수도 없이 찾아갔던 그루네발트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데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 이곳 풍경을 그리는 동안 자꾸 실체 없이 허공에 떠 있는 숲처럼 느껴지더라. 이런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자 단어들을 조합했다. 한국어로 의역하면 ‘하늘 숲’에 더 가깝지만 개인적으로 ‘공기 숲’으로 읽히길 원한다. 만약 독일에서 계속 작업했다면 루프트발트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을 거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은 서울에서 작업하는 동안은 그릴 대상이 점점 줄어들어 형태가 없는 그림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다만 그림이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변하는 것만은 경계하려 한다.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개인적 고민들이 추상적으로 표현될까 두렵다. 다행히 지금은 그릴 소재들이 남아 있다. 그루네발트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100점을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이제 겨우 65점 그렸다.

전시를 찾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공항에서 숲까지, 내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해 주길 바란다.

이주연

 

 

 

확장의 증거, 우정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고 사나움을 드러내지 않은 검은 바다, 그 앞에 한 화가가 조그맣게 서 있다. 거친 잉크 선이 만들어낸 바다는 불안과 공포가 압도하고 있는 ‘현실’이다. 미미한 존재의 화가는 그 막막함을 캔버스에 담으려 한다. 우정수의 드로잉 <그림 그리기> 시리즈의 한 장면이다. 쓱쓱 그려낸 드로잉 속에서 예술가로서 자기고백과 일상의 공포,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어떤 힘에 대한 도전 등이 다양하게 읽힌다. 우정수는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불안과 광기를 꾸준히 다뤄왔다. 첫 개인전 <불한당의 그림들>에서는 황우석 사태나 휴거 소동처럼 세기말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지난해에 열린 개인전 <책의 무덤>에서는 단단한 권력 앞에 갈 곳을 잃은 지난날의 시간을 들려줬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 신진미술인 전시지원 작가로 선정된 우정수가 갤러리 룩스에서 8월 6일까지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산책자의 노트>. 전시장 한 층에서는 난파선과 대왕오징어, 성모마리아와 신화 속 동물이 만들어낸 흑백의 카오스가 시선을 붙잡고, 다른 한 층에는 드로잉으로 흘러나온 생각의 조각들이 한 권의 책처럼 담겨 있다.

 


<산책자의 노트> 전시를 소개하면 앞으로의 내 작업 방향을 보여주는 신작 회화들과 기존 드로잉 작업들을 망라해서 보여준다. 2010년부터 지속해 온 드로잉은 사회에 대한 생각과 태도들을 내 방식대로 기록한 이야기들이다. 지난해까지의 이야기는 좀 무거웠는데 올해 초 사회가 변하면서 조금 더 가볍게 작업했다. 앞으로 담을 이야기들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려면 내가 해온 이야기들을 정리해야 했고, 170여 점의 드로잉들을 책으로도 엮었다.
작업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변했나 20대는 늘 집회에 참석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왜 이걸 고치지 않고 엉뚱한 데 화를 낼까’라고 늘 의아해했고, 분노했다. <책의 무덤>은 인간에 대한 회의를 기반으로 했다. 인류가 축적해 온 문화와 지식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이 무너져 내리고, 배가 난파되면서 인류의 유물과 책들이 표류하는 그림을 그렸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채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은 개인의 욕망 탓이라고 봤다. 그런데 요새 ‘긍정’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됐다. 긍정에도 다양한 깊이가 있다는 것을 탐구하고 있다.
‘자기 꼬리를 먹는 뱀’을 모티프로 한 대형 회화 ‘우로보로스’ 시리즈를 선보였다. 어떤 생각의 변화가 반영됐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우로보로스는 자기 몸을 먹어가면서 몸집을 키우는 뱀이다. 처음에는 자신을 파괴하는 존재에서 폭력성을 떠올렸다. 그런데 대선 결과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돌고 도는 순환 그리고 확장해 가는 세계로 이야기 방향을 잡았다.
드로잉들을 <산책자의 노트>라는 책으로 엮었다. ‘엉터리 화가’ ‘바보들의 왕관’ 등 8개 챕터로 구성했는데 작업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항상 강박적으로 책을 읽었는데 드로잉은 독서와 일상에서 얻은 정보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초반의 드로잉들은 종이를 펼치고 펜을 잡으면 즉각적으로 이미지가 나왔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후 3년간은 기존에 그렸던 이미지들을 분석했고, 레퍼런스를 찾고, 제목을 어떤 걸로 할지 고민했다. 이야기가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 일정 분량은 추가로 그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신화나 고전에서 영향받은 소재가 많아 보인다 이야기의 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종교다. 종교라는 것은 일종의 판타지인데 현실에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 신화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라는 게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 것에 회의가 든 적 있나 4년 전 개인적으로 힘든 일 때문에 미술을 그만두려 한 적 있다. 그때 유럽을 가게 됐는데, 산책하면서 프랑크푸르트 슈타델 미술관에 갔다. 중세의 고전회화들이 가득한 전시실에서 ‘나를 100% 이해해 주는 친구와 같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림을 보러 갈 때면 외로움이 덜어졌고, 작업을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 태도를 닮고 싶은 작가는 독일 작가 요르그 임멘도르프의 작업을 좋아한다. 그가 사회현상, 그 안의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요즘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에 관심이 많이 간다. 그의 성실함에 감동하고 있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진짜 싫을 때도 있다. 나도 그처럼 꾸준히 즐겁게,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다.
원영인

 

 

 

행운의 상징, 이원우
‘Hope Something Happens’. 지난해 이원우 작가가 LA 에이스 호텔에 ‘Happy New Year’라는 흔한 신년사 대신 내건 작품 문구다. 간결하기 그지없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안겨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원우가 8월 26일까지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내일 날씨 어때?>라는 일상적인 제목 아래 작품 10여 점을 선보인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행운의 상징인 별과 클로버, 하트, 무지개 등을 모양대로 오리다 만 듯한 작품들이다. 이를 사람들이 마주했을 때 마음속으로 기대하는 행운의 깊이와 모양, 너비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하나의 오브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예술이지만, 보는 이가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진정한 예술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원우는 가장 일상적인 행운의 징표를 통해 사람들이 잠시나마 삶의 무게를 덜어내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고 전했다.

 


원래 꿈은 코미디언이었다며 웃음이 우리 삶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런데 ‘끼’가 없어 포기했다. 지금은 조각 작품들이 나를 대신해 대중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다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그렇게 말하니 꼭 연출자 같다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는 발상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오래된 목욕탕을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 ‘행화탕’을 도심 속 파라다이스처럼 꾸민 전시도 그런 의도였나 숙박과 레저, 유흥, 도시, 자연환경 등 삶의 여러 요소들을 끌어안고 있는 리조트가 복합적인 종합예술처이자 일종의 연극 무대처럼 여겨졌다. 관람객이 직접 무대에 오르도록 세팅된 무대 말이다. 목욕탕이었던 행화탕을 보고선 찜질방이야말로 우리나라의 도심형 리조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울 수 있도록 바닥 작업을 하고 타월에 그림을 그리는 등 의도적으로 찜질방 분위기를 연출했다.
뚱뚱한 콜라 캔이나 서울역 앞에 ‘HEY’라는 단어를 설치한 것처럼 키치하고 익살스런 조각이나 레터링 작품으로 당신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번 전시는 조금 낯설 수 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 퍼포먼스, 조각, 회화 등 다양한 예술 형태를 빌려 표현하고, 새로운 걸 좇다 보니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종종 바뀐다. 처음 텍스트 작업을 시도한 이유는 오브제나 조각 형태를 제외한 채 본질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다. 제목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번에는 전시 제목이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방점을 찍는다. “내일 날씨 어때?”는 일상의 사소한 질문이지만 그 안에 분명 자신의 내일과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명이 모든 얘기를 해주기 때문에 따로 텍스트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왜 하필 ‘행운’의 상징인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처음에는 ‘행운이란 게 정말 존재해?’ ‘그렇다면 어떻게 생긴 걸까?’ 부정적인 태도였다. 몇 년 전 대안공간 ‘루프’에서 전시 제안을 받았을 때 치기 어린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했다. 일부러 가장 추운 날에 전시를 하기로 하고 갤러리 문을 뜯어낸 다음, 얼음장 같은 전시장 한가운데 행운을 가져온다는 풍경을 달았다. ‘행운이 정말 존재한다면 내가 어지럽힌 이 상황을 정리해 봐.’ 하는 심정으로. 이렇게 행운을 파괴하려고 다년간 연구했는데 오히려 행운의 징표에 위안을 받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때 행운이란 건 내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관념이자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 깨달음이 이번 전시의 시작점이 된 건가 근래 들어 가장 몰두하는 주제는 불안이다. ‘불안의 근원이 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라는 전제를 두고 나름대로 이에 대응하는 공식을 세웠다. 그 첫 번째 공식이 행운에 기대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행운의 징표가 마음에 어떤 반응을 일으킨다. 내가 그 징표를 보며 삶의 무게를 잠시나마 털어내는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작품들을 보면 종이접기를 떠올리게 되는데 철을 재료로 사용했는데 절단면에 종이의 질감을 살리려고 노력했다. 어린아이가 만드는 색종이 형태에는 범접할 수 없는 순수함이 있지 않나. 행운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거침없이 재료를 잘라내고 보니 그 기하학적 형태에 순수함 같은 게 담겨 나왔다. 그때부터 아이와 놀이하듯 작업하기 시작했다. 이 다음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는 아트선재센터의 전시에 참여한다. 내 나름대로의 분실물 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유명 여행지에 가보면 거리에서 초상화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뜻일텐데 흥미로웠다. 지금 사람들이 분실하고 찾으려는 무언가가 자신의 초상이 아닐까 하고. 그래서 10일 동안 전시장에 매일 출근해 관람객들이 찾고자 하는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줄 계획이다.
이주연

CREDIT

사진 장엽
글 이주연, 원영인
에디터 김영재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