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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TUE

Beautiful Irony

핑크 컬러가 없는 핑크 포이즌 전시

제목에 낚이지 말 것. 구민정, 심래정의 2인전 <핑크 포이즌>에는 핑크 컬러가 없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에는 핑크색 잉크가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전시 포스터가 명찰처럼 붙어 있다. 신진 작가를 발굴하고 조명하는 ‘프로젝트 언더그라운드’의 일환으로 구민정, 심래정의 <핑크 포이즌 Pink Poison>전이 6월 11일까지 열린다. 겉과 속이 다른 아이러니랄까. 전시는 철저히 포스터 이미지와 제목을 배반한다. 어떤 핑크색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 미궁처럼 지하로 이어진 공간에는 흑백 드로잉의 미로와 우박처럼 색색의 공들이 쏟아지는 듯한 풍경이 감각을 압도한다. 일상에서 채집한 이미지를 재해석해 드로잉과 오브제 작업을 하는 구민정과 핸드드로잉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심래정은 예상 가능한 이미지 대신 ‘핑크’와 ‘포이즌’의 조합에서 착안한 은유를 한 공간에 부화시켰다. 달달한 색감에 홀려 입에 넣으면 쓴맛이 온 신경을 강타하는 소화제와 같은 유혹의 속임수. 전시의 첫인상이기도 한, 겉과 속이 다른 아이러니는 바로 이것과 맞아떨어진다. 핑크 포이즌은 제약적인 환경에서 예술을 하는 두 젊은 작가에게 약이자 독일 수도 있는 창작 욕구를 뜻한다. 묵은 체증을 풀어내듯 구민정, 심래정은 주어진 공간에 예술가로서의 본능을 쏟아냈다. 더없이 순수하고 결연한 구토. 전시 제목에 붙여주고 싶은 부제다.

 

 

 

구민정의 ‘□□□□’ 전시 풍경.

 

구민정의 생동하는 이미지

 

작업의 정체성을 텍스트로 표현하면 감각하는 이미지와 변화하는 오브제. 미술은 단어를 대변하는 대치물이 아니라 단어로는 형용 불가능한 그 자체다.

색색의 오브제 작품은 심미정 작가의 흑백 드로잉과 시각적 대조를 이룬다. 어떤 의도였나 내 작업은 이미지와 공간이 어우러지는데 심래정 작가의 흑백 작품과의 대비를 고려해 색감이 도드라진 작업을 배치했다. 시각적인 충돌이라기보다 이 또한 하나의 질서 혹은 조화라고 여긴다.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이 공간의 물리적 특성이 어떤 발상으로 이어졌나 지나치게 작은 입구와 높은 문턱, 미로 같은 내부 등 갤러리 건물의 복잡한 구성이 생물처럼 느껴졌다. 외벽을 뒤덮은 덩굴에서 영감을 얻어 살아 있는 듯한 건물의 일부를 보여주려고 했다.

높다란 벽에 걸린 캔버스에서 오브제들이 쏟아지는 듯한 설치 작품과 <핑크 포이즌>이란 전시 제목은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나 ‘핑크 포이즌’은 매혹적인 색과 독약이 결합된 아이러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귀여운 구토’가 갖는 아이러니를 시각화했다. 심래정 작가가 배설하는 이미지 작업을 하듯 노란 공들을 토해내는 듯한 작품으로 구토의 심상이 밝은 이미지로 발상되는 것을 표현했다.

‘ㅁㅁㅁㅁ’라는 작품 제목이 독특하다. 전작 중에 ‘OoOo’ ‘hoooooo-’라는 제목도 있던데 이미지의 대상을 의인화하는 버릇이 있어 글자가 가진 형태나 형상, 배열을 이용해 제목을 짓는다. 이번 작품명은 여러 공간에서 비롯된 작업이라 네모로 표현했다. 나는 ‘므므므므’라고 읽는데 지인들은 ‘네모네모’ ‘미음미음’이라 읽더라. 사람들이 제목을 통해 엉뚱한 상상을 하는 상황이 재미있다. 영문 제목은 움직이는 모양을 연상하도록 ‘mmmm’라 지었다.

어떤 이미지를 작업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나 일상의 기성 이미지를 통해 발견된 나의 감각들이 작품에서 시각화되는데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이미지를 사용한다. 일례로 다이소, 이케아의 기성품에 열광해 작업 재료와 형태로 쓰기도 한다. 그러면서 출처를 알지 못하게 변형하거나 연관 없는 이미지끼리 조합시킨다. 사물의 시각적인 모양에 관심이 있을 뿐 본래의 의미나 특성, 역사를 인용하진 않는다.

미술 작업 외에 의미를 두고 하는 일은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소통하는 것이 내 작업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

예술가로서 요즘 고민 작업을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

그럼에도 이를 지속하도록 하는 것은 미술을 하는 건 확신이 있다기보다 의심이 들지 않아서다. ‘왜 해야 하지?’ 이런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다. 소수지만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전시라는 기회가 주어지니까 감사하고, 그래서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미로처럼 설치한 심래정의 ‘식인 왕국 : 생산 공장’.

 

심래정의 사적인 이야기

 

작업의 정체성을 텍스트로 표현하면 텍스트가 끝나는 곳에 이미지가 시작된다.

자신의 드로잉 스타일에 담긴 남다른 면모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발적으로 쏟아내는 배설과 같은 느낌으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단선으로 그리는 건 머리에 있는 이야기를 이미지로 빠르게 옮기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으면 그려야 하는 것을 잊기도 한다.

핸드드로잉을 스캔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이번에 선보인 ‘식인 왕국: 생산공장’은 어떤 이야기인지 2016년에 제작한 ‘식인 왕국: 수상한 신호’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이 식인 행위의 암시였다면 이 작품은 식인 행위가 산업화되고 유통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인육 통조림 생산부터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장면을 만화처럼 담았다.

이 이야기의 시작점은 내가 만드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는 삶과 죽음이다. 죽음에 관한 조사를 하면서 식인 행위가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가 좌절됐을 때 상대를 향해 표출되는 파괴 본능을 식인 본능에 빗댔다.

구민정 작가의 작품과 공통으로 함의하는 키워드가 있다면 구민정 작가와 똑같이 이 건물이 생명체 같다고 여겨 전시장을 인체 장기로 상정해 체증과 소화불량 상태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래서 철제 구조물 사이에 흑백 드로잉을 빽빽하게 설치했다.

어떤 이미지를 그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나 사회 면에 난 ‘오늘의 사건사고’를 들여다본다. 과거의 경험에서 소재를 찾기도 하고.

당신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개인사를 알려준다면 가족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했고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다. 이 사건이 인간의 몸에서 시작해 인체가 죽음에 도달하는 사건사고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었다.

예술 작업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인가 그런 측면도 있지만 결코 치유되지 않는다.

죽음과 고통은 사람들이 인지하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주제이기도 하다. 어떤 반응을 기대하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개인사를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면서 ‘난 요즘 이러는데 넌 어때? 너도 이런 적 있어?’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는 요즘 사후세계에 주목하고 있다. 영혼이 살인사건을 해결해 준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구민정 작가처럼 아이들 그림을 좋아한다고 아이들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으로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 점을 항상 존경해 왔다.

예술가로서 요즘 고민은 펜을 잡기까지 너무 힘들다.

그럼에도 이를 지속하는 건 내게 작업이란 무더운 여름날 힘겨운 노동 후 마시는 얼음물과 같다. 펜이 손에 쉽사리 잡히지 않지만 시작하기만 하면 너무 흥겹다. 이 한 잔의 시원한 물이 내게 ‘너는 쓸모 있는 인간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CREDIT

PHOTOGRAPHER 이재철
EDITOR 김영재
DIGITAL DESIGNER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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