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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1. TUE

WOMEN IN ART

예술계를 움직이는 파워 여성 7인

예술을 창작하고 때때로 사고팔고 수집하는 7명의 여성들. 자유분방한 아트 신 한 복판에서 날 선 메시지를 던지는 담대한 여성들과의 대화

포잔티의 메시 드레스는 Sacai. 슬립 드레스는 DKNY. 우프너가 입은 스트레치-캐디 드레스는 Stella McCartney. 골드 이어링은 Kathleen Whitaker. 링은 Jennifer Fisher. 두 사람이 들고 있는 작품은 CV2 선셰이드를 이용해 만든 포잔티의 조각 작품 ‘2 Glances 21 Electrodes’.


예민한 발굴가 그리고 유망주
레이첼 우프너(Rachel Uffner) & 하얄 포잔티(Hayal Pozanti)

“아직도 예술계에 성차별이 존재하나요?” 2년 전, 아티스트 마릴린 민스터(Marilyn Minster)에게 질문을 던지자 “하하하” 웃음으로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를 하네요. 상대적으로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가가 헐값에 팔리고 있다는 게 그 증거죠.” 지난해 경매에서 가장 높게 책정된 100명의 아티스트 리스트 중 여성은 유일하게 루이스 부르주아만이 이름을 올렸다. 예술계의 블루칩으로 평가받는 가고시언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여성 아티스트의 비율은 불과 15.5%! 하지만 레이첼 우프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에 운영하는 갤러리는 예외다. “예술계에서 레이첼 우프너는 두 가지로 유명하죠. 경기침체 이후 예술 르네상스를 이끈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첫 갤러리이자 재능 있는 여성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으로요. 여기에서만큼은 차별이 먹히지 않죠.” 우프너를 대신해 멀티미디어 아티스트인 사라 그린버거 래퍼티(Sara Greenberger Rafferty)가 증언한다. 필라델피아 토박이인 우프너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지금은 없어진 첼시의 갤러리 다멜리오 테라스(D’Amelio Terras)에서 처음 디렉터 자리를 맡았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5일 만에 서른의 나이로 독자적인 갤러리를 오픈했고, 이후 그녀의 갤러리 수익은 꾸준히 증가해 지난 2014년 맨 꼭대기 층까지 햇살이 골고루 들어오는 현재의 건물로 이사했다. “사람들이 종종 농담처럼 남성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했더라면 수익이 더 높았을 거란 말을 해요. 사실 전 가장 흥미로운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만 섭외했을 뿐이에요.” 우프너가 말한다. “나름의 원칙에 초점을 맞춰 갤러리 운영에 집중한다면 그 외의 부분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어요.” 그녀는 여성 아티스트들만 선별해 소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강조한다. “최고의 예술은 예술 그 자체에 힘이 있어요. 여성 아티스트 경우엔 그 예술의 힘이 더욱 강하게 내재해 있고요.” 그녀의 변함없는 철학과 심미안은 지난 9월 갤러리에서 첫 솔로 전시를 가진 하얄 포잔티에게로 이어졌다. 포잔티는 31개의 독창적인 문자 언어를 사용한 작품을 선보였다. “‘어떻게 고대 문명인들은 비슷비슷해 보이는 형태의 글자를 쓰면서 소통했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업이에요. 국경이나 국적 같은 독자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 거죠.”



검이 입고 있는 옷은 Kenzo. 그녀와는 케이프타운 외곽 지역인 쾨일스 강(Kuils River) 근처에서 만났다.


긍정의 아이콘

토니 검(Tony Gum)

우연히 코카콜라 상자가 토니 검의 눈에 띈 건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의 일이다. “그 박스를 보는 순간 어떤 이미지가 ‘팡!’ 하고 솟아올랐어요.”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검은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코카콜라 박스를 올린 채 입으로 코카콜라 병을 물었다. 전통적으로 아프리카 여성들이 짐을 옮기는 방식을 빗댄 모습이었다. 그 결과는? 패션계에서 혹할 정도로 매혹적이면서 신선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미디어를 통해 꾸준히 노출돼 온 특정 묘사에 대한 반발심을 담는 데 성공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젊은 흑인 여성으로서 소비되는 이미지가 어떻든 간에 그게 우리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검이 단호하게 얘기한다. “작품의 메시지는 간결해요. ‘그거 알아? 네가 흑인이고, 여성이고, 심지어 아프리카 출신이라면 가치 있어. 축복받아 마땅한 존재지.’ 요약하면 이런 거죠.” 그녀가 온라인에 사진을 포스팅하고 난 뒤,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그녀가 ‘Black Coca-Cola’라고 이름 붙인 자화상 시리즈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가득했다. 검이 영상 공부를 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 반도 기술대학교의 한 교수가 갤러리스트 크리스토퍼 몰러(Christopher Moller)에게 검을 소개했고, 이것은 이내 검의 개인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난 3월, 검은 ‘펄스 뉴욕 아트 페어(Pulse New York Art Fair)’에서 독자적인 부스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검의 작업은 비주얼적으로 충분히 충격적인데, 그러면서 다층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점이 매력 있어요.” 펄스의 디렉터인 헬렌 투머(Helen Toomer)의 말이다. 최근의 아이콘적인 리믹싱 작업에는 그녀의 오랜 탐구가 반영돼 있다. ‘uTwiggy’는 검이 직접 모즈풍의 인조 속눈썹과 토속 아프리카 스타일의 비즈 네크리스를 착용한 채 카메라 앞에 섰고, ‘Free Da Gum’은 보다 직접적으로 ‘프리다 칼로’로 분해 연기했다. 검은 이 작업이 날카로운 비평이 아니라, 반드시 행해져야 하는 정정 행위라고 이야기한다. 도전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예술계에서만 받아들여지는 일을 표현하거나, 엄청난 돈을 벌려는 게 아니에요. 특정 브랜드와 연결된 일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저 제가 나고 자란 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 안에 깃든 풍부함을 다채롭게 표현하고 싶었죠.” 


    

낸 골딘의 네크리스는 Rodarte. 사진 촬영은 베를린과 파리, 뉴욕을 오가면서 생활하는 젯셋족인 낸 골딘의 베를린 아파트에서 이뤄졌다.


용감무쌍한 탐험가

낸 골딘(Nan Goldin)

사진가 낸 골딘이 그녀를 상징하는 시리즈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를 처음 선보인 건 뉴욕의 전설적인 머드 클럽에서다. 1970년의 어느 날 밤, 골딘과 그녀의 친구들이 춤추고, 섹스하고, 약에 취해 있는 날것 그대로의 사진은 열정적이면서도 어딘지 암울하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사진가로서 위대한 첫 삽을 뜬 그날 밤엔 공교롭게도 록 뮤지션 프랭크 자파(Frank Zappa)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누구도 제 사진에 관심이 없었어요. 한 마디로 생일 파티에 제 사진이 묻혀버린 거죠.” 한 손으로 턱을 괸 포즈로 앉아 골딘이 그날 일을 회상한다.


몇 년 뒤, 그녀는 다시 이 시리즈를 편집해 휘트니 비엔날레와 필름 페스티벌, 몇 개의 전시 공간에 다시 선보였다. 그리고 이듬해 출판사 어퍼처(Aperture)가 130장의 사진을 묶어 사진집을 냈고, <뉴욕 타임스>에서는 로버트 프랭크의 <The Americans>에 버금가는 예술적 명작이란 평가로 그녀의 사진을 높이 샀다. “낸은 소위 ‘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죠. 전시회를 찾은 방문객들은 낸의 작품이 얼마나 현대적인지, 또 지금껏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사실 그녀의 인기는 한 번도 사그라진 적 없었지만요.” 모마(MoMA)의 사진 큐레이터 루시 갈룬(Lucy Gallun)의 말이다(낸은 현재 모마에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란 주제로 690장의 사진을 전시 중이다). 종종 골딘의 사진은 패션에 토대를 둔 90년대의 ‘헤로인 시크’나 소셜 미디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이언 맥긴리 같은 아트 포토그래퍼 스타일의 미학적인 스냅숏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모마의 수석 큐레이터 클라우스 비젠바흐(Klaus Biesenbach)는 고개를 저으며, 이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보다 골딘은 인간의 상태에 대해 적나라하게 포착한다고 표현할게요. 소셜 미디어에선 찾아보기 힘든, 너무도 숨김없이 드러내 뼈아픈 인간 군상에 대한 얘기를 프레임에 담거든요.”


1953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골딘은 그녀가 11세가 되던 해 자살한 언니로 인해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떠났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한 대가 그녀에겐 유일한 소통 수단이었다. 19세쯤 골딘은 보스턴의 여장 게이들의 모습을 쉴 새 없이 카메라로 옮겼다.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1978년 뉴욕으로 옮겨온 뒤에도 골딘은 바텐더로 생활비를 벌면서 언더 문화의 상징적인 존재를 다큐멘터리로 담는 데 열정을 바쳤다(클럽 바텐더를 그만둔 건 취객이 그녀의 카메라에 소변을 봤기 때문). 그녀에게 피사체는 모두 친구였고 나아가 그녀 자신이었다. 최근 들어 골딘의 사진은 좀 더 ‘빛’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다른 예술 작품의 기법에도 관심이 커져서 6년 전부터는 루브르박물관에서 페인팅과 조각 작품을 촬영하는 데 시간을 쏟았다. 지난 10월엔 모처럼 사진집 <Diving for Pearls>를 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의 자화상을 담은 사진집은 컬러와 구성에 있어 유사한 작품을 나란히 묶어 보는 이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언제나처럼 불완전한 상태로 노출된 피사체를 편견 없이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골딘의 시각은 변함이 없다. “제 작업은 모순에 관해 얘기하죠. 사람들은 완전한 사랑을 꿈꾸지만 그건 헛소리죠. 상대에 관한 양면적인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고선 절대로 관계를 맺을 수 없어요. 연인은 물론 친구 사이조차도요.”



카스틸이 입은 실크 점프수트는 Fendi. 골든이 입은 실크 블렌드 드레스는 Duro Olowu. 링은 Jennifer Fisher. 펌프스는 Pierre Hardy. 두 사람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카스틸의 레지던시에 놓인 작품들은 ‘Harlem Vendor’ ‘Client’ ‘Nike’.


편견에 맞서는 초상 화가 그리고 아티스트 메이커
조던 카스틸(Jordan Casteel) & 텔마 골든(Thelma Golden)

할렘에 자리 잡은 스튜디오 뮤지엄(The Studio Museum)과 전속 계약을 맺은 조던 카스틸은 뮤지엄의 레지던시에서 1년이 넘는 시간 내내 인근에서 자주 마주치는 흑인들의 인물화를 그려오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연을 파는 남자, ‘해키색(Hacky sack; 제기처럼 차는 콩주머니)’으로 괴상한 묘기를 펼쳐 보이는 학생…. 이 프로젝트는 카스틸이 예일대에서 순수미술 석사 과정을 밟을 때 시작됐다. 그녀의 남자 가족 구성원들을 바라보는 거리의 시각이 종종 위협적이라는 걸 깨달으면서부터다. 이것이 카스틸에게 피부색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을 갖춘 한 사람으로서 흑인을 캔버스에 기록하는 계기가 됐고, 아프리카 아티스트의 작품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주변 공동체와 친근한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하는 스튜디오 뮤지엄과 일할 기회까지 얻게 해 줬다.


스튜디오 뮤지엄의 전설적인 디렉터 텔마 골든으로부터 러브 콜을 받았을 때, 카스틸은 “저 지금 제정신인 거죠?”라며 재차 확인했다고. “케힌데 와일리(Kehinde Wiley)에서 미칼린 토머스(Mickalene Thomas)까지 제가 좋아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그들이 모두 텔마 골든을 만났다는 사실이죠!” 뉴욕 토박이인 골든은 흑인 아티스트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만일 스튜디오 뮤지엄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제가 직접 차렸을 거예요”라고 말할 만큼 아티스트에 대한 골든의 애정은 깊다. 1988년 휘트니 뮤지엄에서 큐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2005년부터 스튜디오 뮤지엄의 디렉터가 돼 흑인들을 위한 문화적 기폭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최근엔 약 1억 달러의 기금을 들여 건축가 데이빗 아자예(David Adjaye)에게 설계를 맡겨 지금의 뮤지엄 건물을 증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골든의 사무실은 여전히 아티스트들의 레지던시와 나란히 자리해 할렘의 온갖 소음이 얇은 벽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된다.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추측해 봐요. 이게 좋은 소리일까? 나쁜 소리일까?” 골든이 시원시원한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한다. “본능적으로 소리를 구별하는 능력이 생겼거든요!”


캐시미어 카디건은 Lisa Perry. 펌프스는 Christian Louboutin. 팬츠는 본인 소장품. 그녀의 어퍼 이스트 사이드 집에 걸린 사진은 데이빗 베일리가 촬영한 존 레넌과 폴 맥카트니.


예술 감정가

리사 페리(Lisa Perry)

지난여름, 디자이너 리사 페리의 햄프턴 저택 근처를 지난 사람이라면 6m가 넘는 ‘엄지’가 기중기에 매달려 있는 진귀한 풍경을 목격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 실어온 조각가 세자르 발다치니(Ce′sar Baldaccini)가 만든 이 작품 (서울 잠실올림픽공원에도 설치돼 있다)은 많은 사람을 웃게 한다. “팝아트는 유머러스해요. 그게 제가 팝아트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페리와 금융계 종사자이자, 바니스 뉴욕의 공동대표인 그녀의 남편 리처드가 개조한 집은 한때 수도원이었다. 알렉산더 칼더, 도널드 저드 같은 미니멀 아티스트들의 조각 작품이 그 어떤 화이트 큐브보다 잘 어울리는 곳이다. 반면 그들의 뉴욕 펜트하우스는 완벽하게 상반된 분위기. 팝아트에 바치는 송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거실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대형 작품이 장식돼 있고, 새카맣게 칠한 벽이 눈길을 끄는 다이닝 룸으로 향하는 복도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찍은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이 걸려 있다. 그뿐 아니다. 테라스엔 제프 쿤스의 거대한 다이아몬드 조형물(이 또한 크레인으로 옮겼다!)이 거리를 향해 묘한 이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 집에 들어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현관에 자리 잡은 세자르의 네온 레드 가슴 토르소. 합법적인 낙태를 주장하는 단체 나랄(NARAL)과 미국 가족계획 연맹(Planned Parenthood)의 옹호자인 집주인과 잘 어울리는 컬렉션이다.


예술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컬렉터가 된 페리는 2007년 ‘아트 러버’라는 타이틀 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레이블을 론칭하면서 디자이너란 직함까지 추가했다. 통통 튀는 컬러 감각과 팝아트에서 영감을 얻은 레트로 스타일이 더해진 그녀의 브랜드는 곧 배우 레나 던햄과 힐러리 클린턴을 매료시켰다(페리는 지난 9월 가고시언 갤러리에서 힐러리를 위한 기금을 모으는 아트 경매의 공동의장을 맡기도 했다). “리사는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고 넓어요!” 맨해튼의 갤러리 살론 94(Salon 94) 창립자인 지니 그린 버그 로헤튼(Jeanne Greenberg Rohatyn)이 말한다. “모든 건 그녀의 삶과 관계가 있어요. 페리를 보면 꼭 인스퍼레이션 보드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팝아트로 가득한, 뭐든지 다 이뤄질 것 같은 상상의 세상 말이죠.”

CREDIT

WRITER MOLLY LANGMUIR
PHOTOGRAPHER MARTIEN MULDER
EDITOR 김나래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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