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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4. SUN

DING DONG

한밤의 식재료 손님

옛말에 귀한 나그네 새벽에 온다고 했던가. 실제로 귀한 식재료가 새벽에 찾아와 벨을 누르기 시작했다


저녁 뉴스에서 새벽 배송의 이면을 보도했다. 물류센터가 주택가에 있어 새벽마다 주민들이 소음에 시달리고, 배송 기사들이 고충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뉴스에 등장한 낯익은 보라색 포장재를 본 순간, 나는 조건반사를 일으키듯 외쳤다. “아, 마켓컬리에서 장 봐야 하는데.” 뉴스가 저녁 8시에 시작했으니 주문 마감 시간이 두어 시간 남았을 때였다. 앱을 켜고 식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는 사이 인기 제품이 줄줄이 품절됐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였다. 아마 나 같은 사람들이 꽤 있었던 듯싶다. 전지현의 영향도 컸다. 마켓컬리는 그즈음 전지현을 모델로 내세운 TV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전지현 효과’를 간과한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할인 기회를 엿보며 주문 마감 직전에 들어갔다가 연이은 품절 소식에 울상을 지었을 거다. 전지현의 말간 얼굴을 통해 마켓컬리를 처음 접한 이들도 있겠지만, 새벽 배송은 이미 많은 이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복도에, 재활용 수거함에 쌓여 있는 포장재만 봐도 알 수 있다. 편리성이 가장 큰 이점이다. 클릭 몇 번으로 공기 나쁘고 번잡한 마트에 가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물론 이는 새벽 배송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모든 온라인 장보기가 갖는 장점이다. 그중 새벽 배송은 배송 시간이 한밤이니 물건이 언제 오는지 신경 꺼도 된다. 물건이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는다고 씩씩댈 필요도, 문 앞에서 녹거나 상할까 봐 발을 굴릴 필요도 없다. 특히 잠들기 직전에 주문한 물건이 눈뜨면 당도하니 좀비도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민족에게 더없이 적절한 서비스이겠다. 상온, 냉장, 냉동 식품으로 나눠 포장하는 디테일도 칭찬할 만하다. 냉동, 냉장 식품 구별 없이 얇은 비닐에 싸서 바닥에 놓고 가는 대형 마트의 포장은 예나 지금이나 큰 불만거리다. 그럼에도 내일보다 오늘 저녁에 뭘 먹고 싶을지가 더 예측 가능한 문제인 만큼 나는 오랫동안 이마트의 ‘쓱배송’을 선호해 왔다. 오전에 주문하면 그날 저녁 즈음 물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배송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품질 때문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대형 마트의 배송 서비스 이용 시 과일이나 채소의 질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해산물이나 육류의 질도 크게 기대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친환경, 유기농, 무항생제 등의 조건에 해당하는 식재료는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대형 마트여서 없는 물건이 없고, 가격경쟁력이 높아 자주 이용했다. 자주 이용하니 무료 배송 쿠폰을 넉넉히 챙겨줘 우유 한 병도 쓱 주문 배송했다. 그 편리성에 충성도를 쌓아갈 무렵 사고가 생겼다. 주문한 3개들이 레몬이 모두 푸른 곰팡이로 뒤덮인 채 배송된 것. 레몬이나 라임처럼 수요가 적은 수입 과일이 유독 상태가 나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를 지나치는 실수였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레몬이 아닌 푸른 곰팡이 덩어리가 들었다는 사실을 적어도 배송 직전 짐을 실으면서 알아야 하지 않았을까. 그날 용기 틈새로 새어 나온 곰팡이 가루로 손이 더럽혀진 순간 대형 마트와 안녕을 고했다. 적어도 신선도가 생명인 식재료에 있어서는 말이다.


새벽 배송에 ‘샛별 배송’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인 마켓컬리는 백화점 식품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아무리 자주 들여다보고 이용해도 앱을 열 때의 설렘이 결코 줄어들거나 닳지 않는다. 새벽 배송 서비스 중 가장 다종다양한 품목을 보유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무농약, 유기농, 무항생제, GMO 프리 등의 조건을 갖춘 제품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또 진귀한 수입 식료품들이 진열장 가득 채워져 있다. 평소 궁금했던 식재료를 등 떠밀려 사는 대신 얼마든지 시간을 할애해 제품 설명, 성분표, 활용법 등을 들여다보고 비교하여 고를 수 있다. 손질하는 방법부터 조리하는 예까지 상세히 나와 있으니 평소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은 식재료를 사서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기도 한다. 어떤 때는 플레이팅 팁까지 얻는다. 며칠 전에는 마켓컬리에서 리코타 치즈, 그라나파다노 치즈, 이탈리아 밀가루, 블랙타이거 새우, 이탈리아 파슬리 등을 주문하여 치즈 뇨키를 뚝딱 해먹었다. 질 좋은 치즈, 해산물은 물론 이탈리아 파슬리와 같은 생 허브류를 소량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새벽 배송이 빛나는 이유 중 하나다. 한편 판매 중인 올리브오일, 트러플 오일 등을 비교 분석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고르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 또한 칭찬할 만하다. 마켓컬리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엑스트라 버진’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오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거다. 단일 품종의 올리브, 그중에서도 햇올리브를 손으로 따 냉추출을 통해 압착한, 산도가 0%에 가까운 오일일수록 좋다는 사실도 함께. 물론 아쉬운 면도 있다. 수요를 예측하는 일이 어려운지 품절 제품이 많다. 대형 마트와 달리 실수로 빠뜨린 물건을 뒤늦게 추가하는 ‘묶음 배송’이 불가능하며, 그 물건을 추가하여 재주문하기 위해 기존 주문을 취소하려 해도 저녁 6시 이후에는 불가능하다. 꼭 해당 물건이 필요할 경우에는 배송비 3천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신선 식품의 품질만 놓고 보면 헬로네이처가 더 믿을 만하다. 생산지에 있는 농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 주문과 동시에 당일 수확해 발송하는 헬로네이처는 올겨울 내내 우리 집 식탁에 싱싱하고 푸짐한 해산물을 허락했다. 특히 굴, 꼬막, 바지락 등의 어패류가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월등히 상태가 좋았다. 굴이나 바지락에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강릉초당두부의 유기농 국산콩 두부를 넣고 국을 끓인 날에는 충만한 행복감에 종일 흐뭇하다. 주문 마감 시간도 12시로 가장 늦다. 채소만큼은 만나박스의 신선도를 따를 곳이 없다. 자체 농장을 운영하는 만나박스는 유통업에 앞서 농업에 속하는 회사다. 특히 수경 농장에 물고기를 풀어 채소들이 합성비료 대신 물고기 배설물을 양분 삼아 자라도록 했다. ‘아쿠아포닉스’라고 부르는 이 농법으로 만나박스는 아시아 최초로 미국 농무부로부터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먹기 좋게 썬 샐러드 팩이 아닌 이상 만나박스는 채소를 뿌리째 배송한다. 그렇게 해야 배송 과정에서 신선도를 유지할뿐더러 당장 먹지 않을 경우 물에 적신 키친 타월로 뿌리를 감싸 냉장 보관하면 오랫동안 싱싱한 채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역할이 제품을 소비자 품에 안겨주는 순간 끝나는 게 아니라 모두 소비할 때까지 지속된다고 여기는 만나박스의 태도에 마음이 기운다. 골칫거리인 아이스팩 대신 꽝꽝 얼린 생수를 넣어주는 마음도 예쁘다. 한편 마켓컬리가 메종엠오와 리치몬드제과점을, 헬로네이처가 나폴레옹베이커리와 아우어베이커리 등을 독점 거래하는 한편, 만나박스가 식부관을 모셔온 것도 흥미롭다. 식부관 식빵을 잡음으로써 샐러드나 샌드위치 등을 주식으로 즐기는 이들에게 만나박스는 더없이 좋은 선택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벽 배송이 아니라는 사실. 저녁 7시 전에 주문하면 우체국 택배를 통해 익일 오후에 도착한다.


새벽 배송이 밀레니얼 세대의 삶을 이루는 새로운 요소로 안착하면서 신세계, 롯데, 쿠팡, GS 등의 대기업이 줄줄이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최초로 국내에 새벽 배송을 도입한 헬로네이처는 이미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BGF리테일에 인수됐다. 우아한형제들의 자회사 우아한신선들이 운영하던 배민찬은 대기업의 등쌀에 일찌감치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마켓컬리 또한 쿠팡, 신세계에 이어 카카오와 인수 이야기가 오갔으나, 모두 무산된 눈치다. 대신 마켓컬리는 자체적으로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식재료 이외의 상품을 갖추며 수평적 확장을 꾀하고 있다. 주방용품, 인테리어 소품에 이어 최근에는 유아·반려동물 용품까지 판매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어린아이를 둔 가정에서 새벽 배송을 많이 이용하는 만큼 기저귀, 분유, 물티슈, 젖병 등을 판매하는 전략은 그럴싸해 보인다. 이대로라면 빠른 미래에 마켓컬리에서 논스톱 쇼핑이 가능한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소비자 입장에서 새벽 배송업체들이 늘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지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물론 경쟁이 과열되며 서비스나 제품의 질이 떨어지지 않는 한 말이다. 오늘도 나는 잠든 사이 반가운 손님이 왔다 갔기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든다.


CREDIT

글 이주연
에디터 김영재
일러스트 BEN LEWIS GILES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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