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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30. FRI

VOICE OF THE YEAR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중 보기 드문 여성이자 PD 출신으로 지난 10년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이끌고 있는 김현정 앵커 이야기


재킷과 팬츠는 모두 kimseoryong. 프린지 스카프는 & other stories. 네크리스와 이어링은 모두 beauton.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신다고요. 오늘의 메인 뉴스는 뭔가요 미세 먼지 대책이었는데요. 중간에 종로구 고시원 화재 속보가 들어와서 정신이 없었어요. 뒤이어 이순재 선생님이 초대 손님으로 오시기로 한 날이라, 밝은 얘기를 해야 하는데 큰일 났다 싶기도 했어요.
전날 준비한 아이템이 자주 바뀌기도 하나요 어제 저녁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여자 컬링팀의 눈물의 인터뷰가 있었잖아요. 실은 밤사이 아이템을 뒤집어보기 위해 노력했는데, 끝내 섭외가 안 됐어요. 방송이 시작된 후에도 전화를 걸었거든요. 연결되면 그냥 바로 ‘물리려고’.
방송 중간에 섭외가 되면 생방으로 연결하는 건가요 그럼요. 오늘 화재 소식도 제보자를 찾다가 못 찾아서 연결을 못한 거예요. 용산 참사가 났을 때, 아직 속보도 뜨기 전에 사전에 접촉하고 있던 분한테 전화가 왔어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다고. 그렇게 방송사 최초로 용산 참사를 보도했어요.
매일매일 치열하게 진행해 온 <김현정의 뉴스쇼>가 올해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어떤 기분인가요 이렇게 오래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는 기자도 아니고 진행에 뜻이 있지도 않았거든요. 음악이 좋아서 라디오 PD를 하려고 방송국에 들어왔다가 우연히 앉은 자리이기 때문에, 그 우연이 운명이 되고 필연이 될지 몰랐어요. 그래서 더 감회가 깊기도 하고, 감동적이고, 만감이 교차해요.
이를 기념해 공개방송도 하고 토크 콘서트도 연 걸로 아는데, 청취자들과의 만남은 어땠나요 너무 좋았어요. 10주년 기념 공개방송이자 첫 공개방송이었죠. 평일 저녁이라 신청자수가 많지 않을까 싶었는데, 방송 고지 첫날 곧바로 포털 실검에 올랐어요. 심지어 ‘노 쇼’를 방지하기 위해 저희가 신청 포맷에 질문을 10개나 달았는데 말이에요. 첫날 마감은 말할 것도 없고, 저희 작가가 더 이상 홍보하지 말라고 할 만큼 성원이 대단했어요. 당일에도 지방이나 제주도에서까지 오셨고요. 항상 마이크 앞에서 전파 너머에 누가 있을까 상상했는데, 그분들을 직접 보니 뭉클하더라고요. 눈물도 찔끔 났어요.
<김현정의 뉴스쇼>가 이렇게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요 그동안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았죠. 언론에게는 암흑 같던 시기,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을 때 견제나 탄압도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견뎌내면서 정의로운 소리를 들려드리기 위해 노력했던 10년이에요. 모두가 말을 못할 때, 우리는 얘기했기 때문에 작은 매체지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청취율을 떠나 우리 사회에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원동력도, 바른 소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게 발언의 기회를 줬다는 점도요 TV를 보면 스타나 권력자가 나타나면 마이크가 수십 대 수백 대 몰려들어요. 그런데 정말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정작 그 사람한테는 마이크가 가지 않죠.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게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가진 기조였어요.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은 생생한 인터뷰는 <김현정의 뉴스쇼>의 핵심이자 인기 비결이기도 합니다. 본인만의 인터뷰 노하우라면 저는 제 역할을 판소리의 고수에 비유해요. 상대가 가장 말하기 좋도록 판을 깔아주고 추임새를 넣는 역할이죠. 상대가 정치인인지, 일반인인지에 따라 상황은 다른데, 그에 맞춰 고수 역할을 잘해야죠. 또 다른 것은 ‘코가 가려운 데 볼을 긁지 말자’는 거예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로 그것’을 질문하는 것이 제 신조 중의 하나예요. 그리고 쉬운 언어로 질문할 것. TV 시사 프로그램은 박사나 정치인들이 나와서 어려운 용어로 어렵게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저는 그냥 대중의 언어로, 평소 쓰는 말로 가장 궁금한 것들을 물으려 해요.
때론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질문을 던지던데 실제로 내일이 없어진 사람도 많아요(웃음). 방송 중간에 전화를 끊은 사람도 있고, 다시 못 보는 사람도 있고요. 그렇다고 궁금한 질문을 안 하면,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거죠. 그 사람이 왜 껄끄러워 하겠어요. 제일 말하기 껄끄러운 것, 바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잖아요. 마이크 앞에 선 앵커 김현정은 자연인 김현정이 아니죠. 대중이, 시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는 게 제 역할이고 책임이라 생각해요.
자연인 김현정에게 앵커로서의 능력과 기질이 있다는 걸 아셨나요 전혀 아니에요. 저는 말을 잘하거나 재미있게 하는 입담꾼이 아니에요. 다만 공감력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슬픈 사람을 보면 같이 슬퍼하고, 기쁜 사람을 보면 같이 기뻐해 주는. 저는 단순한 사람이에요. 인맥을 잘 쌓아서 내가 뭘 어떻게 해봐야지, 그런 계산이 없었기에 유리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머리 굴리지 않고 단순하게 질문하고, 같이 울어야 할 때 울었어요. 처음 제가 진행을 시작했을 때는 많이 어설펐죠. 기자 출신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진행을 했던 사람도 아니니까. 대신 옆집 누나 같고, 이모 같은 편안함, 그런 게 장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첫 PD 출신 진행자’로서 자부심을 느끼나요 물론이죠. 남녀 통틀어, 전국을 커버하는 라디오 시사 진행자 중에 PD 출신은 없었어요. 신입사원을 뽑으면 저를 롤 모델로 삼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첫 발걸음을 찍으면서 가는 데 자부심과 사명감을 느껴요. 특히 여성이라는 면에서는 더욱 더. PD 출신이란 것도 처음이지만, 여성이 그동안 남자들의 주무대에서 이런 발자국을 10년간 쌓아가는 것도 처음이니까요. 뒤에 따라올 후배들을 위해 좋은 본보기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어깨가 좀 무겁기도 해요.
몇 년 전 펴낸 책 <여성의 일, 새로고침>에서 “부러지지 말고, 칼을 갈아라”라는 조언이 인상적이에요 먼저 말해둘 건, 저희 회사는 그래도 많이 열려 있는,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예요. 후배나 여성들이 여자라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질문할 때, 전 이렇게 답해요. ‘욱’해서 사표 던지고 나오는 게 멋있는게 아니라고. 유연하게 구부러질 줄 알아서, 네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자리까지 올라가라고. 그 다음에 네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점을 고치라고요.
워킹 맘으로서 이 같은 커리어를 쌓는 게 결코 쉽지 않았겠죠 우리나라에서 한 여성이 온전히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다른 여성이 온전히 희생해 줘야 하는 구조가 있어요. 저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친정어머니가 온전히 희생을 해주셔서 맘 편히 일할 수 있었어요. 남편도 이해해 줬고요. 사실 제가 시사 프로그램을 하는 한도에서 그걸 바꿔보고 싶은 게 꿈이에요. 우리 후배들은 제약을 느끼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바꿔보고 싶어요.
2018년의 뉴스 중에서는 어떤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직접 ‘올해의 목소리’를 뽑아본다면 올해 어떤 뉴스가 있었더라? 미투도 있었고 적폐청산도 있었지만, 제일 큰 건 남북한 문제였던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만 해도 전쟁설을 취재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남북 정상이 만난다는 뉴스를 전하면서도 꿈같았거든요. ‘올해의 목소리’를 뽑는다면 세 사람 아닐까요? 문재인, 김정은 그리고 트럼프. 개별 목소리야 전에도 들었지만, 세 사람의 육성이 섞이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죠.
방송이 끝나면 바로 인터뷰 내용이 포털에 뜨고 다른 매체에 인용되고 있어요. 그렇게 발휘한 영향력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노우빈 훈련병 이야기를 꼽아요. 몇 년 전 훈련소에서 한 장병이 뇌수막염으로 숨지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런 사고가 너무 많지만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하나도 바뀌지 않잖아요.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게 하려면 부모님을 인터뷰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아무리 설득해도 욕을 하면서 안 나온다 하셨어요. 안부 전화 드리며 진짜 오랫동안 설득한 끝에 인터뷰를 했는데, 담담하게 하시는 얘기가 너무 슬펐어요. 방송 중에 울지 않으려고 팔뚝에 피멍이 들도록 꼬집었어요. 그 인터뷰가 포털에 실리면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바로 다음 날 국방부에서 군 의료체제 전면 검토를 발표했어요. 아버님이 전화하셔서 자신을 설득해 줘서 고맙다고 하셨을 때,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어렵지만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데서 오는 보람 때문에, 그 힘으로 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과거에 비해 뉴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실감하나요 그럼요. 매일 방송에서 여러 가지 루트로 청취자 문자를 받는데, 하루에 1000~2000통이 와요. 양도 양이지만 내용 면에서도 다들 시사 평론가예요. 보다가 깜짝깜짝 놀래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시사를 편하게 생각하고, 뉴스 보는 안목 또한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촛불 시위라든지 나라가 뒤집어진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우리 국민이 민주시민으로서 성숙도가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앞으로의 10년도 마이크 앞을 지키게 될까요 이변이 없는 한?(웃음) 2015년인가, 제가 완전히 번아웃돼서 잠시 음악 프로그램으로 간 적 있는데, 그때를 계기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그 전까지는 정말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았어요. 뭐 하나 섭외 안 되면 좌절하고, 인터뷰가 잘 안 풀리면 밤에 잠을 못 잤어요. 10개월간 떠나 있으면서 그런 압박을 덜어내고 왔어요. 옆에 있는 돌멩이도 보고, 길가에 핀 들꽃도 보면서, 멀리 가려면 좀 더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오늘 좀 부족해도 ‘다음에 잘해야지’ 하고 넘어가는 여유가 생겨서, 좀 더 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미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지만, 뉴스를 통해 더 이루고픈 꿈이라면 영향력을 끼치는 매체나 프로그램은 많아요. 그런데 그것이 모두 세상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 건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게 극단으로 갈라져 있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지역 갈등이 있었다면, 지금은 빈부 갈등, 세대 갈등, 심지어 남녀 갈등까지 있어요. 더 갈기갈기 다양하게 갈라지고 있거든요. 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제 몫이라 생각해요. 소통의 장을 만들어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어요.

CREDIT

사진 김상곤
에디터 김아름
스타일리스트 주가은
헤어 이경혜
메이크업 구성은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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