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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3. SUN

MODERN FAMILY

우리 가족이 달라졌어요

계절이 바뀌듯 가족의 풍경이 변했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까?


얼마 전 개봉한 <당신의 부탁>은 임수정의 첫 엄마 역할로 주목받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야기의 소재와 이를 다루는 따뜻한 관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도 한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과 남편이 전 부인 사이에서 낳은 중학생 아들 종욱(윤찬영)이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영화는 가족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가족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묻는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을 왜 키우느냐는 엄마의 성토와 연애도 하고 네 인생을 살라는 친구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효진은 오갈 데 없는 종욱을 집으로 데려온다. 마음을 닫은 채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는 종욱에게 효진은 이렇게 말한다. “선택하는 건 포기하는 거야. 그리고 포기하는 걸 받아들이는 거야.” <당신의 부탁>은 가족에 관한 영화이면서 삶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색한 동거를 통해 효진과 종욱은 현실세계의 논리가 보편적이라 말하는 삶의 형태를 포기하는 대신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존재를 선택해 새로운 가족의 인연을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적절한 타이밍에 우리를 찾아왔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이 중요시되는 다원화된 가족 형태로 재설계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 모델에서 벗어난 1인 가족, 비혼 동거, 동성 커플, 입양가족, 생활주거공동체 등이 현대적인 가족의 의미와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혼인과 혈육으로 맺어진 3~4인 가족의 영역은 손을 많이 탄 치약 튜브처럼 쪼그라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에서 4인 가족은 5가구 중에서 1가구에 불과하다. 2025년에는 14%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30대의 절반 이상은 결혼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와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같지만 이해가 된다. 해를 거듭할수록 혼인율은 최저치를 경신하고, 이혼율은 숨가쁘게 증가하고 있다. 많은 부부들이 결혼에 호기롭게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마는 광경을 목도하는 입장에서 준비 과정부터 온갖 갈등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결혼에 의문부호가 드는 것도 당연하다. 혼인, 혈육으로 맺어진 공동체의 쇠락은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결혼을 ‘아주 오래된 제도’라 여겼고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2030년쯤 결혼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으로 전망했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기성세대들의 보편적 가족 수를 상징하는 4인용 식탁은 천연기념물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혼자 밥상을 차리고 혼자 잠이 드는 것도, 국가에 관계를 인증받는 혼인제도가 ‘필수’로 여겨지지 않는 것도, 가족간에 사랑과 상처, 용서가 오갔던 4인용 식탁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게 될 운명에 처한 것도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한 결과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은 부모이며, 그들은 선택할 수 없는 가족이다. 형제, 자매도 그렇다. 가족을 가졌지만 한편으론 저마다 다른 가족을 꿈꾸기도 한다. 그래서 일정 나이가 되어 스스로의 행복을 우선순위에 두고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일은 거룩하고 가치 있다. 그런데도 영화 속 효진이 느꼈던 불편한 시선이 의미하듯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공고하다. 여기에 유착되어 있는 사회적 통념과 제도는 현재 우리 사회를 재편하고 있는 다원주의 공동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1인 가구, 비혼자, 혼인 서류만 없을 뿐 부부생활을 똑같이 하는 커플, 그러니까 저마다의 선택으로 가족을 이뤘지만 제도권의 ‘정상 가족’으로 취급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강보험, 세금 정책, 금융, 복지 등의 혜택과 사회 안전망을 동등하게 누리지 못한다. 그들은 신혼부부조차 자녀가 없으면 까마득히 뒷순위로 밀리는 아파트 청약은 엄두도 못 내고, 집을 마련하려 해도 1인 가구라는 이유로 대출 제약이 심하다. “차별을 경험할 때마다 이성 배우자를 만나 혼인하고 ‘우리 결혼했어요’라고 국가에 알려야 그나마 적당히 잘 살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것 같아.”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아니지만 결혼을 인생의 울타리 안에 들일 생각이 전혀 없는 친척 누나의 푸념이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차별도 마음을 상하고 지치게 한다. 비혼자들은 응급치료나 수술을 앞두고 당장 어찌 할 수 없는 보호자 서명을 재촉받는가 하면, 동성 부부는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친구나 직장 동료 사이라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2년 정도 비혼 동거 커플로 살아온 친구는 차별적 관행과 ‘언제까지 그렇게 살래?’라는 듯 바라보는 가족들의 엇갈린 시선이 지긋지긋해 끝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너와 같이 미국으로 떠났다. 생활이야 똑같이 어려울 테니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남긴 채. 두 사람은 결혼식을 하고 하객 앞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잘 살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 뿐, 서로 평생을 꼭 끌어안고 살 생각이다. 이런데도 결혼 유무에 따른 이분법적 발상으로 가족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건 잔인한 일처럼 느껴진다. 사랑을 하는 것이 결코 근심의 대상이나 아슬아슬한 소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가 1999년에 도입한 시민연대협약(PACS)은 인간적 품위마저 느껴진다. 비혼 동거가 가족 형태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PACS를 통해 결혼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세금 감면, 보험, 사회보장 서비스 등 혼인관계에 준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2006년부터 동거 상태에서 아이를 낳거나 부모 중 한쪽이 육아를 맡아도 차별 없는 지원을 받고 있다. 덴마크는 이보다 앞선 1989년 시민결합(Civil Union) 제도를 시행했다. 동성 부부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결혼과 유사한 권리와 보호를 받는다는 내용이다. 이를 기점으로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도 다변화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편견 없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모든 통계가 가족관의 변화를 가리켜도 도무지 요지부동일 것 같았던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미미하지만 인식의 변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한 후보자가 프랑스의 PACS와 유사한 ‘동반자등록법’을 공약으로 내세워 주목받았고 새 정부에서는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가족정책을 변화에 맞게 구축하기 위한 ‘가족정책 전략 기획단’이 출범했다. 하지만 뭐가 잘 안 되고 있는 걸까? 체감으로 와 닿는 변화는 아직까지 없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했지만 고압적인 사회 기준에서 비켜 서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숨바꼭질 놀이의 술래가 되어 척박한 현실에 꽁꽁 감춰진 가족의 의미와 자격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1인 가구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은 명백하다. 더 뚜렷하게 불거질 모순과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 중 어느 방법이 더 현명할까? 개인이 원하는 삶을 포기하는 것과 세상이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사고를 버리기. 답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개인이 외로우면 가족이 외로워지고 세상이 외로워진다.

CREDIT

에디터 김영재
사진 GETTYIMAGESKOREA
디자인 황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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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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