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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4. SUN

FAIR PLAY

남자가 여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

남자들은 자신이 여자들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근래 부모님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잦아졌다. 아래 이야기는 그러다 생긴 일이다.


아, 그전에, 아버지가(이하 F)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말해야 할 듯하다. 나는 F로부터 학창 시절에는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회사에 취직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성격, 습관, 진로, 결혼 아무것도 간섭받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거의 모든 일을 마음 가는 대로 했다. 여동생 역시 마찬가지였다. F는(금수저를 물려주지는 않았지만) 일반적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고, 나와 여동생은 그 점을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런 사람이었는데.


F와 단둘이 밥을 먹고 나면 설거지는 내가 했다. 어머니와(이하 M) 둘이 밥을 먹고 난 후에도 설거지는 내 담당이었다. F와 M, 나 이렇게 셋이 밥을 먹은 후에도 설거지는 당연히 내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무장갑을 낑낑거리며 손에 끼워 넣고 있었다. F 놔둬라. 예? 왜요? F 네가 왜 하냐? 엄마 있는데. 엄마랑 둘이 먹을 때도 내가 하는데요? F 엄마가 하게 둬. M (F를 보고 웃으며) 설거지 정도는 해도 돼. F 그냥 두고 넌 집에 가. 엄마 없을 때 해. 아버지도 일을 하고, 엄마도 일을 하고, 나도 일을 하는데, 덜 늙은 인간이 힘 좀 더 쓰는 게 무슨 문제예요? 같은 노동자끼리 이럴 이유가 뭐예요?


과거, F는 M이 바쁘면 나와 여동생의 도시락을 싸주고, 저녁도 해 먹였다. 여전히 파, 마늘 등은 자신이 다듬고, 김장도 M과 같이 한다. 명절에도 M이 가기 싫다면 혼자 큰댁에 가고, 무엇보다 시어머니한테 잘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F가 가부장제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F는 가부장과 다른 모델을 보거나 배운 적이 없지만 스스로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을 좇아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는 속도, 정의를 요구하는 속도는 F의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따라가기 쉽지 않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결국, 셋이서 밥 먹는 게 조금 불편해졌다. F는 자신의 집에서 못 보던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고, M은 F와 나 사이의 긴장이 불편했으며, 나는 내가 마치 페미니즘 전도사라도 된 듯해 불편했다.


나는 와이프에게(이하 W) ‘한남’이다. 욕도 많이 먹었다. 사고는 딴 놈들이 치는데 남자라고 싸잡아 욕먹는 게 짜증 나서 몇 마디 했다가 더 욕을 먹었다. 나는 지금껏 나보다 바쁜 W에게 가사노동 분담을 요구하지 않았고, 각자의 부모에게 각자 효도하자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나 W와 대화하다 보면 인식하지 못했던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내게 남아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F가 일반적 사회 통념에서 벗어난 사람이라고 믿은 내 생각도 하나의 증거였다. F가 가부장제를 체화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나는 그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남성이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한국 남성들은 자신이 한국 여성에게 어떤 존재인지 모른다. 자신이 여성을 차별하는 집안의 악당인 줄 F가 모르듯이.


여혐 사건이 터지면 W는 남성을 꾸짖는 내용을 담은 SNS 캡처 메시지를 꾸역꾸역 내게 보낸다. 자꾸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 짜증 났고, 실제로 짜증도 냈다(나도 보고, 듣고, SNS도 사용하는데!). 그래도 그 마음은 이해가 되었다. 변화는 일시적이고 반동은 항구적이기 때문이다. F와 나, 그리고 한국의 남성들은 (구조적) 악당의 위치에서 벗어나려면 여성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끊임없이 노출되어야 한다.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쓰다. 그래서 요즘은 W의 샌드백이 되는 일을 마다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한 것 없이 자꾸 두들겨 맞기만 한다고 열 받을 일이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 그로기 상태는 대체로 여성이니까.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혜택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온 수많은 M과 성추행과 성희롱을 늘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 수많은 W의 고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M과 W를 고통 속에 계속 방치하는 호래자식과 불한당은 더 이상 되지 말아야 한다.


그 첫 번째 시작이 듣는 것이다. 안 들으면 모른다.



김기창 소설가. 장편소설 <모나코>를 썼다


CREDIT

글 김기창
사진 GETTYIMAGESKOREA
일러스트 김란
에디터 김아름, 김영재, 이마루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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