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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THU

MAKING A FEMINIST PORNO

포르노 프리덤

여성들의 품위를 존중하는 포르노. 여자들이 만드는 페미니즘 포르노 현장을 찾았다

교감과 웃음이 오가는 촬영장.


“쉿! 섹스 신입니다!” 스태프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바르셀로나의 드넓은 촬영장에 거친 숨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신음소리를 들으며 커다란 블랙 커튼 뒤에 서 있다 보면 절로 귀가 붉어진다. 포르노 촬영장은 처음인데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지? 언제쯤,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나? 여유로운 척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서야 겨우 숨이 쉬어진다. 촬영장을 쓱 둘러보니 몇몇 기술자와 남자배우를 제외하면 여성이 대부분이다. 배우와 촬영감독, 메이크업 담당자, 아트 디렉터 모두 여자다. 감독 에리카 러스트(Erika Lust)를 비롯해 대부분의 여성은 노브라에 티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이다. 섹스 신을 촬영할 때는 그중에서도 단 세 명의 스태프만 참여할 수 있다. 현대판 아마조네스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여긴 ‘페미니스트 포르노’ 촬영장 한복판이다. “자, 컷!” 조명이 다시 켜지고 커튼이 열리자 몸 전체가 진흙으로 뒤덮인 벌거벗은 커플이 나타났다.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내게 홍보 담당인 안드레아가 말을 건넸다. “진흙은 에리카의 아이디어예요.” 에리카 러스트 감독은 5년 전부터 네티즌들이 웹사이트 ‘XConfessions.com’에 올린 성적 판타지를 영화로 연출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는 ‘내가 레즈비언이었다면’ ‘나는 못된 비서’ 심지어 ‘난 이케아가 좋아!’ 같은 유머러스한 제목의 글이 가득하다. 안드레아가 이렇게 덧붙였다. “오늘의 주제는 발 페티시예요. 약간의 예술성을 가미해서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발 페티시라면 20cm의 킬힐을 신은 젊은 여자들이 괴상망측한 페디큐어를 칠한 발가락을 핥는 모습을 예상하겠지만 이건 오히려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 가깝다. 풀밭과 꽃, 모래 위에서 서로 애무하는 다리가 아름답게 뒤엉킨다. 


페티시즘과 미학이 어우러진 순간.


대다수의 현장 스태프는 여자들이다.


여자 스태프들이 배경을 분주히 바꾸는 동안 남자배우 미로는 나체로 케이터링 담당자와 레서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 “왜 배우가 됐냐고요? 오늘 함께 연기하는 제 약혼녀 루시 덕분이에요. 루시는 저를 해방시켰어요. 전 열여덟 살에 죽고 싶었어요. 저 자신이 수치스러웠거든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요. 제 성적 판타지도 함께요. 전 평범한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아요. SM을 좋아하고 노출증이 있어요. 이런 게 문제가 되나요?” 미로와 루시가 베를린에서 만났을 때 미로는 뮤지션, 루시는 댄서였다. 촬영장 한가운데서 여미지 않은 커다란 목욕 가운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루시. 이내 미로가 루시의 작은 배와 작은 가슴, 백조처럼 희고 우아한 몸으로 빠져든다. 저속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여성이 자신의 몸을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맡긴 채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멍청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일을 반대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진지하고도 확신에 찬 루시의 대답은 이런 걱정을 단숨에 날려주었다.”


다정하게 두 팔을 잡고  서로 껴안은 채 서있 는 배우들.


루시와 미로. 두 사람은 성 해방의 투사들이다.


즐거움을 원하는 걸 왜 수치스러워하나요? 우리는 그동안 섹스의 즐거움이 아니라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해 왔어요. 그래서 전 긍정적인 섹스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 일이 여성 스스로 자신을 해방시키는 페미니즘의 일환이라고 믿는 루시에게 포르노 배우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선 집에서 에로틱 비디오 <Caming>을 촬영하기 시작했어요. 유동적으로 할 수 있는 소소한 일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이 일은 집에서 할 수 있었거든요.” 고리타분한 편견으로 가득 찬 90대 노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찰나, 칼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인도계 캐너디언인 칼리는 에리카를 위해 일하는 배우다. “어느 날 섹스 숍에 갔는데 제 피부색의 섹스 토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포르노를 보려고 했지만 거기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이런 관습을 바꾸고 싶어서 배우가 됐죠. 제 파트너들이 모두 지지해 줬어요! 저는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를 하니까요. 엄마가 모든 자식을 사랑하듯 전 여러 사람을 사랑해요.”  놀란 내 표정을 보면서 에리카가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도 배우들 얘기를 들으면 제가 한참 나이 든 것 같아요! 전 마흔 살이고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이성애자예요. 한 남자를 사랑한 지 17년이 됐고요.” 루시와 미로가 다리로 서로 애무하는 장면을 찍는 와중에 에리카는 열 살과 일곱 살인 자신의 두 딸, 로라와 리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물론 아이들은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자기들이 볼 수 없는 에로틱한 영화를 제작한다는 걸요. 아이들은 이 영화에 벌거벗은 사람들이 나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이나 클리토리스와 질이 무엇인지도 알아요. 아이들이 물으면 저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줘요. 아이들이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 사랑을 나눴기 때문에 태어난 거니까요.” 말을 마친 에리카는 배우들에게 발가락을 핥는 장면을 다시 찍어도 될지 물었다.

그렇다. 문제는 섹스나 포르노 자체가 아니라 기존의 포르노가 가진 시선이다. 세계 최대의 무료 포르노 공유 웹사이트 ‘YouPorn’에 ‘라틴계 창녀’나 ‘커다란 흑인 성기’ 같은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제목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라. 갑자기 등장하는 팝업창 속에는 무시무시하게 발기한 성기들과 함께 희끄무레한 분출물을 얼굴 가득 뒤집어쓴 여자들이 웃고 있다. 남자들이 여자들을 벌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곳에 진짜 쾌락은 없다. 10대들이 작은 방에 틀어박혀 이런 영상을 반복 시청한다고 생각해 보자. 자기도 모르게 여성혐오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 않겠나? 여자들이 난폭한 걸 좋아하고, 심지어 그런 취급을 받을 만하다고 믿도록 만드는 영상이 대부분인데 말이다. 물론 판타지도 섹스 요소이고 상당수의 사람에게 지배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에리카는 이런 성적 판타지를 다루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가 그런 장면을 촬영한다면 여성들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이며 원할 때 멈출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어요. 영화 <복종하는 페미니스트> 촬영 당시 여배우가 엉덩이를 맞는 장면이 있었어요. 너무 이상해서 계속해도 될지 여배우에게 물어보려고 중간에 중지시켰어요. 그런데 그녀는 “전 좋아요!”라고 말하더군요. 우리에게는 모두 변태적인 면이 있어요. 자신의 이런 변태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물론 누구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죠.”


배우이자 폴리아모리이며 투사인  안드레아.


모든 촬영 과정에서 여성은 존중받는다.



우리는 쉬는 시간 동안 스시를 먹으며 각자 에리카의 작품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꿨는지 이야기했다. 얼마 전부터 홍보 일을 맡고 있는 카넬은 처음 에리카의 작품을 보고 전혀 흥분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너무나 달랐으니까요. 그런데 전 일반적인 포르노에 진저리가 났거든요. 그런 비디오를 보고 자위하고 오르가슴을 느끼면 약간 더럽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에리카의 영화에서는 여배우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눈에 보여요. 그럼에도 처음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제 뇌가 포르노 산업을 지배하는 어떤 마초적인 이성애자의 판타지에 지배당했다는 거예요. 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라는 진부한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거죠. 에리카의 작품을 본 뒤로는 상상력이 풍부해졌어요. ‘어떻게 상대의 마음에 들까?’가 아니라 ‘내가 뭘 원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스물두 살밖에 안 됐고 충분히 자유로운 세대인데 제가 뭘 원하는지 자문해 본 적이 없었던 거죠.” 안드레아 역시 동의했다. “주류 포르노나 그룹 섹스 같은 건 지긋지긋해요. 그런데 전 섹스를 좋아하거든요! 페미니스트 포르노에서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 영화에는 맥락과 분위기, 대화가 있죠.” 안드레아는 최종 변론을 하는 변호사 같은 말투로(실제로 그녀는 몇 년 전까지 변호사로 일했다) 덧붙였다. “페미니즘 포르노에는 세상에 대한 제 시각이 담겨 있어요.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폭력과 남성우월주의를 겨냥한 싸움이죠.” 여기 모인 모든 여성은 각자 지키고 싶은 이상이 있다. 에리카는 자연 방목한 암탉이 낳은 달걀과 빈티지 옷을 구입하고 고기를 거의 먹지 않으며, 절대 영화나 음악을 불법으로 다운로드하지 않는다. 안드레아는 과소비와 환경 파괴에 저항한다. “모든 민족주의는 인종차별적이고 폭력적이고 이기적이에요!” 이 같은 토론이 오가는 촬영장은 1968년 5월의 소르본 대학과도 같은 분위기다. 카메라맨이 조용히 해달라고 했지만 에리카는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초기에는 포르노가 해방 운동이었어요. 우리는 그걸 되찾고 싶어요. 여성들은 요즘같은 기회를 가진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착취당해 온 탓에 자신이 강인한 동시에 섹시하다고 느끼기 어려워요. 이제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다시 손에 쥐어야만 해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앞에서 미로가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다. 루시가 천천히 발가락 하나를 그의 입에 넣는다. 약간 숨이 차는 것 같지만 분명히 그는 즐거워하고 있다. 어느새 숨소리, 점점 더 커지는 숨소리만 들린다. 안드레아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개인적으로 발 페티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저건 정말 흥분되네요. 당신은 안 그래요?” 나는? 음…. 지금 난 커피가 필요하다.



영화 감독 에리카 러스트.


Porno by Woman

남자친구와 포르노 비디오를 보고 나서 현실적인 페미니스트 포르노를 찍기로 결심한 여자. 첫 번째 포르노 영화 <The Good Girl>로 200만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영화제작자이자 에리카 러스트와의 대화.

메인 스트림 포르노와 페미니스트 포르노의 차이 맥도날드와 아주 창의적이고 맛있는 레스토랑의 차이와 같다. 때로는 맥도날드가 좋기도 하지만 그것만 먹는 건 안타까운 일이니까. 우리 영화에서는 컨텍스트가 매우 중요하다. 대화와 아름다움 모두에 신경 쓴다. 가짜 같은 인상을 주면 안 된다. 모든 사람들이 배우 대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배우를 선택하는 기준 일단 스물한 살이 넘어야 한다. 그리고 배우들이 촬영 전에 반드시 서로 만나 무엇을 좋아하는지 꼭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기존의 포르노 배우들에게도 진짜처럼 사랑을 나누라고 부탁한다.

주된 스토리 여자가 진짜 원하는 것이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여자를 만족시키려면 삽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도 모든 포르노에서 그것에만 집중하지 않나. 난 다양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싶다. 

관객층 내 영화를 보는 이들의 40%는 여성이고 60%는 남성이다. 이는 남성들이 다른 종류의 포르노에도 열려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독일, 아르헨티나,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전 세계의 남성들 말이다. 


CREDIT

사진 ED ALCOCK
글 FLORENCE BESSON
에디터 권미지
번역 박영진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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