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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MON

FOREVER MEMORY

모두의 배우, 김주혁

당신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큰 줄 늦게 깨달아서 미안하다. 보고 있나요, 김주혁


김주혁의 죽음은 연예계를 넘어 사회적 슬픔으로 확산됐다. 많은 이가 이렇게 말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인데 가까운 지인을 잃은 기분이 든다.” 아마도 김주혁에게 큰 관심이 없었던 사람은 있어도 그를 싫어했던 사람은 없기 때문일 테다. 이 배우가 연기해 온 캐릭터들이 상상 이상으로 우리 곁에 깊이 침투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김주혁은 현실에 발 딛고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남자를 주로 연기했다. 이런 면모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특히 빛났다. 짝사랑한 여자와 키스할 수 있는 절호의 순간 머쓱하게 “메리 크리스마스” 내뱉고 마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그랬고, 다른 남자와도 결혼하겠다는 아내 때문에 끙끙 앓는 남편을 연기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도 그랬으며, 수더분한 동네 반장이었던 그가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에서도 그랬다. 소심함과 찌질함으로 실수를 연발하는, 허우대는 멀쩡한데 뭔가 나사 하나 풀린 것 같은 ‘보통의 남자’. 강함과 욕망으로 점철된 한국영화계의 남성 DNA 안에서 김주혁은 ‘희귀군’이었다. 특히 그가 그려낸 매력은 상대배우의 매력에 힘을 보탠다는 점에서 귀했다. <싱글즈>의 나난(장진영)이, <아내가 결혼했다>와 <비밀은 없다>의 인아와 연홍(손예진)이,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의 민정(이유영)이 한국영화계에서 존재감 있는 여성 캐릭터로 거론될 수 있었던 데는 김주혁의 리액션이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그에게 영화 인생 20년 만에 처음으로 상을 안긴 건 악역을 연기한 <공조>(2017)였다. 뒤늦게라도 트로피를 안고 기뻐하는 고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동시에 그가 묵묵히 쌓아 올린 성취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쉽다. 고인을 향해 쏟아져 나오는 동료들의 많은 추억담을 통해 김주혁이란 사람의 퍼즐이 맞춰진다. 따뜻했던 선배, 스타 특유의 허세가 없었던 배우, 배려가 몸에 스며 있었던 남자…. 김주혁은 그런 배우였음을, 우린 그를 보내고 나서 이렇게 확인하고 안타까워한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이토록 큰 줄 늦게 깨달아서 미안하다. 보고 있나요, 김주혁.

CREDIT

에디터 정시우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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