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라이프 스타일

2017.12.03. SUN

DIRTY BEHAVIORS

할리우드 성범죄

하비 웨인스타인이 영화산업계 여성들을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자행해 온 성추행과 성희롱 행각이 공론화됐다


#하비웨인스타인

지난 10월 5일, <뉴욕 타임스>는 할리우드의 영향력 있는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성추행 혐의를 보도했다. 20년 전 한 호텔에서 배우 애슐리 저드를 성추행한 사건으로 시작된 보도는 그의 범죄가 갓 영화계에 진입한 배우와 모델, 스태프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지속됐음을 밝혔다. 첫 보도만 해도 지난 30년간 성추행 혐의와 관련된 최소 8건의 합의가 있었으며, 그가 회사 내 여성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침묵을 강요했음이 드러났다. 이어 <더 뉴요커> 매거진은 웨인스타인의 피해자가 두 자릿수 이상이며, 그중에는 3건 이상의 강간이 포함돼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탈리아 출신 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를 비롯해 미라 소르비노, 로잔나 아퀘트도 피해자로 목소리 내기에 동참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가 20대 초반에 웨인스타인의 방으로 불려가서 성적 행위를 요구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는 <뉴욕 타임스> 후속 기사가 나왔다. 영국 <가디언>지는 “나는 웨인스타인 같은 남자를 언제나 만난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레아 세이두의 칼럼을 공개했다. 레아 세이두는 자신이 기고한 글에서 웨인스타인이 다른 배우들에게 접근한 방식과 비슷하게 자신에게 추행을 시도했음을 밝혔고, 그 외에도 많은 할리우드 영화산업계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방식을 고발했다. 세이두의 기고 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웨인스타인 같은 남자가 많을 뿐 아니라 감독과 배우, 스태프를 막론하고 영화산업계의 남자들은 모두 그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카라 델레바인도 자신의 경험을 폭로했다. 루피타 뇽은 배우가 되기 전 학생이었을 때 웨인스타인에게 성적 요구를 받았던 경험을 털어놓으며 목소리를 더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피해자만 약 90명이 넘는다. 할리우드의 거물이 몇 십 년에 걸쳐 저지른 범죄에 모두 충격에 빠졌지만 모든 일은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MeToo

<뉴욕 타임스> 첫 보도에서 1997년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로 밝혀진 배우 로즈 맥고완은 보도 후 트위터를 통해 당시 웨인스타인의 행동을 폭로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로즈 맥고완의 계정이 정지됐다. 이에 항의하는 의미로 미국의 여성 트위터 유저들은 트위터를 보이코트하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항의했다. 로즈 맥고완과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적 있는 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면 ‘me too’ ‘나도 그랬다’고 응답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글에 달린 멘션만 수만 건에 달했다. #MeToo 해시태그는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발의 신호탄이 됐다. 에반 레이첼 우드, 레이디 가가 등이 해시태그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에 남성 트위터 유저들은 #IDidThat이라는 해시태그를 만들어 과거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고발

“나도 그랬다”의 고백은 결코 웨인스타인 한 명의 범죄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0월 16일 <엘르> 미국이 주최한 ‘우먼 인 할리우드’ 행사에 참여한 리즈 위더스푼은 16세 때 영화감독에게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고백했다. 그녀는 배우 인생에서 그와 같은 사건이 1회에 그치지 않았다고 밝혀 더욱 충격을 줬다. 리즈 위더스푼은 “(이미 목소리를 낸) 용기 있는 여성들 덕분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제니퍼 로렌스 역시 자신에게 2주 동안 7kg을 감량한 뒤 나체 사진을 보내라는 요구를 받았던 경험을 털어놨다. 이 외에도 제시카 차스테인, 크리스틴 스튜어트, 마고 로비가 영화산업계의 일원으로서 목격하고 경험한 성추행을 이야기하고 앞선 고발자와 용기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함께할 것을 선언했다. 이들이 고발한 것은 웨인스타인 개인에 머무르지 않는, 할리우드의 남성 중심 강간 문화 그 자체였다.


#제임스토백

10월 22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유명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임스 토백 감독이 무려 38명의 여성으로부터 고발당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할리우드 감독임을 여성에게 자랑한 뒤, 다양한 곳에서 배우지망생과 현직 배우 등을 가리지 않고 성적 행위를 요구한 혐의였다. 올해 72세인 토백은 즉각적으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러자 더 많은 여성들이 폭로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레이첼 맥애덤스와 셀마 블레어도 포함됐다. 20대 초반 커리어를 시작할 때 제임스 토백의 성추행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셀마 블레어는 그에게서 살해 협박을 받았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어 더 많은 폭로가 이어졌고, 줄리앤 무어 역시 토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방문 요청을 받았던 경험을 공유하며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어진 연쇄 고발로 알려진 피해자는 현재 300명이 넘는다.


#테리리처드슨

영화계에서 시작된 불씨는 들불처럼 번져 패션계로 가 닿았다. 미디어 그룹 컨데나스트 인터내셔널은 이미 수년 동안 성희롱 논란에 휩싸여 있었던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과의 협업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메일을 다른 국가의 지사 대표들에게 보냈다. <엘르> <코스모폴리탄> <하퍼스 바자> 등을 발행하는 허스트 그룹과 <포터> 매거진도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표했으며, 발렌티노와 불가리, H&M 등 패션 브랜드들 역시 그를 고용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의 성희롱 전력은 무려 2001년에 시작돼 16년 동안이나 이어져왔으나 논란과 상관없이 굳건히 커리어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마이클팰런

그리고 그 불은 바다 건너 영국까지 번졌다. 11월 1일, 영국의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은 15년 전 여성 언론인 줄리아 하틀리-브루어를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그는 BBC 취재에서 “수년간 문화가 바뀌었고 과거에는 용인됐을지도 모르는 일이 이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이 외에도 영국 보수당의 상당수 정치인에 대한 성희롱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케빈스페이시

아카데미 2회 수상자인 케빈 스페이시는 동성 아동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다. 뮤지컬 <렌트>의 스타 배우 앤서니 랩은 14세 때 케빈 스페이시의 초대로 참석한 파티에서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앤서니 랩은 폭로의 글을 쓰면서 ‘웨인스타인과 토백으로부터의 피해를 고발한 사람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고 덧붙였다. 케빈 스페이시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기억나지 않지만 사과한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했다. 그러자 전략적인 커밍아웃으로 자신의 추행을 덮으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당히 성 정체성을 드러낸 바 있는 배우 재커리 퀸토도 “전 세계 수천 수만의 LGBT 어린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방식의 커밍아웃 대신 아동 성추행에 대한 혐의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한 커밍아웃”이었다며 그를 비판했다. 이후에도 성별 불문하고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그에 따라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해 케빈 스페이시가 제작하고 출연한 작품들은 모두 제작이 중단되거나 촬영분에서 삭제된 뒤, 다른 배우로 대체되고 있다.


#루이스C.K.

웨인스타인의 보도를 시작한 <뉴욕 타임스>는 11월 9일 또 하나의 이름을 꺼내 들었다. 코미디언 루이스 C. K.다. 동료 코미디언을 성희롱한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나 정식으로 고발되지 않았던 루이스 C. K.의 성추행 내용이 이번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HBO와 넷플릭스, CBS는 그와 함께 제작하기로 계약한 작품과 출연이 예정돼 있던 방송을 모두 취소했다. 개봉을 앞두고 있던 영화 <아이 러브 유, 대디>는 배급이 취소됐다.


#이름들

<타임>지는 웨인스타인이 촉발한 사태 이후 성추행으로 고발당한 유명 남성들의 이름과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이들 외에도 여섯 명의 여성에게 고발당한 영화 <러시 아워>의 감독이자 영화제작자인 브랫 레트너, 30여 년 전 미성년 인턴을 성추행한 배우 더스틴 호프먼, 오디션 중에 여성 배우들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스티븐 시걸,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의 알 켈리, 과거 미성년자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빠져나왔던 브라이언 싱어, 미성년자 의붓딸을 성추행한 혐의가 있었던 우디 앨런, 미성년자 성폭행 유죄 판결을 받고 도피 생활 중인 로만 폴란스키, 두 명의 여성을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는 <가십 걸>의 배우 에드 웨스트위크 등 익숙한 이름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엘렌 페이지는 브랫 레트너를 비롯한 수많은 남자 제작자, 감독들에게 받은 성희롱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하비 웨인스타인과 같은 사람은 많고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 우리는 시선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수면 위로 실체가 드러난 이들 외에도 불명예와 수치로 기록돼야 할 또 다른 이름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즈 맥고완은 웨인스타인의 범죄 사실을 고발하면서 “주홍 글씨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맞다. 계속 언급되며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반면교사가 되어야 할 것은 가해자의 이름이다.



윤이나(작가.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 


CREDIT

글 윤이나
에디터 김영재
사진 GETTY IMAGESKOREA
아트 김란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