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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WED

HEYDAY OF SUPERMODEL

또 다른 절정, 신디 크로퍼드

화려한 이력을 지닌 패션계의 살아 있는 전설, 신디 크로퍼드. 런웨이 밖에서도 변치 않는 '슈퍼' 파워를 발산하는 섹시하고 건강하면서도 연륜 넘치는 그녀를 말리부 자택에서 만났다


말리부 해변을 마주하고 있는 신디 크로퍼드의 ‘스위트 홈’.



우아하고 아늑하게 꾸며진 응접실. 벽난로 위에는 두 자녀의 어린 시절과 부부의 행복한 한때가 담겨 있다.   



야외 수영장에 놓인 카우치에서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모습으로 포즈를 취한 신디 크로퍼드.



50세를 넘긴 신디 크로퍼드는 변함없이 매혹적이다. 폭포처럼 출렁이는 머리카락, 초콜릿색의 커다란 눈동자, 거의 완벽한 대칭의 얼굴, 시원스럽고 늘씬한 보디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입술 왼쪽 가장자리의 매력 점! 신디 크로퍼드는 1990년대 ‘슈퍼모델’이란 장르를 창조한 전설적인 모델 중 한 명이다. 얼마 전 밀란에서 열린 베르사체 쇼에서 나오미 캠벨, 클라우디아 시퍼, 헬레나 크리스텐센 등 ‘왕년의’ 동료들과 함께 캣워크에 올라 명장면을 연출했다. 전 세계 최고 패션 매거진들의 커버 걸, MTV <하우스 오브 스타일>을 6년간 진행한 1대 MC, 프린스의 명곡 ‘Cindy C’의 주인공, 갭·레브론·펩시 등 분야를 막론하고 브랜드들이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모델, 수영복 캘린더와 피트니스 비디오계의 신화를 쓴 주인공, 리처드 기어와의 결혼과 이혼, 모델이란 브랜드 가치를 대중적인 동시에 고급스럽게 끌어올린 최초의 인물…. 신디 크로퍼드의 주요 이력만 읊다가 페이지가 끝날 정도다.


그러나 오랜 삶의 터전인 캘리포니아 말리부 자택에서 만난 신디는 처음 만나도 이미 아는 사이처럼 친근함이 느껴졌다. 성형 수술로 부풀어오르는 대신 자연스럽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일까? ‘성형한 적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성형을 고려해본 적은? “20대 때는 절대 성형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도 변해요. 솔직히 매달 헤어 염색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웃음). 모든 건 유동적이어서 확실한 답은 없는 것 같아요.”해변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녀의 ‘스위트홈’은 클래식하면서도 우아하다. 지나치게 ‘블링블링’하거나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분위기는 읽을 수 없다. 마치 신디 크로퍼드의 성품처럼.    


미국의 블루 칼라 계층에서 자라난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다분히 입지전적이다. 전기공인 아버지와 병원과 은행에서 근무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세 딸 중 둘째로 태어난 신디 크로퍼드. 사춘기 시절에 부모는 이혼했고 백혈병을 앓던 동생 제프는 그녀가 열 살 때 사망했다. 그렇다고 울적한 성장기를 보냈던 건 아니다. “제가 자란 일리노이 주 드칼브는 안전하고 정겨운 분위기의 소도시였어요. 독립기념일 퍼레이드, 문만 열고 나가면 가능한 피크닉, 동네 사람들의 소프트볼 경기….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든 토대이자 건전한 정신을 갖게 했어요. 제 아이들에게도 미국 중서부의 가치를 전해주려 애쓰고 있어요.” 아마도 이 가치는 사업가인 랜드 거버(Rande Gerber)와 결혼해 낳은 아들 프레슬리(Presely)와 딸 카이아(Kaia)에겐 생경할지도 모르겠다. 온갖 셀러브리티가 집에 드나들고, 조지 클루니 부부와 멕시코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슈퍼 셀럽 키즈들이니까. “육아를 통해 배운 건 아이들이 부모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언제나 부모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죠. 남편과 내가 일하거나 사람을 대하는 방식, 요리하고 밥 먹는 법같이 사소한 행동까지도요.”
1982년, 열여섯 살에 사진가에게 발탁돼 스무 살에 뉴욕으로 날아가 본격적인 모델 일을 시작하자마자 톱 모델이 된 그녀는 데뷔 시절을 이렇게 회상한다. “마치 줄지어 탄생하는 별들의 행진을 보는 듯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패션에 관한 모든 게 폭발했어요. 우리는 그 속에서 록 스타가 됐고요.” 하지만 신드롬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슈퍼’라 불렸던 신디와 그의 동료들 이후 케이트 모스와 지젤 번천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다음을 잇는 스타는 꼽기 어렵다. “전 모델 전성기를 살았어요. 그러나 지금 모델들은 그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죠. 광고 계약이나 수입 면에서도 배우와 가수, 리얼리티 쇼 출연자들에게 밀리고요.” 잡지와 런웨이, SNS를 장식한 획일화된 모델의 이미지도 과거와는 다른 상황이다. 신디 시대의 모델들은 탄수화물을 빼앗긴 지금의 깡마른 모델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여성스러웠다. 인스타그램 세대인 자신의 아이들, 특히 모델 길을 가고 있는 딸 카이아가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가르치는지 궁금했다. “따로 조언하기보다 엄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해요. 난 깡마르지도 않았고 드레싱 없이 상추를 먹지도 않아요. TV 앞에 널브러져 아이스크림을 한 통 다 먹어버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가끔 가족들이 즐길 고칼로리 간식도 사둬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억지로 참지 않되, 단 작은 사이즈를 택해요. 물론 운동도 열심히 하고요. 카이아가 외부 시선이나 몸매에 대한 압박을 받더라도 이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고 올바른 메시지를 찾아내길 바라죠.”


수시로 사진을 찍히는 유명인에게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신디 크로퍼드 역시 마찬가지. 2015년 선보인 저서 <비커밍 Becoming>을 집필한 이유도 ‘나이 들어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저 역시 오십이란 나이를 포용하기 쉽지 않았어요. 여성들은 나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언제나 스스로를 일깨우고 자신을 북돋아주어야 해요. ‘난 나이가 들었지만 지금껏 얻은 인생의 경험이 있어!’라고 말이죠.” 이번 베르사체 쇼에서도 증명했듯이 변치 않은 ‘슈퍼’ 파워를 발휘하는 그녀는 가끔 모델 일을 하고 있고,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능력을 펼치고 있다. 안티에이징 스킨케어 브랜드 ‘미닝풀 뷰티(Meaningful Beauty)’를 이끌고 있고, 본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신디 크로퍼드 홈’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영역에서도 활약한다. “패션 피플이 아닌 사람들과의 작업도 즐거워요. 비즈니스를 할 때는 연륜이 장점이 되죠. 지난달 잡지 커버를 장식한 소녀일 필요가 없어요.”


이쯤 되니 그녀만큼 명민한 브랜드 이미지 관리자도 없을 듯하다. 섹시하면서도 건강한 이미지의 모델(“다행히 여성들이 날 미워하진 않았죠”라고 그녀는 웃음을 터트린다)에서 열정적인 비즈니스 우먼이자 말리부 저택의 우아한 안주인 그리고 자신을 쏙 닮은 ‘라이징 모델’ 딸을 둔 슈퍼맘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그녀의 이름이 지닌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잘 알지만 스스로를 트렌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범접할 수 없는 스타일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인생의 영감을 공유하는 친근하고 편안한 존재가 되고 싶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장소에서 미소 띤 얼굴로 담담하게 전하는 그녀의 메시지가 말리부의 보드라운 바람처럼 마음을 스쳤다.

CREDIT

사진 PAMELA HANSON
글 ALEX BILMES(LONDON EVENING STANDARD/THE INTERVIEW PEOPLE)
디자인 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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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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