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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02. MON

Van Life 6

지금 당장 이곳으로

건포도처럼 쪼그라드는 듯 갑갑하다면 이곳으로 떠나보길.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물론 다양하고 재미지다. 도시 말이다. 그중에서도 최고로 재미진 도시는 서울이다. 밴 라이프를 시작하며 벗어나도 자석처럼 자꾸 우리를 당기는 마력의 도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수많은 문화와 경험, 높은 빌딩과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시야가 좁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서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말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피로감이 느껴져 멀리 허공을 바라볼 때, 눈의 기능이랄까 근육의 움직임이 더디게 느껴질 때가 있다(물론 지금도). 큰일 났다는 생각에 며칠 동안 어떻게든 스마트폰에서, 더 나아가서는 도시에서의 탈출을 꾀했다.

밴에 살기 전에는 어디론가 문득 떠나고 싶을 때 ‘붕’하고 단번에 떠난 적이 별로 없었다. 미리 찾아 보거나, 찾아도 시간을 또다시 도시에 빼앗겼다. 이제는 감히 추천할 곳이 생겼다. 매번 이사를 꾀하는 밴 라이프 덕분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오가더라도 차로 6시간이면 충분하다. 건포도처럼 쪼글쪼글해지는 갑갑함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차로 3, 4시간쯤 내달리는 수고는 설레어 할 것이라 믿으며 소개한다. 바로, 강원도 평창 육백마지기이다.




볍씨 600말을 뿌릴 수 있을 만큼 넓어 ‘육백마지기’라 불리는 평원. 둔탁한 이름에서 시골 정서가 묻어나는 이곳은 해발 1,200미터 평창 청옥산에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냉지 채소밭이기도 하다. 올라가는 산길이 꼬불꼬불해(대부분 포장도로라 거칠진 않다) 거북이만큼 느린 속도로 운전해야 하는데 ‘이 길에 끝이 있기는 한 걸까?’ 의심이 들 때쯤 마침내 진정한 육백마지기의 매력이 담긴 길이 나타난다. 사람과 마을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숲으로 향하는 비포장 도로가 이어진다. 차로 10여 분은 이어지는 이 길 끝에선 북실북실한 산이 이어진 광활한 산줄기가 펼쳐진다.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하얗고 매끈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가슴이 탁 트인다. 예뻐 보이겠다고 한껏 조였던 브래지어 후크를 풀어버리는 해방감과 비슷한 결이다. 창문을 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 깨끗하고 맑은 공기가 폐에 들락날락한다. 고장났던 눈의 근육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다.




수국 등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와 무밭을 지나 전망대에 도착하면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평지가 펼쳐진다. 신이 연습 삼아 만들었다는 아이슬란드의 자연 풍광 못지 않다. 놀라운 풍경이 겸손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곳엔 풍력발전기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만든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자연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





부딪혀야 하는 관계, 해야할 일, 가야할 곳 없이 그저 숨을 들이마시기만 하면 된다. 시야를 멀리 두고 숨을 깊이 마시면 갇혀있던 몸과 마음과 생각이 팽창하기 시작할 거다. 이 시간은 여행보다 명상에 가깝다.




우리가 육백마지기들에 갔을 때는 연신 폭염주의보가 울리던 한여름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긴팔옷을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혹자는 새벽녘이나 아침 일찍 찾아간다면 운무가 피어올라 산 정상이 마치 뽀얀 호수에 떠있는 섬처럼 보인다고도 했다. 아침형이라면 이른 시간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육백마지기를 향하는 길에는 찐빵으로 유명한 횡성군 안흥면 찐빵마을에 들러 따뜻한 찐빵 몇 개와 하얀 우유를 사 보길. 이곳에선 스마트폰을 놓아 보길. 음악은 틀지 말고 불어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길. 인공적인 것에 기대지 말고, 우리의 감각을 맘껏 펼쳐보자. ‘탈출 성공’을 위해.
가는길 네비게이션에 ‘육백마지기들’을 입력하면 산 정상까지 안내해준다.





to be continued

어느덧 가을. 우리의 밴 라이프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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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은희
글 김모아(@LESONDUCOUPLE)
사진 김모아, 허남훈(WWW.LESONDUCOUPLE.COM)
일러스트 조성흠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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