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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FRI

DEAR WORKING WOMEN

워킹 걸, 건투를 빕니다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이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간다. 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지키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 내게 커리어 우먼은 그냥 ‘일하는 여자’와는 다른 존재였다. 정장을 입고 세련된 화장을 한 여자들. 무엇보다 상상 속의 그녀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H라인 치마와 누드 톤의 정리된 손톱이었다. 조금 더 높은 직책을 맡고 있거나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여성이라면, 역시 쇼트커트에 바지 정장이다.


상상 속 그녀들은 출근하고,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끊임없이 회의하고, 퇴근하고, 저녁은 밖에서 먹는다. 그녀들은 혼자 혹은 자매와 살고, 종종 친구들을 불러 소박한 홈 파티를 연다. 이른 출근 시간이나 때때로의 야근이 불만스러울지라도 나름 일에 만족하고 또 일에서 성취욕을 느끼며 적지 않은 월급을 벌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틀에 박힌 상상에 새로운 요소를 더해준 것은 엉뚱하게도 내 나이대 여성들의 경전으로 통하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였다. 상상 속 그녀들은 변호사 미란다의 세련된 바지 정장이나 PR 회사 대표 사만다처럼 과감한 옷을 입었다가도, 다시 큐레이터 샬럿 같이 단정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원피스를 입기도 했고 친구들과는 저녁 식사보다 브런치를 함께했다. 매일 친구들과 만나 수다나 떨고 밤에는 섹스나 하는 것 같겠지만, 일은 분명히 하고 있다. 일하지 않으면 브런치 먹을 돈과 멋진 집의 월세는 어떻게 벌겠느냐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란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뭐 대충, 서류를 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작성하고 또 치열하게 회의하는 것이겠지. 이 턱도 없는 상상이 박살 난 것은, 나 역시 일하는 여자가 되면서였다. 첫 직장이자 유일한 직장이었던 방송국에서 주말 예능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던 10년 전, 나는 출퇴근 시간이 조금 자유로운 커리어 우먼이 된 줄 알았다. 아니면 커리어 우먼 비슷한 것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출근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내가 가진 직장과 직업 그리고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은 모조리 깨졌다. 일단 방송국, 더구나 예능국에 다니는 사람은 누구도 정장을 입지 않았다. 오죽하면 PD가 정장을 입는 날은 방송심의위원회 징계에 불려가는 날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막내 작가는 생계를 꾸리기는커녕 삼시 세끼를 방송국에서 해결해야 생존이 가능한 수준의 돈을 벌었고, 여유 있게 친구를 만날 시간은커녕 제대로 잠잘 시간이나 있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브런치. 세상에 오전 11시쯤 만나 여유롭게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친구와 수다를 떨 수 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그렇다. 커리어 우먼이라는 영어 단어를 직장인 여성으로 바꾸면 모든 포장은 다 벗겨진다. 뭘 입고 어떤 화장을 하고 어디에서 누구와 사는가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하루를 견디며 그만큼, 실은 그보다 더 많이 일하며 사는 더도 덜도 아닌 직장인인 것이다. ‘그런 직장인이 되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한다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출근 없는 세상에 살고 싶어서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라는 모호한 상태로 지난 10년을 보내왔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커리어 우먼이라는 단어로 설명 가능한 지인들의 삶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지옥 같은 직장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 정도로 해석하면 될 알람으로 깨어나, 나는 1년에 두어 번 탈까 말까 한 출근길 대중교통에 매일 오르고, 사약 같은 커피로 정신을 깨우는 응급처치를 한 뒤, 책상에 앉는다. 거기서 밖에서 보면 멋져 보일 수도 있는 어떤 일을, 그러니까 자신만 알고 있는 각자의 일을 한다. 시간은 흐르고, 퇴근하거나 야근을 한다. 그리고 반복. 달력에 매일 표시해 가며 오직 휴가만 기다린다. 무조건 휴양지다. 쉴 거야, 쉬고 말 것이다. 그들에게 단호한 결의가 있다면, 딱 그 정도다. 그녀들은 결코 사만다나 미란다, 샬럿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훨씬 더 많은 원고를 쓰지만, 뉴욕의 아파트는커녕 망원동 빌라에서도 친구 집 방 한 칸어치의 월세를 겨우 내고 살아가는 내가 캐리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러고 나서야, 커리어 우먼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일과 내 일을 구태여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은 그냥 일이고, 우리 모두는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많은 아르바이트가 그러하듯이, 종종 그 일은 책상에서 하는 일이 아니기도 하다. ‘25세 이상의 전문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여성’이라는 말 속에 얼마나 다양한 삶과 일의 형태가 들어 있는지를, 이제는 알고도 남을 나이가 돼버린 것이다. 어찌 됐든 작가이므로 그 정의 안에는 나름 ‘프리’한 형태로 일하는 나도 포함된다.


커리어 우먼이라는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직업’ 정도다.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여성들은 어디에나 있다. 생존 측면뿐 아니라 자신으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도 일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매일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는 내 친구들과 당신에게도, 오전이 다 가도록 침대에 누워 있지만 실은 동이 트고서야 마감을 끝낸 나 같은 사람에게도. 부러움도 부끄러움도 연민도 없이 우리는 일하고, 그 일을 통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거면 된 것이다. 누군가 내게 올해의 여성을 꼽으라고 말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영화 <미스 슬로운>의 로비스트 엘리자베스 슬로운의 이름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것이다. 그녀에게 일은 목적도, 수단도 아니다. 그녀와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자신의 팀에 실패의 기운이 짙어지던 때, 슬로운은 한 질문을 받는다. 질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이 일을) 계속 하느냐”는 것이다. 슬로운은 대답한다. “그럼 뭘 하라는 거지?” 일 말고, 도대체 무엇을? 그녀에게서 일을 잘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고, 일하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지키는 수많은 여성을 본다. 나는 늘 이런 여성 캐릭터를 만나고 싶었다. 수많은 이야기 속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일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여성 말이다. 출퇴근 시간과 소비력, 패션, 사는 곳과는 상관없이 열심히 일하고 1인분의 삶 혹은 그 이상의 삶까지도 책임지는 여성. 언제부턴가 커리어 우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그런 모두를 생각한다. 왜 계속 일하냐고요? 일이니까요.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가기 정말 쉽지 않은 이 나라에서, 모두에게 건투를.


윤이나(작가. 책 <미쓰윤의 알바일지>, JTBC 웹드라마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썼다)

CREDIT

에디터 김아름, 김영재, 김미강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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