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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TUE

Small Universe

사진책방 이라선의 존재 이유

스마트폰을 꺼두고 한참 머물고 싶은 곳. 서로를 닮은 두 사람 김진영, 김현국이 운영하는 서촌의 작은 사진책방 이라선에서 사진과 책의 존재 이유를 되새겼다


지난해 10월, 이라선을 열었다. 사진 책방을 열게 된 계기는 스무 살 무렵이었나. 나중에 깨끗하고 옛날 책들이 잘 정리돼 있는 헌책방을 차리고 싶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한 적 있다. 어릴 때부터 헌책방을 무척 좋아했다. 옛날 책에서 풍기는 종이 냄새가 좋았고 다른 어디에도 없는 책을 구했다는 즐거움이 컸다. 도쿄의 진보초 거리, 영국의 헤이온와이,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을 비롯해 유럽의 소도시에서도 이름 모를 헌책방을 찾아다녔다. 사진집 수집은 그렇게 시작됐다. 윌리엄 이글스턴의 <eggleston’s guide>(1973) 초판을 만났고, 엘리노어 카루치의 절판된 사진집 <closer> (2002)를 발견했고, 리 프리들랜더의 뉴욕현대미술관 도록 <friedlander>(2005) 사인본을 구했다. 이런 삶의 궤적에서, 스무 살에 흘리듯 친구에게 건넨 말을 실현하게 된 거다. 


왜 서촌이었나? 공간을 꾸민 컨셉트는 서촌은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많아 자주 다니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골목길을 산책하다 비어 있는 이곳을 보게 됐다. 앞에는 작은 뜰이 있고 주변 한옥에 둘러싸여 서울 같지 않은 고요함이 느껴졌다. 이런 고요함과 따뜻함에 매료돼 이라선을 열기로 결정했다. 인테리어를 고민하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서재’라는 공간이었다. 책을 보며 오롯이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아늑한 개인 서재 같은 서점을 만들고 싶었다. 편집 숍부터 재활용 센터, 황학동 가구 거리까지 두 달 내내 이 공간을 채울 빈티지 가구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인테리어를 완성했고, 우리는 사진집들을 하나하나 ‘전시하는’ 마음으로 비치했다. 사진가, 편집자, 출판사가 고심해서 선택한 판형과 표지의 사진집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움이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간을 꾸몄다. 


어떤 책들을 소개하나? 이라선만의 특별함이라면 이라선은 신간과 빈티지 도서의 비율을 50 대 50으로 생각한다. 빈티지 도서는 사진 역사에서 중요한 사진집이나 작가를 선정해야 해서 자료조사가 많이 필요하다. 만 레이 등의 초기 사진을 볼 수 있는 프랑스 잡지 <vu>에 대한 사진집이나, 사진이 발명된 초창기에 사람들이 사진이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어 찍은 심령 사진들을 담고 있는 사진집을 다루는 곳은 한국에서 이라선뿐일 것이다. 신간 도서의 경우 대형 출판사들은 새로운 시즌이 되면 패션 룩 북처럼 출간될 책의 카탈로그를 보내온다. 조금 더 까다로운 것은 외국의 작은 독립 출판사의 경우인데 계속해서 출간 동향을 파악해야 한다. 영국의 혹스턴 미니 프레스(Hoxton Mini Press), 중국의 지아자지 프레스(Jiazazhi Press) 같은 작지만 좋은 사진집을 내는 곳들의 책도 중점적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얼마 전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렸다. 함께 서점을 운영하면서 의견 충돌은 없나 나는 미학, 그중에서도 사진 이론과 역사를 공부했다. 그래서인지 이론적, 역사적 관점에서 사진을 볼 때가 많다. 남편은 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 포토그래퍼로 일하고 있다. 나보다 훨씬 감각적이고 새로운 것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둘이 사진집을 함께 선정하는데, 가끔씩 왜 이 사진집이 좋은지에 대해 설전을 펼친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충돌이라기보다 발전적인 과정으로 보는 편이다. 




서점을 해서 밥 먹고 살겠냐는 소리를 귀가 닳도록 들었을 것 같은데 서점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걱정 어린 시선이 많았다. 우리처럼 사진집을 좋아하고 사진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진에 대한 불타는 애호심이 최고의 원동력이었다. 다행히 예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이라선을 좋아하는 것 같아 기쁘다. 생각보다 판매도 되는 편이고(웃음). 


지난 몇 개월간 서점을 운영해 본 소감은? 어떤 즐거움 혹은 깨달음이 있었나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에서 누구나 사진을 찍는 시대가 되었다. 사진이 하나의 언어가 된 것이다. 이라선을 연 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즐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웹 서핑으로만 사진을 보던 손님에게 사진집 한 권을 내 배경지식을 활용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면, 웹 이미지와 존재론적으로 다른 사진집 속의 사진 이미지를 누구나 즐겁게 감상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우리가 그들의 삶에 작은 즐거움을 더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간혹 내가 모르는 작가의 사진집을 찾는 손님이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좌절하지만 동시에 기꺼이 손님이 찾는 책을 적고 찾아본다. 그 가운데 좋은 사진집은 분명 이라선이 다시 다른 손님에게 소개할 책이 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전문 서점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클릭 한 번이면 책을 살 수 있는 시대에 서점의 역할은 단순히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취향과 지식의 공유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라선이 어떤 공간이 되길 바라나?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우선 계속해서 좋은 사진집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 더미북 워크숍을 계획 중이다. 더미북은 본격적인 출판 전에 만들어보는 가제본 형식의 책이다. 요새는 사진에 관련된 거의 모든 프로세스가 디지털화로 인해 굉장히 단순해졌다. 이런 편리함의 어두운 면은 많은 고민이 필요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진집은 단순히 찍은 사진을 배치하고 보기 좋게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사진들을 되돌아보면서 문제의식을 심화하고 그에 걸맞은 형식으로 사진집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이라선의 더미북 워크숍은 모든 과정을 수제작으로 할 것이다. 앞으로도 한결같은 느낌으로, 그러나 그 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진 책방이 되고자 노력하겠다. 

김진영·이라선 대표 



irasun’s pick

<엘르>를 위해 이라선이 큐레이팅한 네 권의 사진집.


<Bubblegum>

뉴욕 이스트 햄프턴 해변을 배경으로 풍선껌 부는 아이들을 찍은 사진집.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놀란 것 같은 얼굴도 있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얼굴도 있고 좌절해서 찌푸리는 듯한 얼굴도 있다. 이 모든 솔직한 얼굴들에는 부풀다 터져버리는 풍선껌처럼 찰나에 빛나는 젊음이 있다. 런던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는 에밀리 스테인의 작품.



<Waiting>

러시아 출신의 젊은 사진가 자나 로마노바의 사진집.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젊은 부부들이 그들의 침실에서 아침 햇빛을 맞으며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들은 누군가를 기다리고(waiting) 있다. 바로 여자 뱃속의 아기가 태어나기를. 각기 다른 자세로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40쌍의 다양한 아침 풍경이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는 설렘의 감정을 전한다.



<Saul Leiter> 

사울 레이터는 오늘날 컬러 사진의 역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 되었다. 영화감독 토드 헤인즈는 <캐롤>(2015)을 만들면서 1950년대 뉴욕을 재현하기 위해 사울 레이터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로버트 프랭크, 다이앤 아버스처럼 뉴욕의 거리에서 영감을 받는 사진가로서 사울 레이터가 보여주는 사진들은 시선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Morandi's Objects> 

이탈리아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의 정물화에 매료된 뉴욕 출신의 사진가 조엘 메이어로위츠. 모란디의 생가에 찾아간 그는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을 똑같은 배경과 비슷한 빛의 조건에서 촬영했다.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아마도 일상의 숭고함. 이 사진집은 보통의 물건들이 자신의 색깔과 형태를 드러내며 나긋하게 이야기하는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CREDIT

PHOTOGRAPHER 장엽
EDITOR 김아름
DIGITAL DESIGNER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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