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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21. FRI

SCODE #25

3초 후면 사라지는 은밀한 대화

그 남자가 읽은 뒤 정확히 3초면 대화가 사라져버린다. 사라지니까 할 수 있는 말들



SNS를 통해 섹스 상대를 구하는 것이 익숙한 미영이 말했다.
“익명인 상태에서 좀 더 과감해지는 게 있잖아. 아직 만나지 않은 상대니까 내 욕망을 거침없이 내뱉는데 부담이 없달까나. 상대의 눈치를 보거나 수줍어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연애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연인과 성적 욕망을 공유하고 야한 섹스를 시도하라고 말하잖아. 그거 이론적으로는 훌륭한 조언일지 몰라도 실제로 성적인 부분부터 맞춰보고 사귄 사이가 아니면 말을 꺼내기 절대 쉽지 않을 걸.”


나 역시 연인 사이니까 서로에게 솔직해지고 색다른 걸 시도해보라는 조언을 하곤 했지만 내 남자친구가 그런 걸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데 무턱대고 섹스 하던 도중에 ‘목을 졸라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말해보지 않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대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평생 알 수 없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위 말하는 더티섹스토크마저도 잘 통한다면 둘의 섹스라이프는 완벽해질 것이다. 안타깝게도 완벽함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랑 맞지 않는다면 헤어진다거나, 나의 태도에 놀란 상대가 이별 통보를 할 수도 있다는 각오 없이는 좀처럼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렵다. 굳이 섹스 이외에는 큰 불만이 없다거나 섹스를 할 때 그럭저럭 만족한다면 괜히 내면 깊은 곳의 성적 욕망을 상대에게 드러내 관계를 망가뜨리는 일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다만 미영에게 섹스는 정기적으로 하는 운동 같은 개념이었다. 특히 주 3회 이상 만족할만한 섹스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마음이 없었다. 좋은 섹스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었다. 섹스와 연애에 대한 욕구와 자기만의 기준이 확실하다 보니 새로운 남자를 탐색할 때에도 큰 실패를 하지 않았다.
서로 끌리고 있는 성인 남녀가 합의하에 성적인 대화를 나누고 사진을 주고 받는 행동 자체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유출되거나 공개되었을 때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은 비난을 받으며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거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태에 대한 공포도 여자 쪽이 클 수밖에 없다. 사랑했고 믿었지만 상대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여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는 성엄숙주의자들도 그런 문제가 발생하면 여자의 잘못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부류일 뿐이다.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누구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훗날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일을 하면서 미영은 두려운 게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물어보았다.


“관계가 깨졌을 때 남자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할지 모르잖아. 아무리 성적 취향이 잘 맞는 상대를 찾아내기 위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라지만 나중에 주고받은 사진이나 나눈 대화의 캡쳐본으로 협박이라도 하면 어떡해?”
“좀 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를 성적으로 자극해보고 싶어지면 텔레그램으로 옮겨서 비밀채팅 기능을 쓰면 돼. 상대가 메시지를 확인한 후에 몇 초 뒤에 사라지도록 설정해두면 되거든.”
“요즘 텔레그램은 잘 안 쓰잖아. 상대가 그 앱 사용자가 아니면 번거롭지 않아?”
“앱스토어에서 그거 찾아서 설치하고 로그인 하는 데 5분도 안 걸릴 텐데 그게 번거로워서 대화를 못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대체 뭘 도모할 수 있겠어? 왜 내가 야한 대화를 나눌 때 조차 안전을 먼저 고려하는지, 어째서 화면 캡쳐가 안 되는 어플리케이션을 쓰고 싶어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아하기만 하는 상대는 애초에 만날 필요가 없잖아. 1차적으로 이상한 상대를 걸러낼 수 있는 거지.”

텔레그램에서 주고 받는 대화가 자동으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PC버전으로 접속해 모니터영상을 녹화할 수도 있고, 화면 캡쳐는 되지 않더라도 모바일 화면 자체를 카메라로 촬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넘어가버린 글이나 사진 데이터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삭제하는 것은 디지털 복제 시대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19금 대화를 나누기 전에 단단히 알려두곤 해. 법적으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우선은 증거를 남겨두는 거지. 유출된다면 서로에게 손해배상은 어떻게 할 건지, 혹시나 사진이 유출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걸 확실히 해두는 거야. 그러면 자길 못 믿냐면서 버럭 대는 남자나 내게 예민하다며 피곤해하는 남자들도 있어. 그럼 더 좋아. 한 차례 더 걸러지는 거니까. 


얼마든지 야해질 수 있지만, 그건 안전한 환경이 보장되고 믿을만한 상대 앞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인지시켜주는 거야. 그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남자를 만나는 거지. 게다가 상대 입장에서도 내가 못 미더울 수 있잖아. 서로 몸을 사린다는 느낌을 주는 상대야 말로 안전하지. 그런 남자들 중에 훗날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더라구.”
꼭 미영처럼 새로운 상대와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권태로운 연인 사이라든지 장거리 연인들끼리 야한 대화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자극하고 싶어질 때에도 텔레그램 비밀채팅이 제법 유용할 것 같았다. 


“읽으면 대화가 사라지니까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읽고 반응하니까 거기서 오는 긴장감도 자극에는 플러스 요소거든.”
미영의 추천을 받았더니 지워버렸던 텔레그램을 다시 깔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현정
사진 영화 <하나 빼고 완벽한 뉴욕 아파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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