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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2. SUN

INBETWEEN #10

나 헤어졌어, 난 결혼해, 연애가 이런 거였어?

약 6개월만에 만난 친구 사이였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우리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야, 나 헤어졌어.”
“정말? 왜? 얘기해봐.”
“야, 잠깐만. 이거 맛있다. 이것부터 먹어봐.”
만나면 늘 이런 식이었다. 사건의 무게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주 슬픈 일이 갑자기 가벼워지고,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은 느닷없이 무거워지곤 했다.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버텨내는 방식이었다. 오늘은 색깔이 너무 좋은 참치회를 부위별로 마주하고 있었다. 막 한 점을 들었을 때, A가 이별을 말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지만 참치도 늘 맛있으니까.
“응응, 말해봐. 듣고 있어.”
“오, 이거 진짜 맛있는데? 여기 어디지? 도로? 오도로?”
“너네 몇 년 만났지?”
A와 A의 남자친구는 3년이나 만난 사이였다. 30대 중반에 3년 이상 이어졌던 관계에서 결혼을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 그들도 당연히 결혼 근처에 있었다. 양쪽 부모님은 서로의 존재를 알았다. 몇 번은 식사도 같이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엇갈리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둘이 있으면 마냥 좋았으니까, 결혼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수순 같은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들어봐, 진짜 느닷없이 헤어졌어 우리. 한 3시쯤? 무슨 테러 당하듯이”
“오후? 새벽?”
“새벽, 자다가 일어나서. 진짜 갑자기 진지해져서.”
평소처럼 잠든 밤이었다. 하지만 문득 서로의 몸이 닿았을 때 유난히 뒤척이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갑자기 예민해졌다. 남자의 한숨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A는 그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충동적이었는데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오래 묵은 감정이 하필이면 그날 새벽에 쏟아진 거였다.
“그래서 핵심이 뭔데?”
“내가 자길 주눅들게 한대.”
“오, 잘 헤어졌다. 너 때문에 주눅든다는 남자는 만나면 안돼. 근데 3년 내내 그랬대? 그 얘길 왜이제 와서 해? 무슨 소리야 그게? 못난 놈.”
이런 종류의 슬픔은 슬픔으로 희석되는 게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안다. 우리는 A의 상황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어떤 이별은 그저 축복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 누가 누굴 주눅들게 하는 관계가 오래오래 좋을 리 없으니까. 게다가 그런 말을 새벽에, 홧김에, 느닷없이 꺼내는 남자야말로 분명히 별로라서. 그때 B의 오른손에 낀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 그 반지는 뭐야? 결혼해?”
“아니, 이 반지는 그냥 커플링. 결혼은 내년에 해. 다음주에 사진 찍어, 우리.”
“정말? 왜 얘기 안 했어! 축하해!”
B는 신중한 남자였다. 청첩장이 안 나와서 아직 정식으로 말을 못했고, 그런 말을 할 땐 정식으로 초대한 자리여야 한다고 믿었다. 다음주 초에 진행할 웨딩 사진 때문에, 역시 진지하게 다이어트에 돌입해 있었다. 술잔을 나눠서 비운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오늘은 좀 소극적으로 마셨던 이유였다. 좋은 날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우린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다. B가 말했다.
“그런데 그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힘들 때 잘 지내는 거.”
“그치? 정말 살만 닿아도 밉고 싫을 때는 어떡해? 진짜 간절히 혼자이고 싶을 때는? 참아?”
“모르겠어, 지금은 정말 모르겠어. 결혼 뭐야?”
대화가 이별에서 결혼으로 넘어갔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다. 누구도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의 문턱에 B가 있었다. 자연스럽지만 당연하지는 않은 이벤트, 행복하지만 두려운 일상,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 것도 보장하지는 않는 세계의 단어이기도 했다. 그때 점원이 두 번째 참치를 내왔다.
“와, 너무 좋은 부위다. 많이 주세요. 얘 헤어졌거든요.”
“저 차였어요. 대차게.”
우리도 웃고, 점원도 웃는 사이에 A의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을까? 전에 없이 슬픈 날도 배는 고프고, 비참한 기분일 때도 맛있는 음식은 마냥 맛있다. 이건 축복일까 아이러니일까? 누군가와 헤어져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됐을 땐, 언제나 함께일 수 있는 좋은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보다 좋은 게 없었다. 주눅든 ‘전 남친’보다 몇 배는 오래갈 인연, 어쨌든 삶은 이어진다는 사실만이 중요해졌다. 이번엔 C가 말했다.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와는 작년 말에 헤어진 친구였다.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 생겼어. 하하, 축하해줘.”
“와! 정말? 축하해! 누구야? 우리가 아는 사람이야? 불러, 지금. 같이 참치 먹자고 그래.”
“그래, 불러. 누군데? 좋아?”
C는 ‘데이트’라는 말이 새삼 좋아졌다고, 소주를 반 잔만 마시면서 말했다. 주중에는 정신없이 일하고, 같이 식사를 할 수는 있어도 일찍 헤어져야 하고, 주말에 어디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행복하다고. 어렸을 때처럼 두근대고 설레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게 매일매일 많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일은 평일에 열심히 했다. 주말에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다. 아주 평온하지만 분명한 쾌락. 다른 어떤 것보다 자극적인 일상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어떤 만남과도 다른 감정을 이런식으로 느끼게 될 줄은 몰랐고, C는 말했다.
“야, 근데 정말 신기하다.”
“뭐가?”
“나는 대차게 헤어지고, 너는 결혼하고, 너는 다시 연애를 시작했잖아.”
“진짜 관계의 모든 스펙트럼이 이 테이블 위에 다 있다, 야.”
“나, 다시 연애할 수 있을까?”
“당연하지, 너한테 주눅든다는 사람만 만나지마. 일단 좀 쉬어. 너 걔 너무 오래 만났어. 고생했어.좋잖아, 혼자 있는 거! 막 즐겨. 다 해.”
우리는 마지막 잔을 비우면서 크게 웃었다. 소주 두 병 반을 알차게 나눠 마신 참이었다. 적당히 취기가 올랐을 땐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몇 년 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수순이었다. 셋 다 주당이니까, 아마 2차도 3차도 소주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내일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 각자 있었고, 깊은 얘길 나누는데 굳이 취기를 빌릴 사이도 아니었다.
세 시간 남짓. 맛있는 음식, 적당한 술, 솔직하고 풍성한 이야기와 웃음이 우릴 가득 채웠던 시간이었다. 내일은 내일의 시간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에서 나왔을 때, 골목 맞은에 있는 작은 베이커리에선 크리스마스 캐롤이 나오고 있었다. 자주 슬프고 매일 두렵지만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정우성
사진 영화 <청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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