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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THU

SCODE #23

섹스 하지 않을 자유

연애를 하면 섹스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걸까?



“연애를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잖아. 섹스 말야. 특히 남자들은 맡겨놓은 거 찾는 사람처럼 군다니까.”
강렬한 이끌림으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이 되고 육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친밀해지는 연애도 있지만, 연애를 하면서도 천천히 서로를 알아간다든지 성적인 매력은 느끼지 못하지만 상대의 다른 면모를 보고 시작되는 관계도 있다. 상대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섹스는 언젠가 하긴 해야 하는 과제처럼 느껴진다. 원하지 않는데 연인이니까 섹스를 하는 게 맞는 것일까? 섹스는 관계의 의무인 걸까?
A는 남자 쪽의 오랜 구애로 연애를 시작했다. 친구로 지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친숙하고 편안한 사람인데다 그토록 오랫동안 자기만 바라본 시간에 감복하여 사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이성으로서의 끌림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남자는 그 동안 A의 연애 상담을 해주며 남자 심리에 대해서 조언도 해주고, A가 서슴없이 무슨 얘기든 할 수 있는 사이였던 만큼 A의 섹스라이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여자인 내가 성욕을 가지고 있고, 섹스를 좋아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랑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구는 별개의 사실이잖아. 지금도 나는 성욕을 느껴. 섹스하고 싶다고 생각해. 하면 좋은 거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하고 싶은 건 아니잖아.”
남자친구가 아무나는 아니지만, A가 그렇게 말한 의미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귀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성적 욕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상대도 있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익숙해지고 오래된 관계에서 섹스의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핑계를 댄다. 그 핑계의 근거로 ‘원래 남자는’ 이라는 말을 쓴다. 그렇게 진화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입장을 내세우면서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여자들의 본능에 대해서는 쉽게 간과한다. 진화생물학 관련 서적을 오직 1장만 읽은 사람처럼 말이다. 여자들이 첫 섹스를 유예하는 이유에 대해서 ‘부모투자이론’ 같은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하루에도 수십 억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는 남자와 한 달에 한 번 한 개의 난자를 만드는 여자, 그렇게 친다면 당연히 섹스 상대를 재고 고르고 따지게 되는 것은 여자의 본능으로 인정받아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 부분은 지워버리고 남자의 본능만 소리 높여 주장한다. 


파트너에게 더 이상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해서 섹스를 하지 않는 남자는 문제되지 않지만, 같은이유로 섹스를 해주지 않는 여자는 ‘쌍년’ 취급을 받게 된다. 남자가 섹스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성적 욕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상대 여성이 문제이지만, 여자가 섹스하지 않으려고 할 때는 항상 그 여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결국 마음의 소리를 못 감추고 나한테 내뱉더라. 자기를 왜 그렇게 힘들게 하냐며, 섹스를 안 해주고 있으면 계속 여왕처럼 굴 수 있을 것 같냐며. 다른 남자들이랑은 쉽게 섹스하면서 자기랑 자는 건 뭐가 그렇게 어렵냐며 갑자기 나를 비난하더라구.”
A는 남자가 고백을 할 때마다 좋은 친구로 지내고 싶다, 남자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거절의 이유를 항상 말해주었다. 그때마다 남자는 자신에게도 기회를 달라, 사귀게 되면 다르게 느껴질 거다 같은 이유로 A에게 매달렸다. A는 남자가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껏 자기 곁에 머물면서 친절하고 상냥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그 순간 서로의 몸을 닿을 때마다 느껴지던 긴장감이나 불편함의 정체도 알 것 같았다. 남자의 조바심. 이기적인 욕망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던 것이다.
“그 순간 뒤통수를 빡 하고 맞은 것 같더라구. 그 인간이 내 곁에 있었던 건 결국 나랑 한 번 해보려 그랬던 거란 생각이 들더라. 사귀게 되면 자기한테도 그런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나도 내 마음의 소리를 내뱉고 싶었는데, 욕구불만으로 화가 잔뜩 난 사람을 괜히 자극했다가 폭력이라도 휘두르면 어쩌나 싶어서 정말 도망치듯 나왔다니까.”
음습한 욕망이 결국 욕구불만으로 표출되고 만 덕분에 A는 걸러내야 할 남자를 찾은 셈이었다. 여자도 남자처럼 성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한 번 해보는 섹스에 인생을 다 걸 필요도 없고, 혹은 사랑 없이도 섹스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며 사적 관계 안에 여자의 야망을 구속시키려는 사회에 대항하는 것과 별개로 동시에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을 자유, 그 권리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가 원치 않을 것을 자신은 하고 싶다는 이유로 억지로 요구할 수는 없다. 여자에게는 섹스를 하지 않을 자유와 거절할 권리가 있다. 


여자의 No는 No. 왜 그렇게들 말 귀를 못 알아 듣는 것일까? 아니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현정
사진 영화 <다이빙: 그녀에 빠지다>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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