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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7. SAT

CRAZY CREATIVE LOVE

보통이 아닌 연애

연애와 이별에도 창의성을 발휘했던 남자들과의 로맨스. 크리에이티브한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은 예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아니지? 그런 거라면 미안해.” 아니, 이게 무슨 창의적인 헛소리지? 방금 난 데이트를 하던 A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하던 참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만나자는 클로징 멘트를 했건만 그는 철저히 문맥을 파괴했다. 지난 2주간 우리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고, 내가 다른 사람과 밀회를 즐기느라 그의 전화를 무시했던 걸 까맣게 잊은 걸까? 아니면 그는 내가 본인이 아닌 다른 남자에게 빠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나? 하긴, A와의 지난 데이트를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는 다소 실험적이고 자극적인 노래를 주종목으로 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자기애가 강한 남자였다. A와 보내는 시간은 섹스를 제외하면 그가 작업한 음악을 듣거나,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거나, 그의 사이키델릭한 철학을 듣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물론 그의 목소리는 끈적했고 음악은 정확히 내 타입이었다. 하지만 세 시간이 넘어가는 레퍼토리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특히 지루보다는 차라리 조루가 낫다고 주장해 온 내게는 더욱더.
언젠가 미국의 코미디언 도브 다비도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 적 있다. 그는 거의 절규하듯 이렇게 소리 질렀다. “사랑해 본 적 있어? 그게 어떤 심정이냐면, 널 좋아하진 않아. 널 사랑하긴 하지만 그냥 네 존재가 싫다고. 사랑하는데 네 주변에 있을 때의 내가 싫어! 사랑은 마약하는 거랑 똑같아. 아마 사랑해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야. 그런 거 절대 하지 마라. 큰일 난다!” 그건 내 얘기였다. 내가 쌓아온 달콤하고 고단했던 연애사에서 ‘그런 거’는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을 가진 남자’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디자이너, 아티스트, 작가, 뮤지션 그게 뭐든 예술적 기질과 자유를 동반하는 직업을 가진 남자들을 멀리해라! 정신없이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난 어찌나 남자 취향이 확고한지, 진지한 연애뿐 아니라 단순히 스쳐간 남자까지 모두 따져봐도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업을 가진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가운데 8할이 힙합 뮤지션이니, 그냥 취향으로 치부할 수 없는 중독이고 병에 가까웠다.



대체 뭐가 문제지? 10대 시절 언더그라운드 힙합만 들은 것? 그러면서 래퍼와의 연애를 상상한 것? 로망의 실체는 잔혹했다. 노래 속에서 주야장천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은 나쁜 남자 기질은 다분하지만 ‘쿨’하지는 않았으니까(솔직히 말해 찌질했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추상화처럼 그놈의 광활한 우주에는 질서라는 게 없었고, 감정이 어찌나 넘실대는지 함께 있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제법 진지하게 만났던 뮤지션 B는 뜬금없이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 때문에 작업이 안 돼.” 내가 안정감을 주지 못해 일에 집중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정신이 아득해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분명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세상 달콤했던 남자가 10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갑자기 이별을 고할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 건가? 그런 식으로 2년 동안 10번 가까이 이별과 재회를 반복했다. 싸움의 이유도 100만 개, 보통 창의적인 게 아니었다. 다른 뮤지션을 만나고 오는 날엔 더 이상 네가 내 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어떤 날은 너무 사랑해서 혹은 충분히 사랑하지 않아서, 때로는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B와는 2년을 만났다. 사랑이란 그런 거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마지막 이별을 할 땐 서로 부둥켜안고 이틀 동안 울어댔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애석하게도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사진가 그리고 작가와의 연애도 하나같이 순탄치 않았다. 놀랍지도 않지만 패션 디자이너들은 하나같이 스타일과 브랜드를 평가하길 좋아했다. 옷이 곧 직업이니 그냥 떠드는 건 백번 이해한다 해도, 만난 지 2초 만에 “이거 드리스 반 노튼이야?”라는 질문을 받거나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재킷의 라벨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예술가는 또 어떤가? 그런 부류는 우수에 차 있었거나 공격적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햇살 좋은 날의 데이트조차 서글펐다. 그들은 어딘가 반지하 방의 축축함이 서려 있었으며, 세상 모든 것에 비아냥대는 게 특기였다. 차라리 빈정대는 쪽이 나았다. 가끔 그가 인정하는 작품이라도 찾았을 때는 긴 강의가 시작됐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섹스 칼럼니스트는…. 도대체 그 실력으로 어떻게 칼럼 소재를 찾는 건지 아직도 궁금하다.



물론 그 남자들과의 모든 시간들이 악몽 같은 건 아니다. 친구들이 “왜 안 헤어져?” 혹은 “또 그런 남자야?” 라고 물어오면 그와 취향을 공유하고 확장시킬 수 있으며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시시콜콜한 핑계를 댔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나는 뮤지션 A와 B 덕분에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부터 켄드릭 라마까지 폭넓고 깊은 취향을 자랑하는 플레이리스트를 가질 수 있었고, 패션 디자이너 C로 인해 레플리카 패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하나하나 목격할 수 있었다. 또 사진작가인 D가 아니었더라면 베를린 출신의 아티스트들과 지금처럼 친구로 지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솔직하게 왜 크리에이티브한 남자에게 그토록 매력을 느꼈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면 캐릭터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만화 <슬램 덩크>의 ‘서태웅’ 같은 남자들이었다. 소녀 취향을 자극하는 신비한 캐릭터. 머릿속엔 농구밖에 없어서 여주인공이나 여타 다른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그런 남자. 마찬가지로 그들은 음악, 예술, 패션 그리고 본인으로 가득 차 있어 타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윈 없어 보이는 존재들이었다. 비밀스런 그만의 세계를 조금씩 벗겨낼 때마다 어쩌면 영감의 대상이 내가 될 수 있고, 이토록 특별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과 가장 은밀한 표정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짜릿한 쾌감은 오르가슴과는 비교가 안 됐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내 안에는 뮤즈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서른 넘어서 격정 로맨스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적인 연애에 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금은 현실 감각과 이상을 적당한 비율로 갖춘 건실한 건축가를 만나 나름 안정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런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넌 크리에이티브한 기질의 사람과 연애해 본 적 있어? 어땠어? 힘들었어?”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 그게 너야.” 그리고 그 연애가 힘들었냐는 질문에는 침묵으로 답했다.

CREDIT

글 김희민
에디터 김영재
아트 정혜림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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