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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SUN

INBETWEEN #5

혼자 있고 싶다

같이 있어서 좋은 시간이 있었지만, 어느정도는 분명히 혼자여야 했다


일상과 일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방점은 ‘점점 더’에 찍혀야 옳다. 원래도 애매한 경계였다. 퇴근하면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걸 그대로 쏟아내야 유지할 수 있는 성격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10년 이상 기자로 살았던 그때의 일상과도 결이 달랐다. 월간지 마감에는 리듬이 있다. 한 달 마감이 끝나면 하루이틀은 충전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리듬을 찾고 있는 중이다. 우리보다 1년 정도 먼저 시작한 어떤 미디어 스타트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쉬는 날? 없을걸요, 아마? 친구? 점점 없어질 걸요? 여행? 꿈이 크시네… 아! 돈은 좀 모일 수도 있어요. 쓸 시간이 없거든. 헤헷.”


친구와 내가 회사를 만들고 사무실에 입주한 뒤, 약 한 달 반정도가 지났을 때 들었던 조언이었다. 그땐 그러려니 했다. ‘바쁘면 좋은 거죠’ 말하면서 적당히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일이 있어야 살아 남을 수 있고, 살아 남아야 증명할 수 있는 게 미디어 스타트업의 숙명 같은 거니까. 무리는 스타트업의 필요조건 같았다. 각오가 돼 있었다. 휴식은 이미 요원했다. 사무실에서 저녁과 밤, 자정과 새벽을 맞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니 같이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필연이었다.
안 그래도 자주 만나던 사이였다.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잦으면 세 번도 어울렸다. 집도 멀지 않았다. 늘 어울리는 동네에서 질리지도 않고 놀았다. 같이 여행을 갔을 때도 문제 없었다. 둘이 떠나는 여행은 일상을 나누는 연습 같은 거니까, 같이 회사를 차려서 보내는 시간 같은 건 괜찮을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무서운 거였다. 여행은 일상이 아니었다. 연습과 실전은 아주 다른 세계였다.


우리에겐 두 가지 종류의 대화가 있었다. 일상과 일을 위한 대화가 달랐다. 일을 위한 대화는 주로 마이크 앞에서 했다. 오디오 콘텐츠 생산을 위한 일종의 노동이었다. 우리는 대본도 없이 하루에 몇 꼭지씩 신나게 녹음했다. 원래는 놀이였던 대화의 리듬이었다. 술잔을 앞에 두고 어울리던 밤마다 세상 유쾌하게 웃으면서 나누던 것이었다. 그때의 웃음은 아주 가끔 ‘하하하’, 대부분은 ‘깔깔깔’에 가까웠다. 매우 가볍고 유쾌한 소리. 문제는 일상을 위한 대화에서 생겼다.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던 때의 대화를 일의 영역에 놓았더니 일상의 영역에서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일상의 대화에 공백이 생겼다. 그 자리를 채운 건 침묵이 아니었다. 다시 일이었다. 우리는 술잔을 앞에 두고 일과 사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나누는 생각이 대화의 대부분이었다. 아직 설익은 아이디어, 벌어지지 않은 일, 가정과 예측을 기반으로 하는 주장, 매우 추상적인 ‘방향’에 대한 생각까지. 일이 일상을 점령하기 시작한 거였다. 술잔 앞에서 마땅히 해소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는 순간이었다. 어떤 날은 미로 같았다. 출구가 안 보였다.


“결혼? 좋아, 되게 좋아. 그런데 이런 건 있어.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자친구랑 아침부터 우리집에서 노는 거야. 같이 밥도 만들어 먹고 TV도 보고. 아주 여유로운 시간을 같이 보내는 거지.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어. 술도 한 잔 했어. 좋은 시간을 보내고 또 보냈어. 그런데 갈 시간이 돼도 집에 안 가는 거야.”
“누가? 여자친구가?”
“응, 혹은 내가. 이제 둘 다 재밌게 놀았고 헤어질 시간인데 집에 안 가는 거야. 우린 부부가 됐으니까 떨어질 일이 없는 거야. 그게 결혼의 비극이자 아름다움이랄까.”
언젠가 결혼 생활에 대해 털어놓던 친구 말이 떠올랐다. 친구에게 결혼이란 그렇게 즐거웠던 연애가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온 순간의 혼란이었다. 두 사람이 늘 같은 공간에 있는 일에 대한 아주 갑작스러운 무게감이었다. 행복했던 연애와 지루한 일상이 악수하는 순간의 당혹이기도 했다. 연애가 일상이 되니까 권태가 시작됐다. 친구가 이어 말했다. 갈등이 생기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평범해지는 순간 무례가 시작됐다고.
“처음엔 많이 싸웠어. 연애할 때랑 많이 다르니까. 연애는 두 사람이 서로 끌어안기 위한 시간이잖아? 결혼은 균형인 것 같아. 서로 끌어당기는 시간이 있었다면, 놓아줘야 하는 시간도 반드시 필요한 거지. 그걸 깨닫기 전에는 좀 힘들었던 것 같아. 둘 중 한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할 때 누군가는 섭섭하게 마련이니까.”
일상을 나누는 관계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건 대화의 예의와 효율이었다. 둘 만 있는 우리 회사도마찬가지였다. 놀이를 위한 대화는 전부를 농담으로 채워도 괜찮았다. 하지만 일상 속에 있는 두 사람의 관계는 할 말과 안 할 말, 해선 안 되는 말과 해도 되는 말 위에서 비틀거리는 외줄타기 같았다. 안 해도 되는 말을 들을 땐 어김없이 지쳤다. 지치면 삐끗했다. 해선 안 되는 말을 했을 땐 그대로 상처였다. 물리적으로 가까워진 사이에선 실수가 늘었다. 어쩌면, 약간의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라는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된다는 얘긴 아닌 것 같아. 소파에 같이 앉아있어도 독립적일 수 있잖아? 그런 시간을 서로 존중하는 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 우리는.”
어떤 관계는 말이 전부다. 말은 태도에서 나오는 거니까, 같이 보내는 시간의 총량이 늘어날수록 엄격한 예의의 기준이 중요해졌다. 가까워질수록 놓아주는 일, 기대와 구속을 구분하는 지혜, 편해질수록 서로 귀한 사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겸손 같은 것. 그야말로 두 사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좋은 관계의 기본이었다. 그게 본질이었다. 사랑이나 우정, 혹은 그를 바탕으로 하는 두 사람의 비즈니스에서라도.

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정우성
사진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틸 이미지컷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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