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라이프 > 데이트 가이드

2018.05.19. SAT

INBETWEEN #3

싸움의 기술

격투가에게도, 친구 사이에도 기술은 필요하다


친구와 회사를 차려 일을 한다는 건 결혼과 같고, 싸움이야말로 일상을 나눠 갖는 사이의 핵심 요소였다. 그걸 하루하루 깨달았다. 어제의 싸움이 다르고 오늘의 싸움이 또 달랐다. 치고 받고 싸울 나이는 아니지만 말다툼에 지고 싶지 않은 (불필요한) 자존 정도는 키워둔 나이. 가끔은 그걸 지키는게 최우선인 적도 있었다. 넘어서는 안 되는 그 선 위에서 아찔했던 적도 없지 않았다. 

“회사를 같이 차리면, 아마 그 친구랑 많이 싸울 거예요. 잘 싸워야 해, 그럴 때.”
“하하, 당연히 많이 싸우겠죠”라고, 당연한 듯 받아들이던 그땐 이 골치 아픈 싸움의 실체를 몰랐다.
일은 괜찮았다. 둘 다 각자의 영역에서 10년 이상의 업력이 있었다. 베테랑이라면 베테랑이었다. 각자의 기준이 확실했고, 그 기준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도 엄격했다. 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서로 있었다. 그러니 사업상의 결정도 전에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성과도 생각보다 빠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치지 않고 꾸준히만 할 수 있다면, 우린 썩 괜찮은 회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아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넌 지금 왜 화를 내는 거니?”
내가 물었다. 논의 중의 한 마디 혹은 태도 때문에 친구의 표정이 바뀐 때였다. 이 질문을 하기 전에는 약 3분의 침묵이 있었다. 침묵 전에는 약 5분의 다툼이 있었다. 나와 친구가 냈던 목소리의 볼륨도 꽤 컸다.
감정이 대치하는 순간의 그 엄청난 에너지 소모. 아직 아이였을 땐 머리보다 감정이 먼저였다. 그렇게 맘껏, 엉엉 울고 난 다음에는 몸이 반응했다. 꿀처럼 잠들었다. 그 노곤함이 그저 피로였다는 건 어른의 나이가 다 돼서야 알았다. 이젠 아무 때나 울 수도 없고, 혹시 울었다 해도 꿀처럼 잠들 수도 없다. 마음대로 살면 안 되는 게 어른이었다. 대신 감정 소모를 최소화해야 했다. 싸움 대신 대화를 시작해야 했다. 기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생각해보면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우리의 싸움은 말 한 마디나 표정 하나, 혹은 태도에서 비롯됐다. 별 것 아닌 상태로 시작해 그게 전부인 것 같은 감정이 됐다. 그럴 땐 둘 다 경주마 같았다. 서로의 감정을 한 번이라도 할퀴려고 공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이번엔 5분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지치면 침묵했다. 그게 3분이었다.
“아니, 나는 네가 그때…”
질문했더니 대화가 시작됐다. 하지만 아직 외줄타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어쨌든 서로의 감정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랬구나, 근데 나는 그때…”
이렇게 약 5분을 더 나눈 대화의 끝은 서로의 사과였다. “내가 미안했다”와 “나도 미안했다”의 마무리. 그렇다고 마음이 다 풀린 것도 아니었겠지만, 모든 다툼에는 평화의 실마리가 필요하니까, 싸움의 끝은 사과여야 한다. 일상을 나누는 성인의 싸움일 땐 더 그렇다. 그 역시 일종의 책임감이라고 믿는다.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는 성격이었다. 상대가 화를 낼 때도 그랬다. 목소리는 낮게, 어쨌든 침착하려고 갖은 애를 썼다. 다툴 때도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분쟁의 줄이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반응은 그게 아니었다. 그런 태도는 해결책을 찾는데 큰 도움이 안 됐다. 때로는 화를 더 돋구기도 했다. 내가 침착하니까 상대의 화는 갈 길을 잃고 더 커지기만 했다. ‘나는 이만큼 화가 났는데 넌 뭐 그렇게 쿨하냐’는 거였다.
하지만 조용하려고 애쓰는 동안 내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 침착하다고 화가 안 난 것은 아니고,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해서 상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못한 말, 했어야 하는 말, 마음 속에 있었던 응어리가 풀리지 않고 쌓이기만 했다. 마음은 그런 식으로 무거워지는 법이다. 무거워진 마음은 곧 닫혔다. 침착하게 닫은 문은 웬만해선 다시 열리지 않았다. 화가 나서 크게 한 번 내지르는 소리보다, 영원히 닫혀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더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
싸움도 주파수의 문제일까? 맞추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것, 정확하지 않으면 잡음만 나오는 라디오 같은 상태. 무턱대고 화만 내면서 ‘내가 원래 솔직한 성격’이라거나 ‘걔가 좀 욱하는 게 있어’라는 말은 이제 안 믿는다. 이제 변명과 성품 정도는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상대를 휴지통으로 여기는 사람만이 무턱대고 화를 낸다. 배려 없는 솔직함, 앞뒤 모르고 지르는 성격 같은 건 그냥 폭력이다. 그러면서도 사과 없이 떳떳하다. 혹은 사과 후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그런 상대는 떠나도 좋다. 화는 감정을 내다 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고, 우리는 누구의 휴지통이 되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
친구와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나 다툴 것이다. 그럴 땐 서로의 불륨이 커지는 걸 느끼면서 화를 돋구기도 하겠지. 하지만 침묵하면서 쌓는 오해보단 다툼이 났다. 최소한 싸움이 시작됐을 때, ‘아,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는 싶다. 그래야 진짜 원인과 감정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객관화야말로 싸움의 기술, 진짜 배려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사무실에선 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성장은 성과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CREDIT

에디터 김은정
글 정우성
사진 정우성,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 스틸 이미지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디지털
참고하세요!

저작권법에 의거, 엘르온라인 모든 콘텐츠의 무단전재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타 홈페이지와 타 블로그 및 게시판 등에 불법 게재시 불이익에 대해 책임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