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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5. MON

TRUE SEXUAL PLEASURE

그대 눈을 떠라

새로운 성 혁명의 기운이 완연하다. 입을 꾹 닫고 있던 여성들이 섹슈얼리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는 케이트 데블린은 또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바로 섹스 로봇 전문가. 케이트는 ‘섹스 로봇을 위한 변론(In Defence of Sex Robots)’이라는 에세이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테드엑스(TEDx)에서 섹스 로봇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예측하는 미래는 이렇다. ‘오전 7시 어떤 떨림이 아침잠을 깨운다. 알람의 진원은 시계나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건 작은 문어처럼 생긴 섹스 토이. 여러 개의 촉수가 목덜미와 움푹 파인 등줄기에 집중한다. 이윽고 억새풀을 흔드는 바람처럼 온몸 구석구석을 어루만진다. 특수한 기능의 ‘깃털 이불’도 있다. 짓궂게 손끝부터 발끝까지 관능적인 진동을 가한다. 싫지 않은 느낌이 밤새 잠들어 있던 감각을 깨운다.’ 이 에피소드의 요점은 섹스 로봇마저 인간을 닮을 필요가 없다는 거다. 이미 ‘섹스돌’ ‘러브돌’이라고 불리는 실리콘 인형들이 넘쳐난다. 케이트는 누구나 편하게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섹스 로봇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왜 모든 섹스 로봇이 남성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만든 실리콘 인형과 똑같이 생겨야 하나요? 20개의 팔과 여러 개의 촉수를 가지면 안 되나요?”


1960년대를 들끓게 만든 성 혁명의 주체는 남성이었다. ‘여성해방’의 촉진제 역할을 한 경구피임약? 남자의 책임을 면제시키는 도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시기에는 동성애자 해방운동이 태동하고 혼전 섹스를 둘러싼 논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여성의 오르가슴에 대해 심도 깊은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당시 상당수의 여자들은 자신이 섹슈얼리티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자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질문도 일찍 나왔을 거다. “클리토리스가 정확히 어디에 있나요?”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과학기술이 새로운 성 혁명을 촉발한 가운데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섹슈얼리티를 말하는 것을 수줍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해 전 세계의 여성들이 거리로 나선 ‘위민스 마치(Women’s March)’의 화두 중 하나는 고양이 모양의 털모자였다. 참가자들은 여성의 성기와 고양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 ‘Pussy Hat’을 쓰고 행진했다. 여성 비하와 성차별에 항의하는 의미였다. 미국의 아티스트 소피아 월러스가 다년간 진행한 멀티 미디어 프로젝트 ‘Cliteracy, 100 Natural Laws’도 인상적이다. 그녀는 클리토리스가 과연 무엇인지 제대로 된 정보를 알리기 위해 팔을 걷었다. ‘클리토리스는 버튼이 아니라 빙산이다’ ‘클리토리스는 페니스보다 신경말단이 2~3배 더 분포돼 있다’ 소피아가 만든 타이포그래피 아트워크에 담긴 메시지들이다. 덕분에 남성의 페니스가 자전거라면, 여성의 클리토니스는 람보르기니 수준으로 민감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그럼 ‘OMGYes’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려나. 엠마 와슨이 가입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사이트다. 이곳에선 가감 없이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이야기한다. 또 <킨제이 보고서>가 간과한, 여성의 성적 즐거움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오르가슴을 위한 다양한 테크닉까지 포함해서. 이는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진 섹슈얼리티 연구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엠마 와슨은 OMGYes 사이트를 정기 구독하고 있다고 밝히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지지했다. OMGYes는 리디아 다닐러와 로브 퍼킨스가 공동 창립했다. 리디아는 레즈비언이고 로브는 이성애자 남성이다. 더없이 이상적인 조합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여성의 신체와 성에 대한 담론이 생산될 수 있을 테니.




포르노 시장에도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다. 페미니즘 포르노가 시장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남성을 위한, 남성 위주의 노골적인 포르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해요.” 스웨덴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페미니즘 포르노를 만드는 에리카 러스트의 주장이다. 그녀가 제작하는 포르노는 기존 포르노 사이트에서 취급하는 것들과는 당연히 다르다. 섹스 장면에서 여성은 남성의 성욕을 위한 도구나 대상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행위 주체자로서 쾌락을 느낀다. 여자의 시각으로, 여자들이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상상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 에리카가 밀어붙이는 화두이자 쟁점이다. “오랫동안 포르노는 여자를 섹스 로봇처럼 묘사했어요. 남성들이 성적 판타지를 지배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원하는 환상에 귀 기울일 차례예요.” 에리카의 영화는 크라우딩 펀드로 자금을 모아 제작된다. 투자자들의 남녀 성비는 6:4 정도다. 그녀는 이 비율이 곧 균형을 이룰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 행선지는 섹스 토이 산업이다. 폴리 로드리게즈가 운영하는 온라인 숍 ‘언바운드 박스(Unbound Box)’의 주 고객은 ‘오르가즈모넛(Orgasmonaut)’이다. 오르가슴(Orgasm)과 ‘우주비행사’를 뜻하는 애스트로넛(Astronaut)을 합친 말이다. 폴리는 더 나은 만족감을 찾으려는 여자들에게 바른 길을 안내하기 위해 언바운드 박스를 시작했다. 이곳에선 여성 구독자에게 섹스 토이와 BDSM 제품을 담은 상자를 배달한다. 화장품 샘플을 담아 정기적으로 보내주는 버치 박스의 성인용품 버전인 셈이다. “우리는 오르가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인식해야 해요.” 폴리는 자신의 몸을 잘 알아야 원하는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해방(Unbound)’이란 이름이 붙은 이 은밀하고 괴이한 상자를 열면서 고객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크리스마스 선물을 뜯는 아이의 설렘? 롤러코스터에 탑승했을 때 느껴지는 긴장감과 짜릿함? 폴리는 뉴욕 기반의 커뮤니티 ‘위민 오브 섹스 테크(Women of Sex Tech)’를 이끄는 수장이기도 하다. 이곳은 섹스 테크 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창업자와 아티스트, 엔지니어를 위해 기금을 마련한다. 섹스 테크 제품을 판매한 수익금 일부는 여성의 성 건강을 위한 캠페인에 기부한다. 하이테크 기술과 결합하면서 섹스 토이는 장난감 수준을 과감하게 뛰어넘었다. 인공지능 기술과 스마트폰의 발전에 힘입어 300억 달러 규모의 섹스 테크 시장이 열렸다. 미래적인 디자인의 주얼리처럼 생긴 ‘위스프(Wisp)’는 여성을 위한 웨어러블 섹스 토이다. 신체 부위 어디든 붙이면 연인이 애무하듯 감미로운 진동과 자극을 가한다. 스스로 사용자의 맥박을 측정해 강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침대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 무지한 남자보다 훨씬 젠틀하다. ‘미스터리바이브(MysteryVibe)’의 공동창립자인 스테파니 알리스는 여자와 남자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크레센도(Crescendo)’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성별 상관없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구부리거나 펴서 사용자 몸에 맞춰 모양을 변형하면 된다. 스마트폰 앱으로 자신이 원하는 진동 패턴을 설정할 수도 있다. 남녀를 넘어 생물학적 성별의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섹스 토이를 만드는 것. 스테파니 알리스의 지향점이다. “세상은 지금 특정 성별로 자신을 규정하지 않는 젠더 플루이드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성의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모두를 위한 쾌락이 필요해요.”


섹스의 미래는 손을 떠난 주사위와 같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1차 성 혁명이 세상을 후끈하게 만들고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아 오르가슴의 시대가 도래했을 정도다. 현대 여성들은 커피나 요가를 이야기하듯 섹슈얼리티에 대해 가감 없고 당연하게 말한다. 그 이면에는 여성들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쾌락을 찾으려는 욕망, 남성 중심의 일방통행식 섹스 라이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투쟁이 있다. 섹스 웰니스(Sex Wellness)는 더 이상 남성들만의 이슈가 아니다. 욕망을 가진 성적 주체자로서 여성들의 건강한 삶, 실존적 삶을 위해서도 필수 요소다. 문어 모양의 섹스 로봇에 대해서는 당분간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지만.

CREDIT

글 STEPHANIE THEOBALD
에디터 김영재
사진 GETTYIMAGESKOREA
아트디자인 김란
번역 권태경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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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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