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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8. MON

My Love Diary

프로 연애러의 회고록

‘남자가 꼬이는’ 운명을 타고 태어나, 쉼 없이, 신나게 연애하고 사랑했던 한 여자. 39세, 마침내 결혼이란 마침표를 결정짓고 인생의 지난 연애를 회고해봤다


도대체 연애란 게 뭘까? 첫사랑? 첫 남자? 한 백과사전에서 이렇게 요약해 주었다. 연애란 ‘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자연스러운 애정’. 이런 기준이라면 내 연애 상대는 7명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나는 스무 살에 만난 첫 번째 남자친구를 포함해 약 20년 동안 연애를 쉬어본 적이 없다. 3년 이상 만난 애인만 4명, 1년 안팎으로 만난 남자친구가 2명, 연애와 연애 사이에는 늘 ‘썸’이 있었는데, 하나하나 다 기억나진 않는다. 지인의 지인부터 지하철, 술집, 커피숍, 클럽에서 만난 사람, 심지어 해외 리조트에서 외국인이 말을 걸어온 경우도 있었으니까. 이쯤 되면 내 외모가 엄청나게 궁금하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극히 평범한 외모를 지녔다(내 방식대로 꾸미는 건 좋아하는 편이다). 섹시하다거나 먼저 들이대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주변에 남자들이 잘 꼬인다고 할까? 이런 게 소위 도화살, 팔자가 아닌가 싶다. 연애를 잘하는 여자들이 모두 연예인 뺨치는 외모와 애교로 무장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보다 개인적 동기가 필수이고 다음은 본인이 가진 장점을 남자에게 어떻게 어필하느냐에 달려 있다. 내 경우 연애 초기의 동기는 단연코 ‘호기심’이었다. 홍대의 낭만과 자유분방함에 흠뻑 빠져들었던 스무 살에 만난 첫 연애 상대는 장발의 미소년 기타리스트. 처음 봤을 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비니를 눌러쓰고 전자기타 케이스를 든 채 클럽 입구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나는 그가 몹시 궁금했다. 지인을 통해 우연히 만났고 서로 첫눈에 반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우리는 사소한 것에 웃고 울며 3년을 보냈고, 잊지 못할 사건사고와 함께 질척질척하게 끝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연애 상대는 각각 보컬리스트베이시스트였는데, 나를 위해 쓴 곡을 그가 무대에서 부르기도 하고, 작업실에서 같이 음악을 듣고 밴드 멤버들과 함께 여행도 가고 술도 마시며, 그 자체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홍대 청춘 일기도 끝이 났다.




네 번째 연인은 일을 통해 만난 일곱 살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 업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였던 그는 뛰어난 심미안과 세련된 취향의 소유자였고, 흥미로운 물건이나 이슈에 관한 지식도 풍부했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갖추지 못한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함께 지내는 것이 편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매력 뒤에 숨겨진 까칠하고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면모들이 트러블을 일으켰다. 내 옷이나 물건에 대해 함부로 품평하기 일쑤였고, 본인의 관심사 외에는 종종 무신경한 태도를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을 너무 사랑하는 남자였다. 여자친구인 나보다 훨씬 더. 그와 헤어질 무렵, 나는 아티스트란 인간들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싫어졌다. 남자친구를 고르는 관점도 달라졌다. 호기심 대신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인 연애가 1순위로 떠오른 것. 스타일도 확 바꿨다. 길러오던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다짐했다. 서른을 앞두고 만난 남자친구는 여섯 살 어린 대학생이었다. 일을 통해 만난 그는 185cm의 훤칠한 키에 잘 다져진 근육, 뽀얀 피부, 오뚝한 코가 돋보이는 그야말로 훈훈한 엄친아 스타일. 곱게 자란 외동아들로, 전에 만났던 위태로운 남자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듯한 외모만큼이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는 퇴근 무렵이면 근처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기념일마다 이벤트도 잊지 않았다. 애정 표현에도 거침없어서, 지하철이든 도로든 멀리에서 나를 발견하면 손을 번쩍 들고 뛰어와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잠자리는 당연히 최고. 만난 지 1년 만에 서로 부모님께 인사도 하고 결혼까지 꿈꿨지만, 졸업과 취업이라는 무거운 과제를 놓고 좌절하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직장인 8년 차인 연상의 여자친구는 부담을 더할 뿐이었다. 그의 이별 통보에 나는 대책 없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고 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33세, 결별에 이어 다니던 회사에 변동이 생기면서 입사 10년 만에 이직을 준비했다. 새로운 직장을 찾고 차를 사고 이사를 하면서 인생의 새 장을 준비했다. 머리도 다시 길렀고, 1년 후 연애도 다시 시작했다. 새 일터에서 만난 다부진 체격의 영업사원인 그는 이전에 만난 남자친구들과 180도 다른 스타일. 외모도 생활습관도 사랑하는 방법도 너무 달랐고 처음에는 그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동안의 내 연애 방법이 잘못된 건 아닌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던 시기여서 이번만큼은 ‘나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야지’라는 생각에 적극적인 그의 구애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계획 하에 올바르게 진행시키는 걸 좋아하는 나와 본능적이고 즉흥적인 삶을 사는 그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다. 결국 연애 3개월 만에 삐걱거림을 느끼고 그만 만나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지만, 눈물까지 보이는 그의 진심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나는 점점 지쳐갔고 다툼과 화해가 반복되는 연애를 이어가다가 결국 헤어졌다. 돌이켜보면 미안한 게 너무 많은 연애였다. 많은 30대 싱글녀들이 그러하듯, 당시 나는 결혼 압박감에 많이 시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랑 맞지 않는 사람을 선택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법. 이 연애를 통해 나는 어떤 남자가 나랑 잘 맞고, 내가 어떤 연애를 추구하는지, 행복한 연애가 무엇인지 보다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38세, 참으로 오랜만에 홀로 새해를 맞으며 스스로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다. 혼자여서 외롭거나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고 결혼에 대한 생각도 편해졌다. 내가 만들어놓은 삶이 만족스럽게 느껴졌고, 지금의 자유로움을 만끽하자는 생각이 커졌다. 그렇다고 연애를 놓은 것은 절대 아니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도화살이 낀 여자 아닌가! ‘소개팅 좀 시켜줘’란 주문을 뿌리자마자 8개월 만에 5명의 각기 다른 프로필의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아홉 살 많은 회사 중역부터 동갑내기 스포츠센터 강사, 대기업 홍보팀 과장, 요식업계 사장, 세 살 어린 재력가 집안의 한량까지. 그 사이 ‘썸남’도 있었다. 동네 술집에서 헌팅을 걸어온 27세 연기자 준비생이었는데, 깊은 관계는 아니었어도 자주 만나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부담 없이 지냈다. 내 마음에 완벽히 들어차는 사람은 없었으나 모든 만남이 흥미로웠고 소소한 추억을 남겼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겨울, 내 인생의 마지막 연애 상대가 될지 모를 그가 나타났다.




39세인 나는 요즘 결혼을 준비 중이다. 다채로운 내 연애사를 대강 아는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낸다. “누구랑?”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데?”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뭐야?” 예비신랑은 곱상한 외모를 지닌 열 살 연하의 카페 매니저로, 사귄 지 1년이 안 됐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쌓아온 연애 경험을 통한 충분한 자아 성찰과 연륜에서 비롯된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라 하겠다. 집 앞에 있는 단골 커피숍의 ‘귀여운 알바생’으로 처음 만나게 된 그. 초반에는 통상적인 인사말이 전부였는데, 그가 가게 근처(즉 우리 집 근처이기도 하다)로 이사를 온 게 ‘계기’가 됐다. 한 주에 한 마디씩, 천천히 서로의 마음을 떠보던 중 참을성이 부족한 내가 먼저 제안했다. “동네 지인끼리 시간 날 때 맥주 한잔합시다.” 그렇게 성사된 첫 데이트에서 나는 보기보다 어른스럽고 솔직한 그에게, 그는 생각보다 다정하고 털털한 나에게 반했다. 귀티 나는 외모에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팬클럽을 몰고 다닐 정도로 화려한 10대를 보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지난 10년간 갖은 고생을 다 겪었고 지금은 자기 삶의 방향성을 찾았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내공을 갖춘 그가 대견하면서도 든든했고,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고 사랑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눈에는 많은 나이 차만 눈에 보이겠지만, 우리는 비슷한 취향과 패션, 식습관, 라이프스타일, 말버릇, 유머 감각을 지녔고 소위 말해 속궁합도 최고다. 물론 서로 다르고 부딪치는 점도 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내 인생의 연애사를 돌아보면, 한 가지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옴니버스 영화 같다고 할까. 남자 주인공이 바뀔 때마다 코미디, 액션, 멜로, 판타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 각기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으니까. 이를 통해 남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모든 연애는 제각각 의미가 있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고, 어떤 걸 불편해하고,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행복을 느끼는지 알았고, 마침내 나에게 꼭 맞는 상대를 만났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감히 조언하건대, 연애가 어렵게 느껴지는 여성들이라면 남자를 찾기보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부터 파악해 보길 바란다. 그런 다음 정말 좋아하는 것과 정말 싫어하는 것을 한 가지씩 꼽고, 이 두 가지가 충족되는 사람이라면 일단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만나보자. 지금 당신이 혼자라면, 그건 당신이 운명의 상대를 알아보고 마음을 쏟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탓일 수 있다. 결혼을 앞둔 39세 직장인


CREDIT

에디터 김아름
일러스트 오영은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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