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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3. WED

WORK AND LOVE

골드미스의 연애

지금은 여덟 살 연하남과 썸 타는 중이다. 잘 키워서 내년 안에 결혼하고, 안되면 일이나 하고

 

골드미스의 연애
1990년대 중반은 대한민국에 ‘커리어 우먼’에 대한 환상이 샘솟던 시기였다. TV를 켜면 CF나 트렌디 드라마 속에서 직업을 가진 매력적인 여자들이 등장했다. 비록 캔디 같은 여주인공을 괴롭히거나 연적 관계에 있는 악녀 캐릭터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았으나(<토마토>의 송윤아처럼), 회사를 무대로 한 그녀들의 세련된 패션과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소녀들의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직장 여성’을 꿈꾸며 대학을 다녔고 ‘전문직’ 냄새가 나는 여러 직업을 탐색한 끝에 제법 큰 홍보 마케팅 회사에 입사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낮이고 밤이고 일했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는 주말 야근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 인정받고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기 위해 분투했으나, 세상이 나를 보는 시선은 ‘기 센 여자’ ‘노처녀’란 불명예스러운 딱지였다. 솔직히 업무차 만난 남자들(그중에는 상당한 재력을 갖춘 사업가도 있었다)의 대시가 없지 않았으나 매번 거절했다. 너무 바쁘거나 상대가 눈에 차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런 유혹에 엮이지 않는 게 ‘프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설렁설렁 일하다가 시집 잘 가서 우아한 전업주부로 사는 후배들을 보면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일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서른일곱을 넘기면서 그런 비애와 허무감이 심해져서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축 처져 지냈는데,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러면 난 결혼도 못하고 일도 못하는 사람이 되는 거라고. 무능력한 독신이 되기보단 능력 있는 골드미스(썩 맘에 드는 호칭은 아니지만)로 사는 게 낫지 않겠냐고. 돌아보면, 내가 연애에 대한 ‘니즈’를 크게 느끼지 못했던 건 그만큼 일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처럼 연애도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지만, 본래 인생에서 모든 걸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결혼을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20대 시절에 꿈꾸던 완벽한 남자와 맺어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였다. 치열한 일터에서 산전수전 겪으면서 나 역시 변했다. 더 이상 순종적이고 상냥하고 남자가 원하는 것을 세심히 챙겨주는 그런 여자친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남자를 보는 눈이 변했다. 잘생기고, 돈 많고, 간판 좋은 남자보다 일하는 나를 존중해 주고 배려해 주는 남자, 싱그러운 외모나 애교보다 내 경험과 지성을 더 높이 사줄 그런 남자를 찾게 되었다. 심상정 전 대선후보나 이효리를 보면서, 어떤 여자들은 능력 좋고 잘난 남편을 떠받들며 살기보다 나를 내조해 줄 남자를 만나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은? 제주도 여행을 갔다가 만난 여덟 살 연하남과 ‘썸 타는’ 중이다. 잘 키워서 내년 안에 결혼해 보려고. 안되면 일이나 하고. (41세, 마케터)

CREDIT

에디터 김아름
사진 다음 무비
디자인 오주희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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