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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2. SUN

Asexuality

섹스보다 허그

육체적 관계를 맺어야만 사랑의 모닥불이 피어나는 것일까. 사랑의 조건이 다양해지고 있다


6년 전 그와 나는 퀴퀴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상실감에 젖은 몸에 짓눌린 침대의 가운데는 푹 꺼져 있었고 우리의 관계 모드도 완전히 꺼진 상태였다. 먼지를 털 듯 관계의 전원을 차단한 건 내 쪽이었다. 남자친구였던 그와는 4개월을 만났다. 고백하건대 서로의 집을 오가는 사이였지만 단 한 번도 섹스를 한 적은 없었다. 방어를 쳤던 것 역시 나였다. 목근처럼 단단한 그의 팔이 나를 꼭 끌어안거나 입을 맞추는 느낌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의 혀가 입 안을 헤집고 다니자 역겨운 기분이 들었다. 스킨십이 결정적인 궤도에 오를 때면 불안과 두려움이 내장을 터뜨릴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라 여겼다. 이후로도 그를 끌어안았다가 밀어내는 일이 시계추처럼 반복되었다. 결국 난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는 무성애자였고 이를 정체화하는 순간 그가 떠날 거란 사실을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무성애자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타인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한다. 쉽게 풀어 설명하면 잘 차려진 만찬을 눈앞에 두고도 식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무성애라는 개념은 최근 미국의 무성애자 커뮤니티인 에이븐(AVEN; Asexual Visibility and Education Network)이 활동 보폭을 넓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우리는 고장 난 인간이 아니다.’ 에이븐을 창립한 데이비드 제이의 주장을 따라 이 단체의 회원들은 자신들이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무성애라는 단어가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된 건 캐나다 브록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앤서니 보개트가 2004년 발표한 논문을 통해서다. 논문의 요지는 전 인구의 약 1%가 무성애자이며 이 중 70%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무성애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데다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무성애자의 비율은 더 높을 수 있다. 남자, 여자로 이분화된 고정된 성 관념을 해체한 젠더 플루이드(Gender Fluid)가 1990년대 이후 출생한 Z세대를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건 이런 가능성을 더한다. 


반면에 현대 사회는 모두가 섹스를 원한다고 도식화하고 있다. 원더브라의 ‘헬로 보이즈’ 캠페인을 비롯해 다이어트 콜라, 크리스챤 루부탱의 슈즈, 킴 카다시언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섹스어필이 넘쳐난다. 욕망이 미덕으로 통용되는 시대, 무성애는 단어부터 도발적이다. 이성애자가 주체인 문화 속에서 무성애자는 철저히 타자로 내몰리게 된다. 무성애는 독신주의, 금욕주의와는 다르다. 혼자가 되고 섹스를 멀리하는 건 선택의 영역이지만 무성애자는 그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치료해야 할 대상인 건 더욱 아니다. 33살의 수학자 마이클은 2009년 에이븐에 가입했다. 그에게 무성애란 지속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끼는 빈도가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애자라 해도 모든 상대에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무성애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을 뿐이죠. 이 역시도 동성애와 이성애와 같은 개인의 성적 취향이지, 장애나 질환은 아니에요.” 


무성애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연애를 원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모르고 하는 말이다. 무성애자들 중에는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지만 감정적 이끌림을 느끼는 경우다. 보통의 커플처럼 키스를 나누고 포옹을 하며 손을 잡고 다닌다. 다만 성관계를 사랑의 필수조건으로 여기지 않는다.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사라의 연애가 그렇다. 그녀는 무성애자가 아닌 남자친구와 섹스가 결여된 관계 속에서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좋아하는 남자가 버섯을 즐겨 먹는다고 생각해 봐요. 그를 위해 눈 딱 감고 버섯이 든 리소토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제겐 섹스가 그래요. 가끔 남자친구를 위해 오럴 섹스를 하곤 해요. 저로서는 나름 최선의 타협이죠.” 사라는 18세가 됐을 때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달았다. 성교육 수업에 친구들은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고 성적 농담에 희희낙락했지만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그 당시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무성애에 관한 정보를 찾으려 했지만 도움 되는 자료는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성 지향성을 고민해야 했고 3년 전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어느 누구와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섹스라는 행위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그녀는 “넌 도대체 왜 섹스를 안 해?”라는 질타보다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라”는 사회적 통념에 질색한다. “섹스는 제 삶의 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해요.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남자친구와 저를 동정하는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우리는 다른 커플처럼 갈등을 겪고 다투기도 하고 서로를 사랑해요. 그가 포르노를 본다는 걸 알지만 불쾌하지 않아요. 저를 이해해 주는 것처럼 그의 취향을 존중해요.”


무성애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극소수다.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이해가 현저하게 적다. 무성애자를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와퍼드 출신의 정치학도 마리아 무니르를 통해 에이븐의 멤버인 조지 노먼을 소개받았다. 그는 22세의 학생으로 2년 전 커밍아웃했다. “섹스에 관심이 있는 척 포장하고 싶지 않았어요. 19세 때 처음 무성애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이게 바로 제 정체성이라는 걸 확신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일 수 있지만 제 삶에서는 중요한 부분이죠.”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 공개적으로 그 사실을 공표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성 지향성을 깨닫지 못한 채 혼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어요. 스스로가 정상에서 동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의 용기를 격려하고 응원해 줬어요.” 


파티 플래너인 제시는 자신이 무성애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가슴이 커 남자들의 시선에 민감했어요. 저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죠. 그래서 가슴을 감추기 위해 팔짱을 낀 채로 다녔어요. 여전히 제 공간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게 꺼려져요. 일할 땐 사람들 앞에서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쓰지만 불안함을 떨칠 수 없어요.” 그녀가 성 지향성을 감추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탓에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부모님은 제가 미래에 대해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해요. 결혼과 출산은 섹스가 기반이 되어야 하는데 저로서는 절대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주제에요. 육체적 관계보다는 서로를 위로하고 지켜줄 수 있는 감정적 교감을 갖길 원해요.”


‘섹스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의 성적 취향을 인정해 달라.’ 지금까지 만난 에이븐 회원들과 무성애의 인식 확립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의 목표는 이게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타자성을 극복하는 것 그 이상을 지향한다. 바로 ‘제2의 성 혁명’. 그들은 무성애에 대한 사회 편견이 단순히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라고 본다. 섹스를 원하든 그렇지 않든 모든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인 성별 이분법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사랑과 섹스가 아름다운 행위라고 설파하고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랑하고 섹스할 수 있는 자유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반대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러니한 대세를 전복시킬 명분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사람은 무척 다양하다는 오래된 진리. 

CREDIT

WRITER NELLIE EDEN
EDITOR 김영재
PHOTOGRAPHER SABINE VILLIARD(TRUNK ARCHIVE)
TRANSLATOR 권태경
DIGITAL DESIGNER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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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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