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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FRI

BREAK THROUGH

하정우, 이선균의 생존 법칙

하정우와 이션균이 영화 <PMC: 더 벙커>라는 매혹적인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또 하나의 작품을 치열하게 헤쳐 나온 그들만의 생존 전력

미니멀한 니트 스웨터와 팬츠는 Jil Sander. 레이어드한 티셔츠는 3.1 Phillip Lim. 왼손의 심플한 반지는 Ille Lan.



슬림한 실루엣의 수트와 셔츠,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선균이 입은 라이더 재킷은 Comodo. 벌키한 터틀넥 니트 스웨터는 Yohji Yamamoto by BoontheShop. 블랙 팬츠는 Songzio Homme.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정우가 입은 베이식 티셔츠는 Comme des Garcons. 팬츠는 Songzio Homme. 레이스업 슈즈는 Tod’s. 펜던트 목걸이와 팔찌는 Damiani. 반지는 Ille Lan.



담백한 티셔츠는 Comme des Garcons. 십자가 펜던트 목걸이는 Damiani.



하정우의 못 말리는 지구력
이번에는 지하 벙커다. 라디오 부스에 갇혀 라이브로 테러를 생중계했던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가 다시 한 번 김병우 감독이 발급한 고난도 미션에 뛰어들었다. <PMC: 더 벙커>는 판문점 지하 벙커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군사 기업(PMC)의 은밀한 작전을 그린 리얼 타임 생존 액션영화. 시나리오에는 ‘회색 인물’로 그려진 PMC ‘블랙 리저드’의 리더 에이헵은 하정우를 통과하며 보다 인간적인 매력을 입었다. “복잡한 것들을 얼마나 더 심플하게 가져갈 것인지가 저희 숙제였어요. 에이헵이 선과 악의 경계선에서 고뇌하는 게 관객에게 재미있게 다가설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들었죠. 그래서 찍으면서 캐릭터를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대사의 80%를 영어로 소화했다. 처음은 아니다. 베라 파미가와 호흡을 맞춘 <두 번째 사랑>에서도 영어로 대사를 구사한 바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에서 연기한 지하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막 건너온 불법 체류자. 영어가 어느 정도 서툴러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캐릭터였다. <PMC: 더 벙커>의 에이헵은 다르다. 그는 능숙한 언어로 팀을 컨트롤해야 하는 남자. 말이라는 건 단순히 의미 전달뿐 아니라 그 인물이 살아온 인생과 습관, 버릇, 성격을 드러내는 통로이기에 허술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런 사실에 누구보다 예민한 촉수를 드리운 건 영화 준비만큼은 물 샐 틈 없는 완벽주의자 하정우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흑인 이민자들과 어울려 살며 그들의 억양을 체득한 인물로 에이헵 컨셉트를 잡았어요. 회화 코치 선생님과 그들이 쓰는 표현법과 발음, 제스처들을 잡아나갔죠.”  에이헵을 연기하는 동안 하정우의 플레이리스트에는 흑인 음악이 빼곡했다. 힙합 룩은 한동안 하정우의 일상 스타일이기도 했다. “제가 힙합 세대라 그런 과정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하정우에게도 흑인 특유의 리듬감이 있다. 리드미컬한 템포로 이뤄진 화법과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어깨 움직임과 손놀림. 하정우는 씨익 웃으며 동조했다. “중3 때 영어 회화 수업을 미 8군에 들어가서 받았어요. 그때 흑인 의사 선생님이 아르바이트로 저희를 가르쳤는데, 2년간 농구도 하면서 재미있게 놀았죠.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일 시기라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에이헵은 대중이 하정우에게 느끼는 ‘섹시하다’는 형용사에 정조준한 캐릭터다. 반삭의 헤어스타일에선 관능미가 뚝뚝 흘러내리고, 두 팔에 새긴 문신은 그을린 팔 근육을 도드라지게 한다. 문신에 대해서라면 개인사가 있다. 하정우는 5년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오른쪽 허리에 새긴 십자가 문양의 문신을 최근 들켰다. “하하하. <신과함께> 대만 프로모션에서 저도 모르게 손들었는데, 셔츠가 올라가면서 문신이 사진에 찍혔죠.”  왜일까? 어떤 상황에서도 유들유들하게 열려 있는 유쾌한 하정우지만, 문신은 의외라고 생각했던 건. “그런 선입견을 깨려고 문신을 했죠. 반대편에도 똑같은 문양의 문신이 있어요. 1년에 하나씩 해야지 했는데, 그건 못 지켰죠.”


하정우는 이번 영화에서 호흡을 맞춘 이선균에 대한 호감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차갑게 시작했던 영화가 선균이 형이 들어오면서 뜨거워져요. 형에겐 특유의 따듯함과 건강미가 있죠.”  들리는 바에 의하면, 촬영현장에서 동료들을 즐겁게 해주려는 하정우의 후한 성품은 이번 작품에서도 쉬지 않고 발휘됐다. “많은 사람들이 뒤엉킨 영화 현장에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치열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럴 때 서로 쪼고, 강요하고, 대립한다면 그건 창조적인 작업 현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늘 했어요. 저 역시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땐 많이 주눅 들어 있었고, 긴장도 했거든요. 그때 ‘내가 긴장만 풀면 잘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겸손과 자부심이 믹스된 단단한 자신감! 그렇다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긴장이 풀어진 게 언제인지. ‘촬영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게 해준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시작으로 <두 번째 사랑> <구미호 가족> 등을 거치며 얻은 현장의 편안함, 영화와는 표현 양식이 다른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히트>를 찍으며 터득한 연기술과 <추격자> <비스티 보이즈> <멋진 하루>를 통해 얻은 자신감에 대한 회고가 이어진다. <국가대표>를 통해서는 ‘상업영화에서 필요한 주연배우로서의 연기’에 대해 새로운 채널을 터득했다는 하정우는 “<황해>와 함께 1년 가까이 현장을 구르며 배우로서 뭔가 익는 느낌이 들었다”  고 말했다. “그때였던 것 같아요. 아, 이제 내가 뭔가 주연배우로서 한 팀을 이끌어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 온 건. 그러면서 제 다작 시대가 비로소 열린 겁니다. 하하하!”  <베를린> <군도> 등으로 쉼 없이 이어지는 하정우의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서게 한 건 연출을 맡은 <허삼관>이다. 관객 수 95만 명에 멈춰 선 <허삼관>은 겉으로 보기엔 실패. 하지만 진짜 실패는 아니다. “<허삼관>을 찍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건 두려움의 문제도 아니고, 자신감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실력의 문제도 아니고, 재능의 문제도 아니다. 어쩌면 이건 절실함의 문제가 아닐까란 원론적인 생각을 다시 하게 된 거죠.”  <허삼관>을 통과하며 하정우는 ‘뚜껑을 다시 열어보고 냄새를 맡으며’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마음을 복기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느낌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사실 꿈보다 해몽인데, 돌이켜 정리해 보니 그렇네요(웃음).”  하정우는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 질문, 종종 받아요. 몇 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저는 한순간도 없어요. 돌이킬 것도 없고, 안 좋은 일로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은 저에게 면역력이 됐을 테니까요. 아, 10년 전 체력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건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요즘도 건강을 위해 공진단을 챙겨 먹느냐고 묻자 진지함을 거두고 익살스럽게 말한다. “공진단? 알부민? 밀크시슬? 하하하.”


지난 몇 년간 하정우의 존재감은 배우 카테고리 밖으로 더 확장됐다. 그림 그리는 창작자로서 열두 번째 개인전을 연 그는 두 번째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를 출간했다. 가늠하기 힘든 하정우의 삶의 용량은 언제나 탄복할 따름이다. “예술가 혹은 이쪽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것 같아요. 흔히 충동적인 일탈이나 방황에서 좋은 예술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건강한 일상에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예술에 대해 얘기해 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우린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어 예술에 복무하는 이들에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강하게 자신만의 길을 걷는 예술가에겐 무심하다. “물론 예술가들의 기본 소스는 비슷할 겁니다. 남보다 발달한 예민함과 통점에서 출발하죠. 하지만 그걸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봐요.”  7년 전 펴낸 첫 번째 에세이 <하정우, 느낌 있다>와 <걷는 사람, 하정우> 사이, 하정우의 무엇이 변하고 변하지 않았을까? “물리적인 시간에 비해 참 많은 작품과 경험을 했어요. 그 시간 안에서 얼마만큼 성장을 이뤘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1cm 정도의 성장통을 겪으면서 1cm 정도의 성장은 이뤄내지 않았을까란 생각은 합니다.”  15년의 연기 경력은 그에게 현명하게 세상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다양한 영역에 안테나를 세우는 사람이다. <걷는 사람, 하정우> 마지막 장에 ‘스페셜 땡스 투’로 거론한 인물들을 보자. 레이 찰스, 로버트 드 니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마이클 조던, 파블로 피카소…. 세상 모든 예술가가 그의 스승이고 리서치의 대상이다. ‘최연소 1억 배우’란 타이틀을 거머쥐고, 대중의 단단한 지지를 획득한 하정우는 여전히 목마른 사람처럼 겸손과 연습을 연료 삼아 꾸준히 걷는다. 지구력은 ‘메이드 인 하정우’를 추동하는 힘이다.



부드럽고 톡톡한 텍스쳐의 터틀넥 니트 스웨터는 Yohji Yamamoto by BoontheShop.



이선균의 탁월한 감각
<PMC: 더 벙커>에서 이선균은 에이헵과 난관을 헤쳐나가는 북한 엘리트 의사 윤지의를 연기했다. <하얀거탑> 최도영과 <골든타임> 이민우의 삶을 살았던 이선균에게 의사 가운은 낯설지 않다. “윤지의는 심플해요. 의사라는 직업관이 투철한 사람이죠. 에이헵을 변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윤지의는 인간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 최도영에 더 근접한 인물이다. 물론 직업이 같을 뿐, 이번에 그의 손에는 메스 대신 카메라가 더 많이 들렸다. 에이헵과 교신할 때 사용된 1인칭 시점 샷을 위해 이선균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자신을 찍었다. “총격전도 많은데 촬영까지 직접 하려니 정신이 없었어요. 덕분에 진짜 리액션이 나오기도 했죠.”  이선균은 <악질경찰> 촬영을 마치자마자 <PMC: 더 벙커>에 합류했다. 영화가 3분의 1 정도 촬영된 시점이었다. 이선균은 이를 ‘전학’에 비유했다. “하정우가 있는 학교에 전학 간다는 느낌으로 갔어요. 여기는 또 90%가 외국 배우들이라 국제학교에 전학 간다는 느낌이 들었죠.”  배우 입장에서 이미 분위기가 세팅된 현장에 뒤늦게 합류하는 건 적지 않은 부담이다. 게다가 작품에서 작품으로 휴식 없이 바로 건너가다 보면 캐릭터 사이에서 잠시 길을 잃기 쉽다. “아무래도 그럴 경우 초반 적응에 힘든 부분이 있죠. 기존 캐릭터를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인물이 곧바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적응 시간이 조금 필요한데, <PMC: 더 벙커>의 경우 다른 작품에 비해 부담은 별로 없었어요.”  이유가 솔깃해 눈을 치켜 떴더니 “하정우에 편승해서 가는 영화이기 때문에(웃음)”  라는 유쾌한 응답이 날아왔다. 물론 그의 말엔 여러 의미가 숨어 있다. 후배 하정우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새로운 장르의 도전에 대한 설렘 등이.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화법에서 그의 담백한 성정이 묻어났다. 이선균과 하정우의 만남이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그들이 액션 못지않게 리액션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보여온 배우라는 점 때문이다. 나설 때와 나서지 않을 때를 정확히 알고, 전체 그림을 위해 화면을 홀로 독점하지 않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존재감은 잃지 않는 능력. 한국영화계에서 드문 자질이고 귀한 성품이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멋진 하루>에서 하정우가 보여준 리액션이 그랬고, <커피프린스 1호점>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이선균이 그려낸 자세가 그랬다. “정우와 저는 기질은 많이 달라요. 정우는 대장부 기질이 있죠. 반장처럼 사람을 잘 모으는. 반면 저는 마이너 기질이 있어요. 기질은 다른 대신 취향은 비슷한 게 많습니다. 음악 취향도 그렇고, 농구도 둘 다 즐기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내기 농구도 했는데, 제 친구들과 정우 친구들이 친해졌어요. 이젠 저희 빼고 그들끼리 모여 농구하고 술 마시고 하더라고요(웃음).”


<PMC: 더 벙커>는 이선균이 드라마 <나의 아저씨> 이후 대중과 처음 만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기대가 솟는다. 드라마가 끝나도 어딘가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이 있는데, 그가 연기한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이 그렇다. 이선균은 이 작품을 ‘자신에게 온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배우로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내가 나온 작품을 누군가에게 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때예요. <나의 아저씨>가 그런 작품이었죠. 친구들이 제가 나오는 건 잘 안 보는데 <나의 아저씨>는 너무 좋아해 줬어요. 처음으로 연예인 대접을 해주더라고요.”  이선균은 비현실적일 수 있는 캐릭터를 현실적인 연애담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배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최한성과 <파스타>의 버럭 셰프 최현욱이 들뜨지 않고 ‘현실 남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는 이선균이 지닌 일상성이 큰 기여를 했다. <나의 아저씨>는 이선균의 일상 연기가 빛을 발한 작품이란 생각을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했다. 이선균도 이에 끄덕였다. “감독님도 그런 부분을 많이 요구하셨어요. 대사도 너무 좋았지만, 그걸 흔들림 없이 끝까지 끌고 간 건 연출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의 ‘로맨틱 가이’에서, 전 국민의 ‘아저씨’가 된 느낌은 어떠냐고 묻자 이선균이 호탕하게 웃으며 “아저씨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다. 아저씨라고 느낄 때가 과연 있을까? “바지 입을 때요. 제가 어릴 때 생각했던 아저씨의 기준은 기지 바지였어요. 기지 바지를 입고 다니면 아저씨라고 느꼈죠. 지금 기지 바지는 안 입지만 대신 그렇게 좋아하던 청바지를 못 입어요. 불편해서. 이젠 이렇게 넉넉한 추리닝을 많이 입고 다니죠.”  이날도 이선균은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스튜디오를 누볐다. 하지만 그의 주장과 다르게 트레이닝복을 입은 이선균에겐 여전히 청춘의 냄새가 있었다. 아니, 청춘을 넘어서는 유연한 라인이 감지됐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러고 보니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려는 욕망을 내보이는 이선균을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마침 그를 마주한 날이 수능일이었다.“수능 때 기억나세요?”  “저는… 학력고사 세대(웃음)”  아차차!  “아, 이런 이야기 할 때 이제 ‘아저씨구나’ 하는 거죠.”  정말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 있기도 한데, 살다 보니 수능이 그렇다. 이선균은 “지난 작품에서의 마음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작품을 할 때 조금 예민했던 것 같아요. 주인공의 부담이라는 게 있잖아요? 사람은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걸 할 때 날카로워지기도 하고요.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랬지? 조금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들죠.”  반대로 별것 아니었는데, 나중에 돌아봤더니 중요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다. “관계들이죠. 제가 <끝까지 간다>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처음으로 큰 상을 받았어요. 그때 저를 데뷔시켜 준 감독님부터 여러 사람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내가 아등바등 노력한 것도 아닌데 그분들과 연이 돼 잘 흘러왔구나’라고 느껴져 너무 고맙더라고요.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등바등하지 않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저는 큰 욕심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스타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이 별로 없어요. 그냥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을 뿐.”  사랑받고 싶은 건 배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본능 아닌가. “흠… 상처가 될까 봐 그랬나? 그런 게 겁났나? 내가 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잘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래요. 작품이 잘 되든 안 되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는 편이에요. 이건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저에게 큰 힘을 준 <나의 아저씨>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래야 힘든 게 왔을 때 그 또한 아무것도 아니라고 저를 위로할 수 있거든요.”  다짐하듯 그가 말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닙니다. 내가 맡은 건 치열하게 잘 만들고 싶은 생각은 늘 있죠. 그래야 결과가 어떻든 후회를 안 할 테니까요.”  그렇다. 그런 노력의 결과가 쌓이고 쌓인 게 지금의 이선균일 테니. <PMC: 더 벙커>를 접점으로 이선균의 2019년은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이정범 감독과 촬영한 <악질경찰>, 봉준호 감독과 호흡을 맞춘 <기생충>이 후반 작업에 돌입한 상태고, 봄에는 변성현 감독과 <킹 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로 만난다. “제가 다섯 작품을 안 쉬고 했어요. 이것까지만 하고 쉬어야지, 이것까지만 하고 쉬어야지 하는데, 계속 거부할 수 없는 좋은 제안들이 들어왔어요. 어떤 느낌이었냐면 포커를 치는데 자꾸 A가 들어오는 기분?”  그는 일관되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우린 이선균에게서 다른 사람에겐 없는 독창성을 자주 목격해 왔다. 그러니까 이선균이야말로 에이스 카드인 셈이다.



이선균이 입은 박시한 실루엣의 튜닉 셔츠와 팬츠는 Wooyoungmi. 슈즈는 Jimmy Choo.
하정우가 입은 모던한 터틀넥 니트 스웨터와 벨트 포인트의 팬츠는 Wooyoungmi. 슈즈는 Salvatore Ferragamo.



니트 스웨터와 팬츠는 Jil Sander. 레이어드한 스트라이프 티셔츠는 3.1 Phillip Lim. 반지는 Ille Lan. 스포티한 스니커즈는 Adidas.



각진 어깨 실루엣이 파워플한 코트, 해진 디테일의 니트 스웨터, 팬츠는 모두 Maison Margiela. 슈즈는 Jimmy Choo.

CREDIT

컨트리뷰팅 에디터 이경은
글 정시우
사진 김영
스타일리스트 지상은(이선균), 이현하(하정우)
헤어 범호(이선균), 임해경(하정우)
메이크업 최희선(이선균), 임해경(하정우)
디자인 이효진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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