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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TUE

STARTING OVER

이종석의 서른

이종석의 서른은 그 어느때보다 진지하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종석의 이야기

브라운 색상의 체크 재킷은 3백8만원, 팬츠는 2백28만원, 모두 Raf Simons by 10 Corso Como Seoul. 블랙 티셔츠는 20만원대, T by Alexander Wang.



심플한 화이트 티셔츠는 20만원대, T by Alexander Wang. 데님 팬츠는 가격 미정, Kimseoryong.



블랙 컬러의 터틀넥 니트 톱은 1백만원대, Lanvin by Mue.



한 컷이 끝날 때마다 화면을 확인하더군요. 촬영하면서 예상했던 모습과 비슷하던가요 아니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 담겨 있기도 해요. 찍히는 일에 익숙한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아요. 그래도 오늘 제 얼굴은 마음에 드네요.

꽤 오랜 시간 보지 못한 기분이에요 서른이 되고 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른이 돼야 할 것 같은데, 아직 어른이 덜 된 기분. 그러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서 여행을 다녔어요.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도 시작했고, 영어 공부도 하고요. 처음 해보는 일도 좀 벌였죠. 좋아하는 사람들과 아지트 겸 카페를 열고, 제 회사도 만들었으니까요. 나름 개인적으로 큰 사건들 틈에서 바빴던 기분이에요.

서른이면 아직 어린 나이라고들 많이 이야기하지 않나요 맞아요. 아무래도 이 시기를 지난 분들은 너무 어리다 하죠. 그냥 혼자 혼란스러운 거예요. 지금의 내가 20대 때와 다른지, 그대로라면 조금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셋요? 거기는 어떤가요?

저 역시 선배에게 어리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어른이 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솔직함이 미덕이고, 그게 제 매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젠 조금씩 말도 가려 하게 되고 조심스러워요. 그러다 보니 점점 뻔한 대답도 하게 되고요. 돌이켜보면 예전엔 굳이 안 해도 될 말까지 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당신과의 인터뷰를 ‘재미있다’고 말한 기자가 많아요 저도 인터뷰를 좋아해요. 대화할 때 나에게만 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되게 드문데 인터뷰는 주제가 오직 ‘나’잖아요. 물론 말이 글이 되면서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래서 감정적인 유대가 생기면 글 쓰는 사람도 잘 써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말은 애초에 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심플하게.
지금도 ‘말할까 말까’ 하는 게 보여요 한번 인식하고 나니까 그런 게 많아졌어요. 아까 카페 이야기를 하고도 아차 싶었어요. 가게 홍보처럼 보일까 봐.

그럼 작품 이야기를 하는 게 차라리 편하겠네요(웃음). 이제 막 촬영에 들어간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회사를 옮기고 도전하는 첫 작품인 만큼 많은 걸 고려해서 택했을 것 같은데 어느 때보다 결정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명확한 기준을 하나 고르자면 팬이 좋아할 만한 작품을 해보자는 거였죠.  로맨틱 코미디 장르가 처음이라면 깜짝 놀라는 분이 많아요. 예전에는 복합적인 서사 속에 로코물 같은 장면이 섞였다면 <로맨스는 별책부록>은 온전히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뭔가를 작정하고 보여줘야겠다는 각오도 있나요 그냥 인간 그 자체로 매력 있는, 멋있는 남자 주인공을 만들고 싶어요. 장르가 장르인 만큼 실제 제 모습도 반영되지 않을까 싶어요. 소소하고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될 거예요.

좋아하는 작품을 이야기할 때 남성성이 강조된 배역을 주로 말하더군요. 멋있다고 생각하는 여자 캐릭터나 배우가 있나요 최근에는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이 참 좋았어요. 함안댁(이은정)이 죽기 전 “우리 손이나 한번 잡아볼랍니꺼” 하는 장면도 몰입해서 봤고, 고애신(김태리)은 워낙 매력 있는 인물이죠.

많은 20대 남자 배우가 로코물을 하다가 진중한 역할을 탐내곤 하는데 반대 노선으로 가는 것도 흥미로워요 생각해 보면 연기 욕심이 너무 많았어요. 난 배우가 될 건데, 배우가 되려면 연기를 잘해야 하는데 잘하고 있는 건가? 그런 고민을 지나치게 일찍 시작했다고 할까요. 1년에 작품을 두세 편이나  연이어 한 것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강박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딱 서른 살이 된 순간 ‘그냥 내가 잘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적인 성장과 변화는 나이와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또래 남자배우들과 가깝게 지내는데 요즘 20~30대 남자배우들의 고민이나 공감대가 있다면 아무래도 역할에 관한 거죠.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제작되는 작품은 많은데 제 또래 배우들에게 기대하거나 찾는 이미지가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거든요. 특히 영화는 한 세대 위의 선배들이 할 만한 작품이 많잖아요. 예전에는 제가 다른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걸 계속 증명하면, 작품의 폭도 늘어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봐, 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고르기도 했고요. 이제는 그런 고민을 그만뒀어요.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며 나아질 거라 믿어요.




사선 버튼 장식의 심플한 니트 톱은 1백59만원, Lanvin by Mue.






클래식한 멋을 자아내는 캐멀 컬러의 터틀넥 니트는 48만원, 와이드 팬츠는 58만원, 코트는 1백58만원, 모두 Ami 10 Corso Como Seoul. 화이트 스니커즈는 10만원대, Converse.



고민이 많은 와중에도 가장 치열하게 산 시기를 꼽는다면요 2014년, 스물여섯 살 때요.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마친 뒤 갑자기 인지도가 높아졌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피 끓는 청춘>을 찍고, <닥터 이방인>, <피노키오>까지 연달아 마쳤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았는데, 그때는 사람들의 관심이 오로지 제게 쏠린 것처럼 느껴졌어요. 보는 눈이 있으니 잘해야 한다는 욕심 때문에 괴롭기도 했고요.

한류 스타 이종석이라는 수식어도 그때 생겼어요 그런 말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욕망과 열기, 갈망 같은 감정들이 연기를 향해 있었거든요. 덕분에 이거 하나는 자부할 수 있어요. 20대를 정말 열심히 보냈다는 거.

배우로 살기 위해 연기력 외에 수반되는 것들이 또 있겠죠. 즐기면서 하는 것과 힘든 게 있다면 제작발표회, 무대인사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한마디하는 데도 귀가 빨개진다니까요. 이런 제 성향을 아는 김병욱 감독님(<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 ‘너는 이종석 자체를 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좋은 배우로서 대중과 만나라’는 말을 하셨는데 요즘 그 말이 자꾸 떠올라요.

그래도 팬 미팅을 할 때는 즐거워 보였어요. 곧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도 팬 미팅을 한다고요 팬은 제가 실수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자리에서 받은 에너지로 한동안 살아갈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정말 그래요. 무조건적으로 해주는 응원의 힘이 엄청나요.

당신에게도 무조건적인 애정과 믿음을 보내는 대상이 있나요 딱딱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회사 사람들요. 회사 운영을 처음 하다 보니 내가 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애정과 믿음이 생겨요. 저는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거든요, 진심으로.

어떤 게 좋은 매니지먼트 회사인가요. 대표이자 배우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간단해요. 앞으로 할 작품과 해야 할 작품 그리고 연기적인 부분을 함께 고민해 주는 것. 기본적으로 함께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받아야 해요. 그렇게 많은 걸 원하는 게 아닌데도 만만치 않아요. 아무튼 잘해내고 싶어요. 지난주에 고사도 지낸걸요(웃음).

가까운 사람들이 좋은 말이나 칭찬해 주면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아뇨. 되게 안 믿어요. 안 믿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제게 ‘이게 문제야’ ‘이건 고쳐’ 같은 말은 잘 안 하죠. 말하기 어렵기도 할테고요. 그래서 저와 관련 없는 대중의 판단이 객관적인 표현처럼 느껴지나 봐요. 작품이 끝나면 관련 기사나 블로그 리뷰를 찾아보는데 ‘잘했다’는 표현을 보면 믿고 싶어져요.

연기를 떠나서 들었을 때 기분 좋은 말도 있나요 (한참 고민하다가) 생각보다 착하다? 가끔 나 좀 착한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데 제 입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나요?

물론이죠. 셀프 PR 시대잖아요 문득 주변의 누군가가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잘해주고 싶은데 제 마음을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게 자존심 상해서 드러내지 않아요. 선물을 할 때도 굳이 다른 사람을 통해 전달하고요.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이 불편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한 행동이 가짜처럼 보일 것 같아 두려워요.

하하. 너무 솔직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 제가 가진 선의나 호의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게 창피해요. 역시 이건 아무도 공감하지 못하겠죠(웃음).



멜란지 니트 카디건은 1백만원대, Marni by Mue.





코듀로이 재킷은 88만원, Ami by 10 Corso Como Seoul. 화이트 티셔츠는 T by Alexander Wang. 데님 팬츠는 가격 미정, Kimseoryong. 스니커즈는 10만원대, Converse.



나이가 들면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리라 기대하게 돼요. 인간 이종석을 깊어지게 하는 건 뭘까요 선배들이 사랑해라, 연애를 하라는 조언을 많이 해요. 확실히 한 번의 연애를 마치고 나면 감정의 폭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나 인간으로서나 말이에요. 요즘은 제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 중이예요.

어떤 습관인가요 예를 들면 저는 스물아홉 살까지 면도도 일정에 맞춰서 했어요. 스케줄 가기 직전까지 길렀다가 깎아야 수염이 깨끗하게 밀리니까요. 스케줄을 기준으로 나머지는 기다리는 시간,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정말 집에 가만히 있다 보니 ‘집돌이’란 별명도 생겼어요. 서른 살이 되면서 뭔가 다른 걸 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그래서 발견한 재미나 행복이 있다면요 휴, 행복이란 뭘까요?

자려고 누웠을 때 다음 날 걱정할 게 하나도 없으면 행복한 거라더군요 그런 거라면 저는 요즘 잠들기 전에 항상 하는 생각이 있어요. 내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요. 예정된 일 외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게 겁이 나요.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예요.

원래는 진취적으로 도전하라는 표현 아닌가요 그런데 저는 다른 의미로 ‘아무것도 안 해야지.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러면서 잠든다니까요? 여러모로 격동의 시기예요.

그런데도 왜 자꾸 현재를 만족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이런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곧잘 해요. ‘너 지금 행복해?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정작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낀 건 몇 번 없는데도요. 그런데 확실히 ‘요즘 내가 좀 행복한가?’ 싶어요. 얼마 전에는 식당에서 온갖 메뉴를 주문했는데 문득 먹고 싶은 걸 다 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사람들한테도 말했어요. “이런 게 행복 아닙니까?”

CREDIT

패션 에디터 이건희
피처 에디터 이마루
사진 김희준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헤어 현철
메이크업 강미
세트 박주영
어시스턴트 유재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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