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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THU

THE MASTER

이병헌의 시간

지금의 이병헌을 완성한 건 과거의 무수한 조각일 테지만 그는 늘 현재에 충실하다


화이트 셔츠와 턱시도 모두 Giorgio Armani.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방영이 후반부를 향해 달리고 있던 지난 8월 말. 명불허전 ‘연기의 신’ 이병헌과의 촬영을 위해 베니스를 찾았다. 베니스국제영화제를 14년째 후원하고 있는 예거 르쿨트르 홍보대사이자 한국 배우 대표로 공식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출국하는 날 새벽까지 이어진 강행군 촬영으로 녹초가 됐을 법도 한데, 이병헌의 눈은 여전히 샤프하게 빛났고, 큰 입은 활짝 웃으며 여유를 뿜어냈다. 그를 둘러싼 수많은 찬사에 겸연쩍어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곧은 심지를 꾸준히 피력하던 이병헌. 냉정하면서도 오만하고 섹시미를 지닌 남자,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속의 유진 초이와 자신과 다른 점이 많다고 했지만 인터뷰 내내 흐르는 카리스마는 감출 수 없었고, 위트 넘치는 소소한 개그는 베니스의 공기를 활기차게 만들었다. 3일간의 여정 마지막 날, 바다 위로 수상 보트가 지나가는 소음을 BGM 삼아 그가 작품과 삶에 관해 이런저런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두께가 9.2mm에 불과한 슬림한 케이스가 눈길을 사로잡는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추얼. 요일과 달, 날짜, 연도, 문페이즈 인디케이터가 자리한다. Jaeger-Lecoultre.



지름 42mm 핑크골드 케이스와 브라운 악어가죽 스트랩이 조화를 이룬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 아워 카운터와 30분 카운터, 타코미터 기능을 탑재했다. Jaeger-Lecoultre.



블랙 턱시도는 Giorgio Armani.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이 끝나자마자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 쟁쟁한 배우들과 함께한 소감은 칸과 아카데미영화제는 두어 번 정도 참석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는 처음이라 더욱 뜻깊고, 인생에서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 같다. 더구나 예거 르쿨트르 홍보대사로 참석하게 된 것도 행운이다.

예거 르쿨트르는 당신을 앰배서더로 선정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모습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남성상과 일치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인생에서 ‘도전’이라고 손꼽을 만한 기억이 있나 지금까지의 행보는 ‘도전’해서 어떤 것을 이루려는 목표 의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지 않을까?’라는 마음가짐이 강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집념과 투지가 아닌, 항상 상황을 즐기려 했다.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지난 커리어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도 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단 부딪쳐 깨닫고 느껴보는 것이 낫다. ‘즐기는 사람 이길 수 없다’는 말도 있지 않나. 최선을 다해 즐겼기 때문에 늘 결과도 좋았던 것 같다.  

‘연기의 신’이라는 수식어를 들어본 적 있나 기분 좋은 칭찬인 동시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수식어가 붙는 것 자체가 ‘어떤 것’으로 규정되는 것 아닌가. 배우는 누구보다 자유롭게 캐릭터를 대해야 하는데, 그런 수식어로 인해 경직된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칭찬에 나를 가두지 않고 자유로워지려고 한다. ‘못해도 뭐 어때?’ 이런 식 말이다.  

당신도 한계를 느끼는 순간이 있나 <미스터 선샤인>을 촬영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매 순간마다 한계를 느낀다. 특히 빠듯한 촬영 일정으로 움직이는 드라마 스케줄이라면 더더욱.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연기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있는데, 한 번 더 다르게 촬영을 이어가고 싶은 나만의 욕심을 부릴 수 없다. 주위 사람들이 연기에 대한 칭찬을 할 때도 정작 스스로는 ‘이렇게밖에 못할까?’라는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다. 어쩌면 관객을 속이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 고민이 모여 현재의 이병헌을 완성한 것 아닌가 좋은 측면에서는 그럴 수 있다. 내 안에서 늘 치열하게 고민해 왔으니까. 오랫동안 일하면서 왜 아직도 이런 욕심을 부리나 싶어 자괴감에 빠지다가도, 잘해오고 있다고 합리화한다.  


화이트 셔츠와 팬츠는 모두 Giorgio Armani.



캘린더 창과 러버 스트랩, 200m 방수 기능이 탑재된 폴라리스 데이트. 컨템퍼러리하고 스포티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Jaeger-Lecoultre.


9년 만의 드라마 복귀였다. 촬영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이렇게 긴 시간을 할애했던 작품이 있었나 싶다. 거의 11개월을 오롯이 <미스터 선샤인>을 위해 달렸다.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겨울과 가장 더운 여름을 한 작품에서 경험했다. 말을 타는 장면이 많았는데, 40℃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에 말의 등도 금방 축축해졌다. 처음 그 말을 만났을 때 ‘유진(극중 이병헌의 배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주저리주저리 말도 안 되는 대화를 걸고 촬영을 시작하곤 했다. 

액션, 코미디, 멜로, 사극, 누아르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했다. 본인에게 잘 맞는 장르가 있나 관객의 입장에서 즐기는 장르와 연기할 때 좋아하는 장르는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주 어릴 때(4세 정도였던 것 같다)부터 형을 따라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당시 영화관엔 입석이 있었고, 땅콩과 오징어를 팔기도 하고, 담배 연기도 났다. 무등을 타서 영화를 보던 당시의 극장 냄새와 순간들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어릴 때는 판타지물이 좋았다. 영화에서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모든 것이 실현 가능하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신났겠나. 내가 직접 연기할 때는 디테일한 인간 심리를 표현하는 영화가 매력적이다. 영화 <광해>를 촬영할 때는 스스로 ‘코미디를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코미디 촬영현장은 늘 신나고 활기차고 스태프들의 피드백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지난 3일간의 여정에서 에디터가 본 이병헌은 유쾌하고 아재 개그를 즐기는 사람이더라. 마음 깊숙한 곳에 개그 본능이 숨겨져 있는 것 아닌가. 예능에는 욕심이 없나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친근하게 어필하거나 극중 캐릭터로만 보여지기를 원하는 건 배우 개인의 ‘선택’ 문제인 것 같다. 내 경우엔 작품 속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도 벅차다. 인간 이병헌이 아닌, 관객이 캐릭터에 빨리 몰입하려면 진짜 나를 보여주는 걸 좀 아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에 대해 모를수록 관객은 극중 역할에 쉽게 매료된다. 



수트와 화이트 셔츠는 모두 Giorgio Armani.



지름 42mm 케이스에 습도나 먼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러버 스트랩이 조화를 이룬 폴라리스 데이트. Jaeger-Lecoultre. 코듀로이 재킷은 Man on the Boon. 셔츠는 Tom Ford


대중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나는 많이 다른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잘 못하는 편이다. 좀 더 감성적인 측면이 많은 것 같다. 이성적인 것과 거리가 멀다.  

신념이랄까. 배우 이병헌을 지탱하고 있는 단단한 가치관이 궁금하다  살다 보면 급한 일 많지 않나. 당장 전화할 때가 있다든지, 공과금을 내야 한다든지 사소하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연기하는 순간만큼은 전혀 다른 생각이 침입하지 못하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한다.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10대와 20대, 30대와 40대의 이병헌은 어떻게 달랐나. 흔히 남자 인생의 황금기는 40대라고 하더라 그 황금기도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다(웃음). 아마 30대에 이 질문을 받아도 똑같은 대답을 했을 것 같다. 현재가 언제나 가장 최고인 순간인 것 같다고. 
이병헌의 50대는 어떨 것 같나 감정의 저장소가 더욱 풍요로워진 덕택에, 미세하고 다양한 연기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30대에 이해 못했던 감정을 40대는 연기할 수 있는 넓은 폭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대와 20대의 감성은 잊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한다. 계속 쌓이는 것뿐 아니라 잊히는 것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소멸되고 생성되는 인생의 시간 속에 분명 연기의 폭은 더 깊어질 거라는 건 확실하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이 있다면 관대해진다.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마음은 없어지고 많은 것들을 용서하게 됐다. 불행이나 괴로움, 고민 등 답답한 감정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럴 때 더욱 낙천적으로 생각하려 한다. 관용이 생겼다. 

가정의 밸런스는 어떻게 지키나 촬영현장에서는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반대로 집에 오면 아빠의 역할에 확 빠져들어 집중한다.  

<미스터 선샤인> 촬영이 막 끝났고, <엘르> 촬영이 마무리되면 새 계절에 무얼 하고 싶은가 10월 중순부터 새로운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 머릿속으로는 <미스터 선샤인>이 끝나면 휴식을 취해볼까, 라고 생각했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안 되는 법이니까. 그저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수트와 화이트 셔츠는 모두 Giorgio Armani.




8월 29일~9월 8일 베니스 리도 섬에서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


A SPARKLE IN TIME

매년 8월 말과 9월 초 이탈리아 리도 섬이 북적이는 이유는 바로 약 2주 동안 열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 때문이다. 국제영화제로서 가장 오랜 전통을 지녔으며, 칸영화제가 처음 열리게 된 동기이기도 한 베니스영화제는 늘 이맘때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한국 배우들의 베니스 행을 보기 힘들었던 지난 몇 년간의 공백을 뚫고 탄탄한 연기력으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한 배우 이병헌이 스위스 파인 워치 메이킹 브랜드 예거 르쿨트르의 홍보대사이자 한국 배우 대표로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찾았다. 레드 카펫 위에서 그의 부드러운 미소는 빛났고, 한국에서는 ‘미소 킹’이란 타이틀로 연일 뉴스를 장식하기도 했다.  워치 메이킹 전통의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독창적인 타임피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예거 르쿨트르는 영화 산업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며, 올해로 14년째 베니스국제영화제 후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영화제에 참석한 스타들에게 그랑 메종의 최고급 시계들을 협찬하고 최고영화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자, 여우주연상과 남우주연상인 볼피컵 수상자에게는 맞춤 제작 리베르소 워치를 수여한다. 시계는 베니스의 상징인 사자가 래커 소재로 인그레이빙돼 있으며, ’75 Mostra’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편 창의적인 영화제작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예거 르쿨트르가 제정한 공로상인 ‘글로리 투 더 필름 메이커 어워드(Glory to the filmmaker Award)’를 수여하는데. 과거 수상자로는 키타노 다케시(2007), 실베스터 스탤런(2009), 알 파치노(2011), 스파이크 리(2012), 제임스 프랭코(2014), 브라이언 드 팔마(2015), 스티븐 프리머스(2017) 등이 수상자 명단에 올랐다. 



유서 깊은 피사니 모레타 궁에서 열린 갈라 디너. 전 세계 셀러브리티가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은 이병헌. 블랙 턱시도에 올해 첫선을 보인 예거 르쿨트르의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를 매치했다. 



갈라 디너에 참석한 톰 요크, 베네딕트 컴버배치, 소피 헌터, 조앤 프로갯,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12년간 이어져 오고 있는 예거 르쿨트르가 제정한 공로상인 ‘글로리 투 더 필름 메이커 어워드’. 올해는 중국영화계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에게 수여됐다.



갈라 디너의 하이라이트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고전 서신을 낭독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해석을 더하는 레터스 라이브 공연. 배우 이병헌도 참여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레드 카펫과 더없이 어울리는 주얼 워치.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잎사귀 모양 아래 다이얼이 숨겨져 있는 101 푀이유. 실버 오팔린 다이얼과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101 렌느.



베니스국제영화제 갈라 디너에 참석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이병헌. 컴버배치는 예거 르쿨트르의 폴라리스 메모복스를, 이병헌은 폴라리스 크로노그래프를 착용했다.

CREDIT

사진 김영준
스타일리스트 이혜영
에디터 정장조
헤어&메이크업 공탄
디자인 전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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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 본지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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