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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6. SAT

TOW FACES

두 개의 삶, 하나의 답

김해숙과 김희선이 드라마 <나인룸>으로 돌아왔다

블루 퍼 블루종은 Rochas.



선글라스는 Azzedine Alaia by 10 Corso Como Seoul.



김해숙이 입은 블랙 테일러드 재킷은 Akris. 위에 레이어드한 라운드 숄더 셰이프의 재킷은 Low Classic. 비대칭 드레이프 디테일의 이너 톱은 Cos. 주얼 장식이 화려한 선글라스는 Miu Miu by Luxottica. 골드 싱글 이어링은 Monday Edition.김희선이 입은 블랙 실크 블라우스와 레더 플리츠스커트, 실버 다이아몬드 네크리스는 모두 Chanel


김희선, 균형 잡힌 삶의 한가운데서

<품위있는 그녀>의 성공 이후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이 많지 않았나요 다른 건 다 포기하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역할을 해보자 그랬어요. 제안받은 작품 중에서 장르적으로 흔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발견하고는 좋다, 하고 싶다, 해야겠다 결심했죠. 그게 <나인룸>이었어요.

어떤 부분이 끌렸나요 전 극장에 가면 TV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물이나 히어로물을 즐겨봐요. 드라마가 우리 옆집에서 일어날 것 같은 일이라면, 영화는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가 흥미로워서 <아이언맨> 시리즈 같은 마블 코믹스도 좋아하고요. <나인룸>은 TV로 볼 수 있는 영화적 소재라는 점, 일상적이지 않은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매력적이었어요.

정성희 작가가 이런 장르 드라마를 쓴 적 있었나요 탄탄한 장편 사극으로 인정받는 분이죠. <나인룸>은 16부작인데 50부 대작 느낌이 물씬 풍겨요. 이경영, 손숙 선배님 외 임원희, 오대환, 김재화 등 미니시리즈에 이렇게 쟁쟁한 배우들이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저도 놀랐어요. 덕분에 전 편하게 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전혀 새로운 작품이라도 약간 감이 오는 대본이 있고, 시청자 입장에서 다음 회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해지는 대본이 있거든요. 초반 몰입이 필요한 작품이긴 하지만 처음부터 보신 분들은 아마 헤어나오기 힘들 거예요. 집중해서 봐주세요(웃음).

김해숙, 김희선의 만남으로도 회자되고 있어요 전 승소율 100%인 변호사 ‘을지해이’ 역을 맡았는데, 승소율 100%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수치잖아요. ‘나쁜 짓을 해서라도 이기겠다’는 의지와 ‘절대 지지 않게 만들겠다’는 야망이 반영된 캐릭터예요. 사회적으로 악녀로 평가받지만 최장기 미결 사형수 ‘장화사’와 영혼이 바뀐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돼요. 하지만 이 부분은 김해숙 선생님이 표현하시고, 전 을지해이의 몸으로 감옥을 탈출한 장화사를 연기해요. 그래서인지 선생님이 요즘 저를 유심히 관찰하세요. 저도 그렇고요. 좀 더 여유가 허락돼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해내야 하는 것도 배우의 몫이니까요.

이번 드라마에서도 역시 당신의 패션을 기대해도 될까요 시청자들이 드라마에서 다른 재미도 찾아야 하니까 을지해이의 패션에 신경을 안 쓸 순 없어요. 영혼이 장화사로 바뀌었다고 갑자기 냉장고 바지를 입을 순 없는 일이고, 또 사람들에게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을지해이가 되어야 하잖아요. 초반엔 장화사의 느낌을 살려서, 복수를 결심한 이후엔 좀 더 을지해이 같이, 나중엔 을지해이의 패션에 완전히 동화되게 점층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드리려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에요. 물론 고민은 제 스타일리스트가 가장 많이 하고 있겠죠(웃음).

드라마 촬영 시기엔 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나요 그렇진 않아요. 아이 픽업 등 규칙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거든요. 드라마 촬영 땐 새벽에 들어가도 오후 학원 픽업은 제가 하고, 차로 이동하는 동안 쉬어요. 다가오는 11월엔 딸 연아랑 도쿄 방탄소년단 콘서트도 가야 하고, 팬클럽 아미에도 가입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요즘 시간이 없어서 못하고 있어요.

다작하는 배우가 아닌데 TV에서 꾸준히 보게 돼요 지난해에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 <섬총사>의 영향이 컸죠. 섬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한두 달 정도 방송에 나가더라고요. 섬 어르신들은 제 데뷔 초기 작품을 기억하시고 저를 ‘토마토’ ‘목욕탕’이라고 부르면서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시골 인심 아시잖아요. 지금까지 방문한 섬의 어머니들이 김치며 미역이며 직접 담근 젓갈 등을 보내주시고, 막내딸이라고 부르시면서 드라마 잘 봤다는 문자도 주세요. 저도 홍삼 같은 선물도 보내고 아직 교류하고 있어요. 정말 감사한 인연이에요.

<섬총사> 시즌2에 참여하지 못해 아쉽겠어요 그럼요. 그런데 드라마 스케줄과 도저히 병행할 수 없었어요. 거긴 저 같은 평범한 아줌마가 가서 능청스럽게 어르신들과 어울려야 하는 프로그램인데 정말 아쉬워요.

평범한 아줌마의 비결이 뭔가요 저는 어린 사람이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대할 때 싫어하는 어르신을 못 봤어요. 부모님이 절 늦게 낳으셨고 시부모님과도 잘 지내는 터라 저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저희 시부모님이 아들만 둘이에요. 딸 같은 며느리가 없다는데 저랑 어머니는 그렇게 지내요. 제가 복이 많은가 봐요. 술국도 끓여주시거든요. 시어머니를 처음 뵈었을 때 “저 술 마신다고 뭐라 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때 아버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주정뱅이 막내아들 하나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을 거예요.

고민이 많은 성격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야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전 신경 써야 할 대상에겐 완벽하게 신경 쓰지만 그 이외의 것에 낭비할 에너지는 없어요. 요즘엔 물 흐르듯 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좀 유연해진 느낌이에요.

일상에서 가장 당신을 설레게 하는 건 뭔가요 전 개인적인 생활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편이에요. 내 생활을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가정에 충실했을 때나 가정에 소홀하고 개인적인 삶에 충실했을 때 모두 마음이 허전했던 기억이 있어요. 무엇보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게 정말 싫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그 중간에 잘 서 있어요. 아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행복하죠.



레오퍼드 패턴의 맥시 퍼 코트는 Max Mara.볼드한 링은 Mzuu.



김해숙,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면서

연기 45년 차예요 좋아하지 않았으면 못했을 일이죠. 모든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 마음으로 버텼고 그래서 또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좋은 점이 있다면 그 이면에 나쁜 점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내가 사랑하는 대상의 양면성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거죠.

오랜 시간 커리어를 이어온 비결이 있다면 저에게도 나이에 대한 슬럼프가 분명히 있었어요. 청순가련형 주인공을 할 때를 지나 누군가의 고모, 이모 혹은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를 겪는 동안 나름의 좌절도 있었죠. 하지만 인기보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터라 그 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 배우로 남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다양한 인간군상을 연기해 오셨어요 겪어보지 못한 상황을 연기하는 것, 그게 배우의 몫이 아닌가 싶어요. 배우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인물을 데리러 가야 해요. 그때마다 사람들은 ‘어떻게’ 연기하는지 궁금해 하는데, 전 방법보단 자신을 비우는 것으로 먼저 준비해요. 나를 버리고 그 인물의 삶을 거듭 살다 보니 상대적으로 인간 김해숙으로 돌아왔을 땐 자신이 좀 없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자신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은 뭘까요 젊었을 땐 뭣 모르고 열심히 했어요. 그 관성으로 작품을 끊임없이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을 잘 돌보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내가 없지?’ ‘난 왜 잘하는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지?’ 그러고 보니 정작 나를 위해 해준 게 없는 걸 알게 됐어요. 한편으론 무서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열정적으로 해왔는지 되돌아보게 됐어요. 후회는 없어요. 최선을 다한 삶이니까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연기에 다 쏟으시는군요 인생의 80%는 이 일을 하며 즐거웠어요. 배우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연기로 계속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조금이라도 다른 모습을 또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그런데 한 사람이 하는 연기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더 열심히 연구하고 나를 역할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노력이 더 있을 수 있을까요 ‘장화사’는 감옥에서 34년째 복역 중인 최장기 미결 사형수예요. 그래서 화장을 다 거부했어요. 연기도 중요하지만 캐릭터의 특징이 완벽하게 갖춰졌을 때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가을동화> 때 맨 얼굴로 연기한 적 있긴 하지만 그땐 젊었죠.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끼면 어쩌나 걱정도 되지만, 배우의 본능으로 가기로 했어요. 사형수가 화장을 한다는 자체가 용납이 안 되더라고요.

영혼이 바뀌는 캐릭터를 연기할 일이 흔하지는 않죠 맞아요. 그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내 몸에서 영혼이 바뀌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희선 씨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면과 연결된 동작을 바꾸는 데 집중했어요. 촬영하면서도 순간순간 헷갈리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우리만 그런 게 아닌지 스태프들도 바뀐 몸을 모르고 스탠바이 시키는 등 해프닝이 있었어요(웃음).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김영광 씨와 모자지간으로 만난 적 있어요, <나인룸>에선 관계가 더 특별해졌다고 들었어요 영혼이 바뀐 다음 영광 씨와 연인이 돼요. 가끔 서로 연기하다 푹푹 터져요. 너무 웃긴 거예요, 제가(웃음). 그동안 해온 엄마 역할 덕분에 연예계에 아들, 딸들이 수도 없이 많거든요. 영광 씨는 착하고 성실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 배우로서 자신만의 색을 딱 갖추고 있다는 점이 흐뭇하더라고요.

장화사는 ‘엄마’ 역할과 거리가 있죠 덕분에 이 캐릭터에 굉장한 매력을 느끼고 또 기대하고 있어요. 영혼이 바뀌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비밀을 공유하게 되는 저와 희선 씨의 ‘워맨스’를 보는 재미도 있을 거예요.

체력적인 어려움은 없나요 아직까지는요. 제가 집에서 왜 그렇게 안 움직이는지 생각해 봤는데, 아마 그때는 힘든가 봐요. 그런데 촬영장에서는 밤늦게까지 촬영하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대개 피곤한 줄 몰라요. 긴장감에 싸여 있기도 하고요. 저 이상한 여자죠(웃음)? 전 운동을 싫어하고, 골프도 잘 못 쳐요. 배역 때문에 배운 적 있는데 일부러 열심히 안 했어요. 너무 많은 사람이 골프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저걸 하게 되면 과연 내가 배우 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무섭더라고요.

좀 더 자기만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진 않나요 만약 배우 일에 대한 열정이 식는다면 그만두겠죠. 죽은 연기를 보여드릴 순 없으니까, 그땐 배우 생명이 끝났다고 볼 수 있죠. 그만큼 꾸준히 이어지는 이 열정이 저에겐 중요해요. 남녀간의 사랑도 불같이 서로 사랑할 당시엔 힘든지 모르잖아요. 저는 연기와 사랑에 빠진 상태로 쭉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또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흥분되고, ‘으샤으샤’ 하게 되고, 힘든 줄 모르고 촬영하고…. 아직 열정이 남아 있으니까 거뜬해요.

선생님의 열정이 많은 사람에게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누군가 제게 조언을 구하면 ‘희망을, 꿈을 가지세요’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해 보니 감히 인생을 논할 순 없는 것 같아요.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게 우리 몫이 아닌가 싶어요. 안 살고 죽을 순 없잖아요? 그러니 모나지 않게 인생에서 자신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순리대로 살아가는 게 좋은 게 아닐까 싶어요.



버건디 레이스 트랙 수트는 Stella McCartney.



김해숙이 입은 하운즈투스 패턴의 노 칼라 재킷은 Lanvin Collection. 김희선이 입은 화이트 재킷은 Louis Vuitton

CREDIT

에디터 김아름, 이마루
사진 구영균
글 채은미
스타일리스트 원세영, 구원서
헤어 임미은, 원세훈
디자인 황동미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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