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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SAT

PEACE ON MIND

고아성에게 어울리는 말

스스로 지금이 아주 평온하다고 답했지만, 고아성에게 좀 더 어울리는 말은 따로 있는 듯 했다

베이지 컬러의 롱 드레스는 Salvatore ferragamo. 버클 장식의 부티는 Coach.



인사를 나눌 때 <라이프 온 마스>의 윤나영 순경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저도 모르게 말투가 남아 있나 봐요. 촬영이 끝난 지 아직 1주일도 안 됐거든요. 끝나서 허전하다 싶었는데 챙겨보는 드라마 <오렌지 이즈 더 뉴블랙 시즌 6>가 ‘띵’ 시작한 거 있죠? 손뼉 치며 좋아했어요.
드라마가 칭찬을 많이 받았어요. 작품이 대중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 건 배우에게도 기쁜 일이겠죠 무엇보다 ‘서울 사투리’가 잘 받아들여져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참고했던 영상자료 중 하나가 88올림픽을 마친 현정화 선수의 인터뷰 장면이에요. 금메달이라는 업적과 대비되는 수줍은 말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그 시대 여성의 전반적인 코드를 느낄 수 있었죠.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사람이었을 것 같나요. 드라마 속 윤나영 역시 의지와 재능도 있지만 나이 어린 여자 순경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성차별을 당하기도 해요 윤나영처럼 살지 않았을까요? 시대가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주는 큰 요소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연기할 때도 그런 장면이 지금과 크게 다르다고 의식하지 않았어요.
‘눈이 아닌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는 대사가 후반부에 여러 번 나와요. 마음의 소리를 따르는 사람인가요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 같아요. <라이프 온 마스> 출연을 결정한 것도 포함해서요.
아역배우 출신, 유명 감독과의 작업, 세 번의 칸영화제 입성 같은 기록은 또래 배우 사이에서 당신을 독특한 존재로 만들었어요. 스스로 동질감을 느끼는 배우가 있다면요 글쎄요… 동질감은 모르겠지만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 속 안도 사쿠라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정확히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연기, 정확하게 도달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더군요.
어떤 연기에 도달하고 싶은가요 연기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감정을 다루는 배우의 태도라고 할까? ‘결’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도 다 연기인 걸 알고 보지만 그걸 실제라고 믿게 만드는 데는 연기자의 태도가 크게 좌우하잖아요. 그런 면을 통달한 느낌이었어요.



트임 드레스는 Stella McCartney. 스웨이드 부츠는 Stuart weitzman.



레드 컬러의 실크 원피스는 Saint Laurent.



가까운 사람들은 당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나요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는 없어요. <설국열차>를 촬영할 때 저를 만난 분은 최근 저를 보고 “정말 많이 밝아졌다, 달라졌다”고 해요. 그럼 저는 ‘아 그땐 내가 그랬나 보다’ 하는 거죠. 작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 자체를 되게 부정하면서 살았는데, 그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결국 나 자신도 작품으로 기억하더라고요.
희로애락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감정은 확실하게 ‘분노’예요. 화내는 연기가 제일 어려워요. 특별히 재미있지 않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하거든요. 살면서 분노를 크게 표출해 본 적도 드물고요.
그럼 일상의 소소한 분노는 어떻게 다스리나요 그렇다고 제가 또 싫은 소리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라서요(웃음). 말하고 나서 또 마음이 약해져서 금방 사과하지만요.
몇 년 전 TV 인터뷰를 보니 ‘최근까지 사랑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일과 사랑 중 뭘 택할 거냐는 질문도 있었어요 영상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 모르고 편하게 이야기했나 봐요. 그때 제가 뭐라고 답했어요?
사랑을 골랐어요. 연애의 어떤 면이 당신에게 중요한가요 사랑은… 정말 좋은 거죠. 저는 결혼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에요. 주변에 정말 행복하게 잘 사는 부부가 많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같은 질문을 받으면 ‘일’이라고 할 것 같긴 해요.
사람들은 고아성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것 같아요. 연기는 당연히 잘하는 거고, 똑 부러질 것 같고…. 오늘 촬영도 ‘잘되겠지’ 기대하면서 왔거든요. 그런 기대를 의식하고 있나요 그럼요. 제 직업은 자기만족이 전부가 아니니까요. 기복은 있어요. 사람들이 제게 기대하는 대로 하고 싶을 때도 있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걸 고수할 때도 있고, 왔다 갔다 해요.
당신도 호의적인 시선이 아닌, 타인의 적의를 느낄 때가 있나요 다행히도 그런 시선을 비교적 덜 받을 수 있는 건 제가 아역배우 출신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자라는 과정을 조금씩 본 분들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만났을 때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배우로서 운이 좋은 거죠.



코듀로이 재킷은 Golden Goose Deluxe Brand.



아이보리 터틀넥 니트는 Joseph.



오늘, 서울이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만났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인가요 저희 동네가 제일 좋아요. 용산 삼각지 쪽에 사는데요. 특히 삼각지 고가도로를 좀 많이 좋아해요. 근처 영화관 가는 길도 좋고요.
촬영이 끝나고 좋아서 다시 찾았던 국내 여행지가 있다면 다시 가보고 싶었던 곳은 다 다녀왔어요. 워낙 일찍 일을 시작했고, 어쨌든 나이가 들다보니 되새김질할 기억들이 이미 소진된 기분이에요. 이번에도 드라마 촬영 때문에 부산을 오가는데 더 이상 떠오르는 기억도, 그러기 위해 들을 음악도 없구나 싶더라고요.
미래보다 과거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기억을 되새기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일에 대해서는 했던 것을 돌아보지 않지만 저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에요. 그냥 가까운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하고 회상하는 거죠. 나이가 들었다는 걸 절감하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 제가 변한 걸 느끼기도 해요. 예전에는 복잡하고 감정 기복도 심했는데 좀 착해졌더라고요(웃음). 평온하고, 이해력도 넓어지고요.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도 그렇대요. ‘이런 게 나이 먹는 거라면 너무 좋다’며 만끽하고 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누구인가요 박완서 선생님이요. 정말 좋아해요. 선생님의 소설은 다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촬영이 비는 시간에 들렀던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몰랐던 단편집을 발견했어요. <그 가을의 사흘 동안>이라는 책이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어느 가족>도 부산 영화관에서 본 거에요. 이 두 개가 요즘의 저를 지배하는 것 같아요.
과거 어떤 인터뷰를 봐도 그때그때 좋아하는 작품 이야기가 빠지지 않더군요. 영화, 드라마, 책, 음악, 사진, 건축…. 분야도 답변도 다양하고요 맞아요! 저는 그걸로 사는 것 같아요. 끊임없이 어떤 무언가를 좋아하는 걸로.
정세랑 소설가에게 짧은 글을 받은 적 있는데 “다른 분야의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자극이 되고 힘이 된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어요. 당신을 보니 그 문장이 떠올라요 저 정세랑 작가님 좋아해요. <보건교사 안은영>도 정말 즐겁게 읽었어요.
혹시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는 고아성을 볼 수도 있을까요 그런데 저는… 뭐랄까. 작품을 믿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배우나 작가라고 해도, 그분의 모든 걸 좋아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그건 본인에게도 역으로 적용될 수 있는 말 아닌가요 그럼요. 저는 그게 오히려 아티스트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러분, 작품을 믿어야 해요. 다른 건 믿으면 안 돼요!
방금 말하는 것도 또 윤나영 같았어요(웃음)



소매가 트인 블루 드레스는 Ports 1961. 블랙 부츠는 Nina Ricci.

CREDIT

에디터 이마루
사진 안상미
스타일리스트 강이슬
헤어 이혜영
메이크업 강석균
디자인 전근영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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